|목회수상| 걸레 철학_이재헌 목사

0
382

걸레 철학

 

< 이재헌 목사, 새과천교회 >

 

그리스도가 가신 십자가의 삶은 철저한 걸레 철학이 담겨있는 길

 

 

입당, 헌당, 임직, 기타 여러 가지 교회 행사 때마다 참여한 분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며 기억될 만한 선물을 생각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 메뉴 중 으뜸은 수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가능하면 수건이라는 아이템을 선택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 왔다. 그 이유는 너무 평범한 보편성에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수건이 갖는 기구한 미래(?) 때문이다. 보통 가정에서 새 수건을 처음에는 소중하게 사용하다가도 일정 기간이 지나고 수차례의 세탁을 거치면서 색깔과 천의 상태가 조금 낡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신분이 격하되어 걸레의 자리에 가게 된다.

 

문제는 그것이 수건이었을 때나 걸레로 전락한 뒤에나 여전히 그 표면에는 날짜와 함께 선명하게 인쇄된 행사명, 교회 이름 그리고 그 날의 주인공들의 이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온갖 오물을 다 닦아내야 하는 걸레에 버젓이 남아있는 교회 이름, 어느 직분자의 이름 등등, 이러한 것들을 보는 불편함이 있었기에 애초부터 기념품으로서의 수건을 회피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걸레 철학’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상당한 의미가 있는 말을 들으면서 구지 기념품 아이템에서 수건을 제외시킬 필요까지는 없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걸레’라는 단어가 그리 기분 좋은 단어가 아니긴 하지만 거기에 철학이라는 단어를 붙이게 되니 꽤 괜찮은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온갖 오물과 더러움으로 찌든 방바닥 위로 걸레가 지나가면 그 방바닥이 깨끗해진다. 책상 위로 지나가면 때 묻은 책상이 깨끗해지며, 무언가 쏟아져 끈적한 불쾌감을 남겼던 자리로 걸레가 지나가면 그 주위가 깨끗이 닦여지는 것이 걸레의 몫이다. 내가 지나간 자리가 이렇게 변화될 수만 있다면 아마도 난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말에 우리 모두는 쉽게 공감한다. 그런데 그 먼지를 닦아 주는 사람에 대해선 전혀 언급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목회자로서의 시간이 조금씩 더 해질수록 이러한 걸레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목회자의 일 가운데 중요한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 것은 조금도 내어 놓지 않고 손해도 보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깨끗하고 고급스럽게 포장하는 현대 사회 속에는 귀티 나는 수건은 보이는데, 누구나 편하게 쓱쓱 닦을 수 있는 걸레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 하는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도 ‘걸레 철학’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헌신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구속의 은총을 입은 변화된 성도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라’(갈2:20)는 말씀은 ‘참 그리스도인이란 이미 자기를 위한 삶에 대해서는 죽은 자들이며, 이제는 오직 주님을 위해 살고자하는 거룩한 헌신의 길만이 내 앞에 남아있음을 아는 자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가 가신 십자가의 삶은 철저한 ‘걸레 철학’이 담겨있는 길이었다고 보여 진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와 또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는 구석구석에 닦아내야 할 부분이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고, 치유해야 할 상처가 많이 있다. 그곳에 나의 손길과 발길이 닿고 나의 사랑과 관심과 정성이 닿기만 하면 그 모든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되어 누구나 편안하게 그곳에 누울 수 있도록 청소 걸레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때이다.

 

하지만 한 가지 기억할 것은 걸레란 모든 일을 마치고 나면 마루 한구석에 내 팽개쳐질 뿐 그 어떤 인정이나 대가를 받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진다. 이렇게 자신을 감추며 낮추는 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참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는 너덜너덜하게 추한 모습이지만 이 ‘걸레 철학’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