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보이는 것으로 승부 걸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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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보이는 것으로 승부 걸 게 아니다

 

   또 한 해가 바뀌었다. 하나님의 기쁘심을 이루기 위한 경주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마라톤 경기가 막 시작되었을 때 우우 몰려나오는 선수들의 열기가 느껴지는 바로 그 대목이라 생각한다. 한 해 365일을 끊임없이 변함없이 돌발사고 없이 내달리려면 우리의 열심과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러려면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기쁘심을 좇는 게 옳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중에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의 가치는 감히 비교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99%의 보이지 않는 것과 1%의 보이는 것을 주신 것으로 보인다. 인물과 능력과 재산과 신분과 언변과 인기는 기껏해야 1%의 은혜일지 모른다. 보이는 것은 사람 따라 차이가 날 수 있겠지만 한낱 잠시 잠깐 유효기간 안에서의 일일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주신 그 보이지 않는 99%의 존귀와 영광은 결코 차등이 없다. 그러므로 보이는 게 초라하고 미약하다고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까지 그런 건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보이는 것에 급급하다가 정말 소중한 영생의 가치와 기쁨을 잃어버린다면, 그래서 좌절과 낭패 속에서 헤매고 있다면 이보다 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는 일이 어디 있을까?

   교회에 다니면 당연히 잘 살아야 하고, 목회를 하면 마땅히 부흥을 해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결코 이 비밀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어리석음은 보이는 것으로만 평가하는 미련함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그걸 알았다면, 누가복음 16장의 부자는 거지 나사로를 그렇게 홀대하지 않았을 것이고, 혼자서 연회를 즐기지 않았을 것이고, 영원토록 괴로움을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부귀영화가 아니다. 세상에서 최고가 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영생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혈 흘리신 목적이 바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라 했고(요 3:16), 그 영생은 바로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선물이기도 하다(딛 1:2). 새해엔 이 숨 막히도록 찬란한 보이지 않는 99%의 영광을 놓쳐버리지 않아야겠다. 더욱 하나님이 교회와 성도에게 동일하게 주신 그 존귀와 영광의 실체를 노래했으면 좋겠다.

   오늘날 우리가 주로 쏟아내는 담론, 예컨대 ‘목회가 힘들다.’ ‘교회가 위기다.’라는 주제는 사실 대부분 보이는 측면에서의 성과가 쉬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보이지 않는 그의 나라와 그의 영광과 나의 영생은 변함없는데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평가하고 전전긍긍하는 경향이 심하다. 목회가 힘들거나 교회가 위기에 처한 것으로 말한다면, 신사참배 거부운동 때와 비교할 수 있을까? 중세 때와 비교할 수 있을까? 로마 박해 때와 비교할 수 있을까? 보이는 사람과 건물, 그에 준한 권세가 있으면 하나님의 영광이고,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에 대한 모욕일까? 우리는 대개 교회 옆에 교육관을 크게 지으면 거의 예외 없이 비전센터라고 부르는데 익숙하지만, 사실 비전센터로 말하면 작은 교회, 움막교회에서 소망을 품고 예배하고 기도한다면 그곳이 더 진정한 의미의 비전센터 아닐까? 그러므로 보이는 것으로 기고만장할 일도 아니며 드러내 보일 것이 없다고 좌절할 일도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각양 좋은 것은 모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존재하니까 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의 압권은 영생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정말 자랑하고 증거 할 것도 영생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찬란한 선물도 영생이다. 영생은 나중 천당에 가서 비로소 시작되는 생명이 아니다. 이 땅에 사는 구원받은 백성들이 지금 누리는 생명이 곧 영생이다. 죄 용서함 받은 영혼, 주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영혼, 음부의 권세가 넘어뜨릴 수 없는 생명, 그것이 곧 영생이다, 예컨대 누가복음 16장에서 부자는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영생이 없었고, 거지 나사로는 아무 것도 없었지만 영생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권세, 목회자의 영광, 성도의 존귀함은 세상 무엇으로 비교할 수 없다, 큰 교회 작은 교회의 문제가 아니다. 능력의 유무도 아니다. 행한 것으로 자랑할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위험한 짓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승부를 걸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찬란한 영광을 만끽하고 증거하며 사는 게 진정한 목회와 성도의 삶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