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사실과 진실_남웅기 목사

0
346

사실과 진실

< 남웅기 목사, 바로선교회 >

 

눈으로 보이는 사실이 만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오해하지 않아야

 

진실의 반대는 거짓이 분명하지만 다만 사실에 반대 된다고 반드시 거짓이 되는 건 아닙니다. 이는 ‘진실의 반대도 거짓’, ‘사실의 반대도 거짓’으로 오해한 나머지 빚어진 결과론적 착각이라 하겠습니다.

 

세상에서 진실은 창조주 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존재는 모두 사실일 뿐입니다. 사실 자체는 주어지거나 만들어진 현상입니다. 진실은 누가 ‘너는 가짜야!’ 한다고 가짜가 되는 게 아닙니다. 어떤 힘으로든 진실을 거짓으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것이 진실의 유일성이요 영원성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이 창조본연의 모습이면 진실(진품)이지만 조작되거나 왜곡되면 거짓(가짜)입니다. 누구든, 무엇이든 진실 편에 서면 진실(의인)이 되지만 진실을 거스르면 거짓(악인)이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진리라 했습니다(요 14:6). 진실은 그 진리의 본질입니다. 또한 사탄을 거짓의 아비라 했습니다(요 8:44). 거짓의 특징은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거나, 피조물이면서 하나님처럼 행세하거나, 피조물이 감히 하나님처럼 되려는 데 있습니다.

 

진실의 본성이 생명이요 사랑이요 기쁨이요 소망이라면, 거짓의 본성은 사망이요 미움이요 슬픔이요 절망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실과 진실은 오히려 상반되는 점이 많습니다. 사실은 알려진 것이고 진실은 묻힌 정답입니다.

 

예컨대, ‘삼신할머니’라는 말에서의 삼은 석 삼(三)자가 아닙니다. 황당하게도 ‘아이의 출산과 수명과 질병을 관장하는 신’으로 알려졌지만, 삼이란 ‘태아를 싸고 있는 막과 태반’이란 뜻의 우리 고유어입니다. 삼신은 ‘그 삼을 지키는 신’ 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오해는 부끄럽게도 고유어를 잃어버린 탓입니다.

 

또한 사실은 보이지만 진실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교회)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고후 4:18). 사실이 소유와 경쟁의 결과라면 진실은 소속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실이 사람의 영광이라면 진실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서 보는 것처럼 이 땅에서 부자의 영광이 사실이었다면, 나사로의 영광은 진실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서 나사로의 영광은 이 땅에서의 나사로를 기뻐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진실보다 사실에 급급한 것 같습니다. 또한 왜곡되기 쉬운 사실은 항상 그 진위여부를 검증받아야 하지만 진실은 거짓과 함께 공존할 수조차 없습니다.

 

이처럼 거짓이 개입되면 진실은 그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진실을 부인하면 악이 되지만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사실의 부인은 선입니다. 진실여부는 바로 살림의 의지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살림은 진실이고 죽임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없는 말 했나?’ ‘틀린 말 했나?’ ‘아닌 말 했나?’ 하며 상대방의 아픔이나 약점을 드러내는 건 아무리 사실이라도 악이요 거짓행위입니다.

 

우리는 사실 자체가 곧 진실인양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기생 라합에 대한 비난입니다. 그녀의 진술은 거짓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살려낸 진실이라 하겠습니다. 그때 라합이 배신한 건 세상나라였지만, 영접했던 건 하나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사실을 그대로 말해야 진실이라면, 사무엘상 16장에서 사무엘을 향한 여호와의 지시는 거짓을 부추긴 행위처럼 보입니다. 베들레헴 방문의 원 목적을 숨기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그토록 엄격하게 목숨을 걸고라도 거짓을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친 교회이지만 실제로는 거짓에 대해 얼마나 무감각합니까? 교회는 세금을 아끼려고 쉬이 가짜 서류 만들고, 목회자는 가짜 논문을 쓰고, 게다가 대놓고 거짓말을 삶의 수단으로 여기는 성도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이 책망하신 바리새인의 모습이 딱 그랬습니다(마 23:3-4). 사실에 반대된다고 거짓이 아니라 사실을 빙자하여 살려야 할 사람 죽이는 게 거짓입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진정한 기쁨을 이루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컨대 주의 백성이 하나 되는 것과, 아무도 하지 않고 아무나 할 수 없는 그 일, 그 십자가의 삶, 그게 바로 교회가 할 일이요 그것을 가르치는 게 목회자의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면 그건 사실의 나열일 뿐입니다. 진실이 하나님의 생각이요 기쁨이라면 사실은 사람의 생각이요 이해타산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실을 내세워 진실을 거스르면 안 됩니다.

 

예컨대 다수결은 의사결정에 있어 최선의 방법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이 곧 진리는 아닙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의견이 집약된 현실적인 힘의 사실일 뿐입니다. 곧 다수결을 내세우거나, 다수결을 무리하게 만들어 냄으로써 감히 진실을 짓밟으면 안 됩니다. 또한 현실적인 악법인 사실을 들이댐으로써 하나님의 기쁘신 뜻인 진실을 모르쇠 하는 것도 거짓된 행위에 속합니다.

 

정녕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사실과 진실 어느 편에서 목숨을 걸어야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