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수상
꽃은 단번에 피지 않는다
< 변세권 목사, 온유한교회 >
우리의 시간, 현실, 공간은 하나님의 원리를 드러내시는 무대이다
어제 밤에 내린 비로 정원의 장미가 고개를 떨구었다. 꽃은 단번에 피고 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이 땅의 모든 만물과 인생, 역사가 이론과 원칙으로만 되지 않고 실제적 삶의 이야기와 무대로 연결되는 것임을 느낀다. 신자의 대부분의 삶도 고통과 기도로 연결된다. 과정은 비정상적으로 진행이 되더라도 결과는 정상이 되는 것을 본다. 역사만 하더라도 지금은 우리가 다 모르지만 나중에는 그 일이 필연적인 사실이 되듯이 말이다.
역사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하나님만이 그 안에서 일을 하신다. 이스라엘도 엄밀히 보면 성공한 선지자가 그다지 없었고 타락한 통치자 밑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간은 하나님의 권능과 시간 속에서 만족한 때가 한 번도 없었다. 인간의 원망은 ‘하나님은 역사와 인생에서 왜 이렇게 일을 하시는가?’ 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인간이란 그 무엇을 원망할 수밖에 없고, 그 무엇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을 이해하는 지성과 지혜가 있어야 한다. 참 이상한 것은 우리가 구원받을 때에는 원망이 없다가 구원받은 이후에 오히려 원망이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대목을 잘 통과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을 때까지 원망으로 산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신자의 삶의 현실에서 그 사람의 현실의 분노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어느 한 존재가 분노하고 애를 태우며 살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온유한교회 목사로 ‘온유’라는 것을 이론적으로만 생각하고 살아온 적이 많았다. 거기에는 공허감이 있었고, 따라서 내가 이중인격자처럼 되기 쉽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박영선 목사님의 메시지를 들었는데, ‘온유한 자는 자기를 주장할 실력과 자격이 없는 자’라고 하셨다. ‘나 또한 어느 곳을 가도 바보짓을 하고 다녔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순간 ‘온유’의 의미가 더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의 지난 삶들을 돌아보아도 육신이 멀쩡하면 예수를 믿지 않았을 것 같았던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제 그림이 조금 보이는 것 같다. 원망을 하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원망하는 습관을 누구나 예외 없이 기본처럼 가지고 있다. 모세가 그 백성들의 원망을 들었던 것도 이해가 된다. 모세 자신도 원망을 해 봤겠지만 40년 광야생활에서 수많은 인생들을 살펴보며 ‘그래서 목회가 외로운 것이구나!’ ‘사람은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구나!’ 하는 걸 배웠을 것이다. 그들은 홍해만 멀쩡히 건넜을 뿐이지 그 후론 원망과 배신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일하신다는 점을 모르면 우리도 동일하게 원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하기에 모세의 현실, 예수님의 현실, 우리의 현실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깊은 은혜의 도구이고 시간이다.
지금은 하루를 사는 것, 한 가정을 지키는 것이 순교보다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이 현실에서 담아내야 한다. 구원받고 사는 신자의 현실, 시간, 공간은 이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어 선택하게 하시되 하나님이 만드신 자리로 반드시 가게 하신다. 그래서 그 자체가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우리의 시간, 현실, 공간은 하나님의 원리를 드러내시는 무대이다. 죄를 지었든지, 은혜의 자리에 있든지 그 자체가 과정이다. 지금 보면 나중에 그것이 헛것인 것 같고 무의미한 판정을 받을 것 같아도 현재를 그렇게 오늘이라는 현실로 살아 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하루를 삶의 실력만큼 살게 하신다. 그래서 오늘 잘 해도 내일이 불안하다. 이렇게 현실을 잘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꾸 과거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래서 설교의 기본도 청중과 설교자가 같은 현실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장이 없는 명분과 정답만 제시하지 말고 성경으로 현실에 대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청중 각자의 고유함, 인생의 특별성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와 선택, 지혜와 분별, 책임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신다.
우리는 사실 어떤 문제 해결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의 영광을 누려야 한다. 인생은 늘 못나게 사는 것이고 그래서 세상은 우리에게 함께 죽자고 미혹하지만 우리는 못났어도 신자로서 살아서 고생할 책임이 있다. 그것을 명예와 자랑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의 나이는 숫자적 서열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년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현실을 자폭으로 끌고 들어가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책과 눈물, 한숨과 선택으로도 일을 하시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갖되 겁을 먹지는 말자. 때로 우리를 죽음의 길로 인도하실 때도 꽃을 피워야하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목사가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보람과 기대를 확인하는 길이 아니라 믿음과 충성과 인내의 길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과 인생의 꽃도 단번에 피지 않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