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뜨락| 인생의 꽃망울을 다시 피게 하신 하나님!_김재열 목사

0
144

은혜의 뜨락   

인생의 꽃망울을 다시 피게 하신 하나님!

< 김재열 목사, 뉴욕센트럴교회 >

 

750-5.jpg 피지 못한 꽃망울 이제 피게 해 주세요.

평생 주님을 위해 향기를 토하리이다 

   나는 믿음이 전혀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초등학교를 마쳤다이때에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성극을 보러 간 것이 내 생애 교회에 처음 간 기억으로 남아 있다그 후에 서너 번 주일학교에 나갔지만 오래 가진 못했다.

   미션스쿨인 숭실중학교에 들어가서 채플도 참석하고 성경도 배웠지만 깜깜하게 지냈으나 돌이켜보면 감사한 일이었다고교 시절에 반 친구 중에 목사의 아들이 있어서 고등부에 출석하기 시작했다설교 시간에는 늘 졸았지만 모든 행사에는 꼬박꼬박 참여하였다그렇지만 신앙의 체험은 전혀 없었다그러다가 고때 폐결핵 진단을 받으면서 삶의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했다우리 가족을 구출하시는 출애굽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18세 어린 아들을 죽을지 살지 모르는 천리 길 마산 요양소에 맡겨 두고 서울로 떠나시던 그 옛날 어머니의 뒷모습을 그리면서 몇 해 전에 이런 글을 써보았다.

 

<어머니사랑하는 어머니!> 

   예전에 한국에서는 4월 7일이 보건의 날이었다공교롭게도 건강을 강조하는 그날유난히 사랑했던 18세 큰 아들은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중증의 폐결핵 진단을 받았다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다는 국립 마산요양소에 입원 허가를 받고 엄마와 아들이 그 곳에 도착한 것은 5월 8일 바로 어머니날이었다.

   아들은 그날 엄마의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 한 송이 대신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피멍을 새겼던 날이다밀대처럼 키만 크고 뼈가 앙상한 당신의 큰아들을 떼어 놓고 떠나야 했던 우리 엄마유난히도 어렸을 때부터 병치레를 많이 했다며 튼튼하게만 자라기를 일심으로 바랐는데 아이구이 자식이 이제 사람 구실을 하겠는가

      아들 대신 피를 토하듯 절규하던 어머니의 통곡이 50년이 다 지났는데도 어머니날만 되면 여지없이 이 늙은 아들의 귓가를 때린다.

 

   요양소에는 전국에서 모인 중증 환자 250여 명이 있었다매일 4~5명이 죽어 나갔다죽음이 나에게도 가까이 와 있었다참 많이 절망했다기운이 없어 피를 토할 힘도 없었다그렇게 비참하게 죽기보다는 스스로 사라지는 길을 생각했다병동 맞은편 깊은 산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키 1m 80cm에 몸무게 47kg이었으니 눈만 감으면 곧 주검이었다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숨이 차올랐다인적이 닿지 않는 곳거기서 며칠만 누워 곡기를 끊으면 더 이상 힘이 빠져 조용히 생이 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움푹 파인 구덩이에 누웠다해는 졌고 밤새들이 울었다처음 듣는 짐승 소리도 들렸다체념은 또 다른 평안을 주었다칠흑 같은 어둠이 사방을 덮었다이슬이 내리기 시작했다땅속에서 차가운 물기가 허약한 육체를 뚫고 솟아올랐다온몸이 떨려 왔다도리어 몽롱했던 정신이 쌩쌩해졌다.

   도저히 더 버틸 수가 없었다스스로에게 비겁자가 되었다병실로 돌아와 몇날 며칠을 정신없이 지냈다또 다시 죽음의 길을 찾아 나섰다바닷가 높은 절벽 위에 섰다밑을 내려다본다시커먼 바다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그러나 그 바다는 수영을 잘하는 날 받아드리지 못할 것 같았다천길 같은 낭떠러지 벼랑에 온 몸이 뒤틀린 작은 소나무가 나를 향하여 소리치고 있었다. “날 봐난 이 벼랑에 붙어서도 살아 있잖아생명은 죽음보다 강한 법맘대로 못 죽어!” 난 또 한 번 비겁자가 되었다. “그래생명이 부질없지만 때로는 죽음보다 강해죽는 셈치고 살자살아보자!”

   얼마의 날들이 지났다옆 침대의 몇 살 많은 동아대학생 형의 기침 소리가 잠 못 이루는 내 귀에 들려왔다저 기침… 각혈이 분명해… 본능적으로 일어나 그릇을 받쳐 들고 옆 침대로 건너갔다그 형은 사시나무 떨듯 두려워하고 있었다. “뱉어뱉어야 해토해 내지 않으면 호흡기에 쌓인 피들이 굳어서 숨이 멎는 것이 폐결핵이야.” 그 형은 토하기 시작했다한없이 토해냈다.

   역겨운 피 냄새를 피해 보려고 읽을거리를 찾았다. ‘박군의 심정이라는 그림 전도지가 있었다어둡고 불행한 박군이 행복한 얼굴로 바뀌는 그림들이었다박군의 맘속에는 온갖 추잡하고 사납고 더러운 짐승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맘 밖에서 예수님의 빛이 박군의 마음에 비칠 때에 결국 모든 육신의 더러운 죄악들이 쫓겨나갔다그리고 예수님이 박군의 중심에 앉으셨다그의 얼굴은 스마일로 바뀌어 있었다. ‘당신의 삶이 행복하길 원한다면 이 기도문을 읽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난 진지한 마음으로 기도문을 읽어 나갔다.

   아주 간결하고 짧은 기도문 하나가 마치 연막탄 같았다순간적으로 찬란한 구름이 나를 감쌌다내가 몸 밖으로 나온 기분이었다살아 있음이 이렇게도 찬란한 줄 미처 몰랐다그 시간 이후에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확신이 가냘픈 가슴 속에 가득 차올랐다꼬집어 표현할 수 없이 기뻤고 감사했다머리맡의 꽃병에 꽂힌 꽃망울을 보며 기도했다. “주님저 피지 못한 꽃망울 이제 피게 해 주세요피게 하시면 평생 주님을 위해 향기를 토하리이다!” 

   이젠 죽어도 살아도 전혀 두렴 없는 커다란 확신에 사로 잡혔다. 6개월 만에 요양소를 떠난 그날 이후 50년의 삶 속에 주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하나도 없다.

주님은 살게 하시고 죽게도 하신다거름더미에서 들어 귀족의 자리에도 앉히시는 분이시다꽃망울도 다시 터뜨리시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할렐루야!

 

김재열 목사(합신 4)는 30여 년 간 캐나다 토론토를 거쳐 미국 뉴욕에서 이민 목회 중이다최근 동역자들과 2만 6천 평의 비전 랜드를 준비전인적 섬김의 프로젝트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시작했고 현재 씨드선교회 USA 이사장으로 130여 선교사 가정을 섬기며 뉴욕실버선교회를 설립했다저서로는 「예수내 삶의 내비게이션생명의말씀사, 2014」이 있다본고는 필자의 회고록의 첫 부분을 요약 기고한 것이다. _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