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특/집|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_이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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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특/집|  로버트 맥체인 성찬 강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THIS DO IN REMEMBRANCE OF ME)

원문 _ 로버트 머리 맥체인(Robert Murray M’Cheyne, 1813-1843) | 번역 _ 이강호 목사

< 이강호 목사, 런던 갈보리장로교회 >

| 해제 |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성찬의 거행에 있어서 개혁 교회들에게 귀중한 유산을 남겨 주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성찬은 영적인 잔치였다. 성찬주일 단 하루의 행사가 아니고 성찬 전 금요일은 금식일, 토요일은 준비 집회, 성찬주일은 성찬 설교와 경계를 겸한 성찬 거행, 월요일은 감사 예배로 이어졌다.

   보통 성찬 전 주일은 성찬에 대한 설교와 권면이 있었다. 그때의 설교들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받았던 은혜들을 짐작할 수 있다. 목사들이 성찬에서 성도들에게 사용한 것은 소박한 약간의 떡과 포도주였지만 그것이 말씀과 기도로 준비되고 전해졌을 때, 성찬은 풍요롭고 즐겁고 유익한 잔치가 되었다.  

   또한 성찬을 앞두고 목사와 장로들은 분담하여 모든 성도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개인적으로 교리 문답이나 성찬 문답을 중심으로 주님의 몸을 분별하는 지식과 주님의 살과 피에 참여할만한 삶을 사는지 확인한 다음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토큰을 나눠주었다. 이는 성경과 신앙고백서의 원리에 따른 것으로 주님께서 성도들의 유익과 위로를 위해 제정해 주신 성찬을 욕되게 하지 아니하며 바르게 참여하여 큰 은혜를 입고 합당치 못한 참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성찬의 떡과 포도주를 나눠주기 직전에도 경고의 말씀을 생략하지 않았다. 

   로버트 맥체인 목사의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자신의 교우들, 특히 처음 성찬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에게 성찬의 의미를 바르게 알고 합당하게 참여하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생전인 1840년에 발행한 소책자로서 이 소중한 유산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강호 목사)

“저는 주님의 만찬이 여러분 중에서 두려운 방식으로 모독되고 있을까 봐 두렵습니다” 

“주님의 만찬에서 떡과 포도주를 받을 때 여러분은 엄숙하게 모든 다른 것들을 버리며 진심으로 주 예수를 유일한 주님과 구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엄숙히 선언하는 것입니다”

“떡과 포도주는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한 지체들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손에서 손으로 옮겨집니다”

주님의 만찬은 모든 예식들 중 가장 사랑스럽습니다.

  1. 그것이 제정되었던 시간 때문입니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그 때는 이 세상에서 어느 때보다 가장 어두운 밤이었지만 가장 밝은 밤이기도 했으니 죄인들에 대한 주님의 사랑이 가장 가혹한 시험에 처했던 밤이었습니다. 그러한 시간에 그가 우리의 위안을 생각하셨다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1. 그것은 신자의 예식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까마귀 새끼들이 울부짖을 때에도 들으시고 또 자주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십니다(시107편, 행8:22). 복음의 전파를 듣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그러나 주님의 만찬은 자녀들만을 위한 떡이니 오직 주님 예수를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만을 위해서 마련된 것입니다.

  1. 그리스도께서 그것의 시작, 중간, 끝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처음부터 끝이 아닌 많은 설교들이 있고 그리스도의 이름의 냄새를 맡을 수 없는 많은 책들이 있지만 그리스도께서 처음부터 끝이 아닌 성찬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님의 만찬의 알파요 오메가이니 그것은 전부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입니다. 이것들이 그 떡과 포도주에 특별한 사랑스러움을 줍니다.

저는 주님의 만찬이 여러분 중에서 두려운 방식으로 모독되고 있을까 봐 두렵습니다. 분명한 죄들 가운데, 혹은 분명한 의무들을 무시하며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옵니다. 자기들이 회심한 적이 결코 없는 것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자기들의 마음속에서 회심에 대한 생각 자체를 멸시하는 많은 사람들이 옵니다. 합당하지 않은 성찬 참여는 무서운 죄입니다.

그것을 인하여 하나님께서 크게 노여워하셔서 자신의 영을 여러분에게서 거두시고 섭리의 찡그림으로 여러분을 찾으시며 여러분을 멸망의 날을 위하여 인치십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적이 되었습니까? 여러분의 영혼에 대하여 정직하게 대하시고 제가 지금 쓰고 있는 것을 읽고 기도하시며 루디아의 마음을 여셨던 분께서 제가 설명하는 동안 여러분의 마음을 여시기를 바랍니다.

성찬 참여자의 행위들

  1. 그가 떡과 포도주를 취합니다.

목사가 상에 앉은 사람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줄 때 이것은 죄인들, 괴수에게까지 값없이 제시된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떡과 포도주를 받는 것은 “내가 상하시고 피 흘리시는 구주를 나의 보증인으로 감사히 받습니다”를 의미합니다. 떡과 포도주를 받는 행위는 적용하는 행위이니 그것은 하나님과, 천사들과, 사람들과, 악마들 앞에서 “나는 나의 피난처이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 피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것은 적용하는 행위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의 지붕 위로, 자기들의 요새들과 탑들로, 험준한 바위들로, 지극히 높은 산의 꼭대기로 피하라고 하십시오. 나로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의 유일한 피난처인 방주로 피합니다(히11:7). 살인자가 도피성으로 피했을 때 그것은 적용하는 행위였습니다. 그가 숨을 몰아쉬며 헤브론의 문에 들어갈 때 그의 친구들이 외쳤을 수 있습니다. 광야로 도망하라! 아니면 요단강을 건너 도망하라! 그러나 그는 아니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나는 오직 이 성벽들 안에서만 안전할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도피성이고 나는 오직 여기에 숨을 것입니다(수20).

한 이스라엘 사람이 생축이나 양 중에서 예물을 가져오고, 제사장이 그것을 줄로 제단의 뿔에 맸을 때, 드리는 자는 자기의 손을 어린양의 머리에 안수했습니다. 이것은 적용하는 행위로서 “나는 이 어린양이 나를 위하여 죽는 것으로 여깁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이 말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너를 구원하겠느냐? 너의 생활을 고치고 가난한 자들을 구제해라. 그는 말했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나는 내 자신의 죄를 감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님의 어린양에게 올려놓습니다(레1:4).

한 여인이 떨면서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을 만졌을 때 이것은 또한 적용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녀의 친구들이 그녀에게 말했을 수 있습니다. “가서 다른 의사들을 더 찾아보자. 아니면 네가 좀 나아질 때까지 기다려보자.” 그녀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막5:28). 시편 42편에서 다윗의 적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말했습니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이것이 밤낮 눈물로 그의 양식이 되게 했습니다. 그것은 뼈를 상하게 하는 칼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시편 43편에서 그는 용기를 내어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어린양이 죽임을 당한 곳입니다.

그리고 그는 말합니다.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너희는 내게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다. 보라, 나는 이 어린양을 나를 위해 죽임 당한 것으로 취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다. 아가서에서 신부는 자기 마음에 사랑하는 이를 만났을 때 “그를 붙잡고 놓지 아니하였노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적용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세상은 그녀에게 말했을 수 있습니다. “이리 와 보라. 그러면 우리가 너의 사랑하는 자보다 더 아름다운 다른 사랑스러운 자들을 너에게 보여주겠다.” 그녀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내가 그를 붙잡고 놓지 아니하였노라. 이는 내 사랑하는 자며 내 친구로다”(아3:4).

사랑하는 분들이여, 바로 이것이 주님의 상에서 부서진 떡과 부어진 포도주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일생에서 가장 엄숙한 적용하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내가 방주로 들어갑니다. 내가 도피성으로 피합니다. 내가 어린양의 머리에 내 손을 놓습니다. 내가 그의 옷자락을 만집니다. 내가 예수를 나의 주와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입니다. 내가 그를 붙잡으며 은혜를 의지하여 그를 가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증표들에 의하여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증인들 앞에서 증표들을 수단으로 그리스도와의 신중한 언약 맺음입니다. 신부가 혼례에서 많은 증인들 앞에서 오른 손을 받을 때, 그것은 그녀가 신랑을 자신의 유일한 남편으로 받아들인다는 엄숙한 선언입니다. 그같이 주님의 만찬에서 떡과 포도주를 받을 때 여러분은 엄숙하게 모든 다른 것들을 버리며 진심으로 주 예수를 여러분의 유일한 주님과 구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엄숙히 선언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 일들이 사실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이 거룩한 상으로부터 떨어져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중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은혜의 일이 시작되지 않았고 여러분의 영혼을 위하여 떨게 된 적도 없었고 “하나님이여,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게 된 적도 없었으며 “하나님을 믿어 기뻐함”에 이른 적이 없었던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진심을 다하여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니 이 상은 여러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중의 많은 사람은 여러분이 죽어도 좋은 상태에 있지 않은 것을 압니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죽기 전에는 돌아서겠지요.” 이것이 여러분의 죄가 가려지지 않았으며, 여러분이 거듭나지 않았으며, 여러분이 여러분 앞에 제시된 소망으로 피하지 않았음을 보여 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 상은 여러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중 어떤 사람들은 죄의 확신을 가졌었지만 그것이 사라진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의 벽들은 여러분이 영원의 벼랑에서 떠는 것을 보았지만 여러분은 “믿는 가운데 평안함”이나 “하나님과의 평안”에 결코 이르렀던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근심을 사업이나 쾌락의 소용돌이에 잠가 버렸습니다. 여러분은 물러났습니다. 여러분의 인애(仁愛)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과 같습니다.

이 상은 여러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명예나 일상적인 정직에 대한 여러분의 인식을 두고 말합니다. 세속적인 일들에 있어서 여러분이 입의 말로든지 몸짓으로든지 거짓말을 하려고 합니까? 그렇다면 영원한 일들에 있어서 거짓을 말하는 것이 가벼운 일입니까? 여러분이 부서진 빵과 부어진 포도주를 취함으로써 여러분이 거짓말로 아는 것을 고의적으로 선언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를 통하여 기도하시고 떠십시오(행5:1-11). 하늘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말해지지 않겠습니까?

떨며, 믿는 영혼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이 잔치는 여러분을 위하여 베푼 것입니다.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 만일 여러분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으면 오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믿음에 약”하면 목사들은 여러분을 영접하라고 명령을 받았습니다. 만일 성찬 안식일 아침에, 심지어 여러분의 일생에서 첫 번째일지라도, 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 풍성하시고 아낌없이 나타나셔서 여러분이 그를 믿지 않을 수 없었다면 주저 마시고 오십시오. 그 상에 오셔서 사랑하는 자에게 기대십시오. 그리하면 거기서 여러분은 요한의 자리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평안하게 그의 가슴에 기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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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십니다.

“받아먹으라.”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떡은 “사람의 마음을 힘 있게” 하며 포도주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떡은 생명의 지팡이이고 포도주는 디모데처럼 자주 약함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운을 북돋아줍니다. 그것들은 사람이 소유한 가장 영양가 있는 복들입니다. 주님의 만찬에서 그것들을 먹는 것은 내가 나의 유일한 힘으로서 예수를 먹으며 “의와 힘은 여호와께만 있나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떡을 손으로 취하는 것은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내게 의로움이 되셨다”는 것을 증표에 의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먹는 것은 “예수는 내게 거룩함이 되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사십년 동안 만나를 먹고 반석으로부터 물을 마셨을 때 그들은 황량한 광야를 통과하는 그들의 여행을 위하여 힘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을 통과하는 신자들의 여행의 모습이었습니다. 신자들은 매일 자신들의 힘인 그리스도를 먹고, 그는 그들의 매일의 만나이고, 그는 그들을 따르는 반석입니다. 신부가 사과나무 그늘 아래 앉았을 때 그녀는 말합니다.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 그리고 또 말합니다.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 신자들이여, 이것이 여러분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이 구주로 인하여 피난하게 되자마자 그에 의하여 영양을 공급받고 새로워집니다. 그는 여러분의 마음들을 위로하시며 모든 선한 말씀과 일로 여러분을 세우십니다.

시편 36편에서 다윗은 주님 예수의 날개 아래 의지하는 사람들에 관하여 말하면서 그는 부언합니다.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어린 자녀들이여, 여러분은 경험에 의하여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도록 인도함을 받을 때 여러분은 그의 가족으로 입양되었고 자녀의 떡을 먹게 되고 여러분의 마음은 하나님의 거룩한 기쁨으로 채워집니다.

그와 같은 일이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온 세상 앞에서 여러분이 그 벌어진 바위틈으로 들어갔으며 거기에 간직된 꿀을 먹고 있다는 엄숙한 선언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그늘 아래 앉았고 생명나무의 열매에 의하여 위로와 영양을 공급 받고 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와서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합니다. 그리고 이제 주의 복락의 강에서 마시고 있습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어찌할 수 없음과 연약함, 그리스도께서 온통 여러분의 힘, 온통 여러분의 생명이라는 감미로운 선언입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상에서 떨어져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실제로 그 참 포도나무에 접붙여지지 않았으며 그리스도로부터 어떤 영양분을 받지 않았으며 성령을 받은 적이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은 죽은 가지들이며, 단지 포도나무에 연합된 것처럼 보일 뿐이며, 열매를 맺지 않아서 그가 잘라 버리시는 가지들임을 알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여러분이 그 떡과 포도주를 먹으려고 합니까?

여러분 중의 어떤 사람들은 여러분이 죄 안에서 죽었으며 회심하지 않았고 중생하지 않았으며, 여러분이 에스겔서 36장 26절에 말한 것과 같은 마음의 어떤 변화를 체험한 적이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떡과 포도주는 여러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중의 어떤 사람들은 여러분이 이름을 댈 수 있는 죄들의 권세 아래 살고 있음을 압니다. 여러분 중의 어떤 사람들은 아마 거룩한 안식일을 은밀하게 욕되게 하여 “자기 길로 행하며 자기 오락을 구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마 은밀한 욕설, 거짓말, 부정직, 술취함, 불결함을 범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 무슨 이유로 여러분이 이 떡과 포도주를 먹으려고 합니까? 그것은 여러분에게 결코 유익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합당하지 못하게 먹고 마시게 될 것을 여러분은 일순간이라도 의심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감히 이런 일을 합니까? 이 두려운 말씀을 읽고 기도하십시오. “합당치 못하게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저주]를 먹고 마심이니라.”

진실로 “예수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은 주님의 상으로 오라고 초청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열병에서 회복되는 병든 사람과 같이 느끼니 힘이 없고 손이나 머리를 들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자신들의 힘이신 예수를 바라보니 그가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셨고 그들을 위하여 사십니다. 여러분은 나날이 그를 바라봅니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그가 나의 떡이며 나의 포도주입니다. 그로부터 오는 것 말고 내게는 힘이 없습니다.” 오셔서 그리스도의 상에서 먹으십시오. 환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관에 도착한 여행자같이 느끼니 기진하고 피곤하여 더 나갈 힘이 없고 한 걸음도 더 나갈 수 없습니다만 자기들의 힘인 예수께 기대어 “내가 살고 너희도 살겠음이라”는 말씀을 믿습니다. 오셔서 손에 지팡이를 잡고 발에 신을 신고 이 떡과 포도주를 드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기뻐하면서 여러분의 길을 계속 가게 될 것입니다. 연약한 가지들은 많은 영양을 필요로 합니다. 여러분이 자신들의 연약함, 마음의 심한 부패, 사탄의 권세, 세상의 미움을 느끼면 느낄수록, 여러분은 예수에게 기대어 이 떡과 포도주를 먹어야 할 필요가 더 많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더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1. 그는 떡과 포도주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눕니다.

주님의 상은 이기적인, 혼자 먹는 식사가 아닙니다.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만이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3장 15절에서 말하는 그러한 가족의 가족식사입니다. 여러분은 단지 혼자 먹고 마시지 않습니다. 같은 상에 둘러앉아 있는 모든 사람과 함께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먹습니다. 예수께서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나타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들”과 하나됨의 감미로운 인식, 모두가 같은 평안, 같은 기쁨, 같은 마음, 같은 거룩함, 같은 천국을 자기와 함께 가져야 한다는 마음 가득한 소원을 나타냅니다. 여러분은 성전에 있었던 일곱 등잔을 가진 순금 등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꼭대기에 항상 기름으로 채워져 있는 금 주발로부터 기름을 공급받았습니다. 기름은 등대의 지주를 통하여 흘러내렸고 각 등잔에 일곱 개의 금으로 된 관 혹은 가지에 의하여 분배되었습니다. 모든 등잔들이 같은 기름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것이 가지를 통해 가지로 전해집니다. 등잔들 중 어느 것도 자기만을 위하여 기름을 가질 수 없었으니 그것은 그들 모두에게 나누어졌습니다.

그것이 포도나무에도 그러합니다. 수액이 뿌리에서 올라가 모든 가지들을 채웁니다. 한 가지가 채워지면 그것은 수액을 다음 가지로 전합니다. 아니 그것은 풍족한 수액을 작은 가지들과 덩굴손들로 보내 모두가 자기들의 분량을 가지게 하고, 모두가 자기의 보배로운 과실을 맺게 합니다. 그것이 몸에게 그러합니다. 피는 심장으로부터 가득히 영양을 공급하는 흐름으로 나와서 모든 지체들에게 흐르고 한 지체는 다른 지체에게 그것을 전해주어 모두가 살아있게 하고 모두가 자라게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만찬에서 그렇습니다. 떡과 포도주는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한 지체들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손에서 손으로 옮겨집니다.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전10:17). 그것은 여러분이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과 하나이며, 평안에서 하나, 애정에서 하나, 거룩함에서 하나이며 또한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여러분이 그와 함께 고통을 당하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여러분이 그와 함께 즐거워하겠다는 엄숙한 선언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에 의해서 여러분이 참 포도나무의 가지들이며 숙명적으로 모든 가지들에게 연합되어 있고 같은 성령이 모든 가슴에 퍼지기를 바란다고 선언합니다. 여러분이 같은 금 등대의 등잔들이며 그리고 같은 금 기름이 여러분과 그들로 계속 타고 어두운 세상에서 빛들처럼 비추이기를 바란다고 선언합니다.

다시 한 번 많은 사람들이 이 상에서 떨어져 있어야 함을 아십시오.

여러분 중의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사랑의 불꽃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들은 그들을 박해하거나 혹은 멸시합니다. 여러분의 혀는 그들에 대하여 날카로운 면도날과 같으니 여러분은 그들의 은혜, 회심, 성령의 일에 대한 말을 조롱합니다. 여러분은 그들의 회심을 미워하니 그것이 빈말이며 위선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이 신이 나서 하나님의 일을 말할 때 여러분이 끼어들어 여러분이 그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무슨 이유로 이 거룩한 상에 와야 합니까? 이것이 위선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엄중한 모습과 자세를 취하고 열심히 그 상으로 급히 나아가 자리에 앉아서 깊이 진지한 태도를 보이며 자기가 회심했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하는 체하며 손에 떡을 듭니다. 그런 다음 자신이 예수에 의지하여 살며 성령에 충만한 사람 중에 하나인 체하면서 감격해 하는 명백한 모양을 내며 부서진 떡을 먹으며 부어진 포도주를 마십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독교인들을 사랑하며 모두가 자기와 함께 주 예수의 은혜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라는 체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넘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동안 내내 여러분은 그들을, 그들의 생각을, 그들의 행위를, 그들의 친구를 미워하고 싫어합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위해서는 기도의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영혼들이여, 이것이 위선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저는 여러분이 양의 옷을 입은 이리가 되어 오는 것보다 차라리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오는 것을 보는 게 낫다고 엄숙하게 주장하는 바입니다. 여러분이 이 상에 앉아 있는 동안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라고 말씀하는 주 예수의 목소리를 듣게 되지 않을까 두렵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신자여, 당신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줄”을 아십니다. 이 순전하고 거룩한 생명이 회심한 가슴에서 첫 인상들의 하나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의 친구입니다. 악한 사람들과 영원을 지낸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지옥이 될 것입니다. 오셔서 사랑의 잔치에서 이 사랑을 나타내십시오.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있었던 상은 단지 영광의 다락방에 있는 상의 모형이며 보증일 뿐이었습니다. 곧 우리가 아래 있는 상을 위에 있는 상으로 바꾸게 될 것이며 거기서 우리는 영원, 영원토록 우리의 사랑을 충분히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거기는 어떤 배신자들도 올 수 없으니 “부정한 자는 들어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상석에 계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은밀히 답하도록 젊은 성찬 참여자들에게 던지는 질문들:

  1. 그대가 주님의 상에 오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대의 아버지나 어머니 혹 땅 위의 다른 누구를 기쁘게 하려는 것입니까?
  2. 그것이 습관이어서 그리고 그대의 친구들과 동료들이 오기 때문입니까?
  3. 그대가 인생의 일정한 시기에 이르렀기 때문입니까?
  4. 그대가 주님의 상에 오려고 하는 진정한 동기들은 무엇입니까? 그대의 영혼을 구원하신 일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려는 것(시116:12,13)이나, 예수님을 기념하기 위한 것(눅22:19)이나,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가려는 것(요13:23)입니까? 아니면 그것이 세속적인 자랑을 위한 것입니까? 명성을 얻으려는 것입니까? 돈을 벌기 위한 것입니까?
  5. 그대는 주님의 상에 와야 할 사람은 누구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할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6. 오직 진정으로 회심한 사람들만 와야 한다고 그대는 생각합니까? 회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7. 만일 그대가 스스로 회심하지 않았음을 알았으면 왔겠습니까?
  8. 자기들의 영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었지만 그리스도께 오지 않는 사람들은 와야 합니까?
  9. 그대는 성령에 의하여 깨우침을 받았고, 그리스도께 이끌림을 받았다고 생각합니까? 무엇이 그대로 하여금 그렇다고 생각하게 합니까?
  10. 부서진 떡과 부어진 포도주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11. 떡과 포도주를 그대의 손으로 받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대는 진심으로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까?
  12. 그것들을 먹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대는 진실로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살아갑니까?
  13. 그대와 함께 같은 상에 앉은 사람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대는 진실하게 형제들을 사랑합니까?

<성찬 절기에 묵상해야 할 말씀>

  • 출12장·시22, 51, 116편·아가서·사53장·마22:1-14; 26, 27장·막14, 15장·눅22, 23장·요13, 14, 15, 16, 17장·고전11:23-34

– 1841년 10월. 세인트 피터 교회, 던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