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 그 눈물과 기쁨
본보는 교단 내 개척목회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주께서 주시는 위로와 소망을 틈틈이 함께 나누려 한다. 개척 준비 중이거나 개척 후 분투, 시련, 안정의 길을 걷고 있는 당사자들의 진정성이 담긴 다양한 글(수기, 편지, 일기, 제언, 보고 등)을 기다린다(A4 용지 2장 이내). 또한 주변의 신실한 개척목회자들을 제보로 소개해 주기 바란다. <편집자 주>
이제 다시 개척이다!
< 이원평 목사, 합신 36회 졸업_춘천에서 교회 개척 중 >
“성경을 진실하게 믿고 가르치는 신학교에서 배우는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주님의 뜻을 따라 성실하게 목회하도록 성령께서 이끌어 주실 것임을 믿는다.”
1997년 군 제대를 앞둔 여름에 소명을 받고 이듬해 신학대학에 입학하자 고향 교회의 목사님과 성도님들은 내가 회개하고 신학생이 되었다며 기쁘게 축하해 주셨다. 그리고 장학금과 책값, 심지어 용돈도 주시며 격려해 주셨다. 그렇게 많은 분들의 축복과 기대 속에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도의 길을 걷게 됐다. 내가 자란 교회는 100년도 더 전에 선교사님이 세우셨고, 3.1운동 당시에는 그 일대에서 큰 역할을 감당했던 거점 교회였다.
조부모님과 손자들까지 가족 4대가 예배를 드리고 내가 목사 안수까지 받은 그 교단은 사실 장로교단도 합신도 아니었다. 사실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교단과 그 신학적 의미를 거의 몰랐다. 대부분이 그렇듯이 부모님 손에 이끌린 것이지, 신학적 신념 때문에 그 교단 교회에 등록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와 교리를 배우며 나는 일종의 신학적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신념은 어느덧 나를 일종의 신학적 회심에 이르게 했다. 아니, 신학교에서 진정한 영혼의 회심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문제는 나의 신학적 신념과 내가 속한 교단의 정체성이 매우 달랐다는 점이다.
그렇게 갈등이 시작되었고 그 갈등은 오랜 기간 나를 힘들게 했다. 그 교단의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회를 개척했지만 내면의 갈등은 지속되었다. 당연히 그때의 신학 동기들과도 소원해졌고 지방의 목사님들과도 친밀한 교제를 갖지 못했다.
2011년 봄, 기나긴 고심 끝에 평생 성장하고 안수까지 받은 교단을 떠났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는 신학적 자유주의의 흐름과 혼란된 교단의 정치 상황을 더 이상은 감내하기 힘들었다. 솔직히 나의 결정이 과연 올바른지에 대한 회의도 있었다. 주위의 만류와 목회 현실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오랫동안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교단에 머무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개척했던 교회와 정든 교단, 동기들을 떠난 후 한동안은 아내와 아이들을 바라보자니 미안하고 막막하기만 했다. 많이 외로웠다. 실로 오랜만에 신학생이 나왔다며 장학금과 도서비까지 듬뿍 지원해 주시던 고향 교회의 목사님과 성도님들께도 너무 죄송했다. 고향의 목사님은 반대하시며 화도 많이 내셨다. 그래도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 교단에서도 한동안은 퇴회 조치를 미루고 다시 돌아오면 언제든지 받아 주겠다고 까지 했지만!
이듬해인 2012년 나는 그토록 바라던 합동신학대학원에 입학을 할 수 있었다. 이전에 한국교회사를 공부하던 중에 박윤선 박사를 만났고, 합신의 설립 과정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합신은 나의 마음에 강렬히 자리를 잡았다. 한번은 새벽까지 박윤선 박사의 전기를 읽다가 너무 가보고 싶은 나머지 대전에서 아침 일찍 한달음에 달려가 합신 교정을 거닌 일도 있었다. 그때 발걸음을 돌려 내려가기 전에 ‘아, 나도 이런 곳에서 신학을 배우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잠시 하늘을 향해 눈물의 기도를 올렸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기도가 응답되었다!
성경을 진실하게 믿고 가르치는 신학교에서 배우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모두 그렇겠지만 내게는 각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건강이 좋지 않아 처음 일 년은 휴학할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 복학을 했지만, 가방 속에는 한동안 진단서가 들어 있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공부를 말렸지만, 내가 계속 배워야 된다고 하자 진단서를 써 주셨던 것이다. 그분은 내가 학교 공부를 다 못 마칠 것으로 생각하셨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드리며 다녔다.
수업 외에 따로 밤늦도록 공부하는 것은 힘들어 수업 시간에는 정말 귀를 기울여 들었다. 본의 아니게 나는 합신에서 가장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났으며 많이 쉬는 게으른 신학생이었다. 그런 생활 중 나는 채플 시간마다 큰 은혜를 받았고 수업에도 늘 감사한 마음으로 임했다.
공부하며 교단 내에서 파트 사역지까지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학업 중에 졸업 후 교회 개척을 염두에 두게 되었다. 물론 좋은 교회에서 부교역자의 경험도 쌓아 보고 싶었고, 자립된 교회의 안정적인 청빙도 소망하기는 했지만,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여러 군데 이력서도 내보았지만 결과는 없었다. 전임 사역지가 주어지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던 때도 떠오른다.
무사히 합신의 과정을 다 마치고 대구의 모 교회에서 2년 동안 파트 사역자로 받아주셔서 감사하게 사역한 후 지난 연말에 사임을 했다. 그리고 지난 석 달간 하나님께 진로에 대한 인도를 구하며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얼마 전에는 앞일과 사역에 대한 조언을 듣고자 개혁주의 목회의 모범을 보여 주고 계신 선배 목사님을 찾아뵈었다. 그분과 대화하던 중에 개척에 대한 논의가 오갔고, 목사님은 격려해 주시며 다시 개척해 보라고 용기도 북돋아 주셨다. 그 목사님은 내게 너무도 고마운 분이다! 그분은 내가 교단을 옮기고 합신에 입학하기까지 친절한 조언과 지대한 도움을 주셨다. 또 장학금 등으로도 후원해 주셨다. 그분이 왜 나를 이토록 도와주시는지 그 이유를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하나님의 호의와 은혜라는 것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지면을 통해서나마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그렇게 개척할 결심을 굳히고 집으로 내려오면서 기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는데, 기뻤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시 교회 개척의 은혜를 허락하셨기 때문이었고, 두려웠던 이유는 나의 부족함 때문이었다. 과거 개척 경험을 통해 부족함과 연약함을 뼈저리게 겪었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솔직히 지금도 별로 나아진 것 같진 않다!
그러나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주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은혜를 구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구원하시는 은혜를 전하는 이정표가 되게 해주십사 진심으로 아뢰었다. 내가 흠모하는 존 뉴턴과 로이드 존스 목사의 생애처럼 말이다. 내 마음은 이내 소망으로 충만해졌다. 감사하게도 망설이던 아내도 의기투합했다. 어린 줄로만 알았던 자녀들도 기도하며 전도하겠다고 힘을 보탰다. 고등학생인 큰 딸은 반주할 수 있고, 중학생인 둘째 딸은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만들어 보겠다고 한다. 셋째 딸은 예쁜 솜씨로 교회를 꾸밀 수 있을 것이다. 막내는 자기 친구들을 많이 전도하겠다고 한다.
요즘은 주일 설교와 전도 계획을 세우며, 개혁교회 전통에 합당한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예배 순서를 구상하는 중이다. 성도의 ‘일치된 신앙’과 ‘바른 신앙’의 진작을 위해서 요리문답을 어떻게 가르치며 해설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있다. 수요일은 신앙 강좌(성경개론, 신앙고전 해설, 교회사 강의 등)와 기도회를 겸한 형태로 진행하려고 한다. 또한 규모가 작겠지만 교회도서관도 일단 시작할 것이다. 알차고 아름다운 영혼의 도서관으로 성장할 것을 꿈꿔 본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마치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6-8).
사도 바울이 남긴 이 유언은 죄악의 깊은 늪에서 방황하며 죽어가던 한 청년을 돌이켜 거룩한 목회 사역으로 이끌었다. 바로 이 말씀이 지금까지 나를 붙들어 주었다. 이 말씀이 아니었다면 진작 목회를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다시 개척이다! 앞에는 강원대학교가, 옆에는 강원사대부고가, 뒤에는 서민 아파트 단지가 있는 최적의 입지를 주님이 허락하셨다. 도시에서는 매우 드물게 주위에 교회도 하나 밖에 없다. 주께서 예비하신 터로 믿는다.
말씀 가운데, 말씀과 함께 거니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며 치유하시고, 위로하시며 회개에 이르게 하실 것임을 나는 믿는다. 열심히 기도드리며 주님의 뜻을 따라 성경에 입각하여 성실하게 목회하도록 성령께서 이끌어 주실 것임을 또한 믿는다.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