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땅에 단비를| 물가놀이_김형남

0
469

물가놀이1

<마른 땅에 단비를>  

물가 놀이  

< 김형남, 아시아 일꾼 >

 

 

“물속에 그를 잠기게 하고 막 일으키던 순간, 내 목울대가 갑자기 치솟으며 울컥했다”  

 

    매번 그렇지만, 그 날 아침은 유난히 시간을 다그치며 집을 나섰다.  

어깨 가득 짐들을 짊어지고, 20여분을 걸어 C국인들과 약속된 좁고 비탈진 곳에 도착했다. 그 번잡한 곳을 굳이 약속 장소로 잡은 것은 ‘쉬’의 집이 그 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17세를 갓 넘긴 꽃 같은 나이에 쓰러져, 20년의 세월을 일그러진 채로 자신의 볼품없는 처지처럼 그 비탈진 곳에서 살아오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배불뚝이 ‘리씬’이, ‘물가 놀이’를 위해 미리 예약해 놓은 중형 버스를 타고 짐짓 늠름하게 가파른 길을 올라온다. 한 번도 늦어 본 적 없는 ‘쟝’ 교장이 오늘은 두 딸과 아내를 특별 손님으로 초대해 데리고 오느라 헐레벌떡 늦었다.

   18명이 다 모이니, 마치 참새가 방앗간에 모인 듯, 버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버스가 성큼 회색 도시를 막 벗어나자 저마다 고린내를 풍기면서 시끌쩍했다. 재미에 겨워 방정을 떨던 ‘따이’는 웃음을 참느라 신음했다.

   그때, 깔깔거리는 웃음 사이로 갑자기 가느다란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쉬’였다. 곧 그치려니 했지만 흐느낌은 통곡으로 변했다. 누구보다도 아내가 당혹해 했다. 허겁지겁 ‘쉬’ 옆으로 자리를 옮긴 아내 보기가 민망하다. 오늘이 있기까지 아내가 쏟은 피와 땀이 얼마인데, 초장부터 파장 분위기라니.

   나는 숨이 콱 막혔다. 그러나 한술 더 떠 나를 헷갈리게 한 것은 통곡하는 쉬를 안고 좋아 죽겠다는 양, 헤 벌린 입으로 히죽거리며 웃는 아내의 모습이었다. 아내로부터 사정을 조목조목 듣던 모두가 길고 편하게 숨을 내 쉬었다. ‘쉬’가 난데없이 떨어진 폭탄처럼 아내로부터 사랑을 소나기처럼 받으니 행복에 복받쳐 우는 것이란다.

   장애를 천형인 듯 속절없이 끌어안고 홀로 된 노모와 살아오며, 낯이 깎이고 아니꼬운 일을 체념하듯 받아들이고 살아 왔던 모녀가 아니었던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진득한 시선이 창피해 숨도 못 내쉬고 참아 왔던 ‘서러움 한 덩이’, 그게 통곡이라는 카타르시스로 터져 나왔던 모양이다.

   버스가 좁은 시골길을 휘휘 돌아 물가 놀이하기로 작정해둔 곳에 도착했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버스에서 내렸다.

   전화로 ‘세례 어쩌고..’ 하면서 말할 수 없어, ‘물가 놀이’는 세례를 준비하며 만든 우리 끼리만의 암호였다. 전엔 여관을 빌려 욕조에서 침례를 했지만, 이번 참엔 마음을 다 잡고 아예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며칠 전에 덜컥 찾아 온 차가운 초가을 날씨에 모두 기가 죽었었는데, 우연치곤 딱 거짓말 같은 뜨뜻한 바람이 기뻐 촐랑거리는 우리 일행들을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큰 아들 녀석이 떡 벌어진 어깨로 ‘쉬’를 업고 앞장을 서고, 우린 그 꽁무니를 따라 줄줄이 일렬횡대로 가파른 계곡 밑으로 더듬거리며 내려갔다.

   물은 생각 밖으로 깊었고 경사가 심했다. 기도가 절로 나왔다.

겅중거리며 한참을 휘젓고 다닌 끝에 적당한 곳을 찾았다. 묶어 놓은 배에 모두 올라 우선은 진을 쳤다. 육자배기 한가락 뽑듯 찬송을 부르고, 세례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일장 연설을 했다.

   ‘쟝’이 제일 처음으로 물 안으로 들어 왔다. 복음에 반응하고 해외 일꾼인 나보다 더 열심인 아름다운 청년, 그래서 항시 고마운 청년. 그리고 육십을 훌쩍 넘은 ‘리’, 평생 회교를 섬기다 자폐증을 앓는 청년 아들의 장애를 가슴 저미는 아픔으로 끌어안고 살아오다, 더 이상 무너져 내릴 수 없는 연약한 무릎으로 주님 앞에 선 배불뚝이의 아비. 물속에 그를 잠기게 하고 막 일으키던 순간, 내 목울대가 갑자기 치솟으며 울컥했다. 그러나 왠지 울음을 토해내는 것이 어설플 것 같아 침을 애써 꿀꺽 삼켜 진정시켰다.

   다음 차례는, 평생 한(恨)을 먹고 살아 왔던 그의 아내 ‘이’.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원통함을 부둥켜안고 살아오다 주님을 만나 이제는 동역자가 된 어여쁜 숙녀 ‘헝’. 영화에서나 봄직한, 천사보다도 아름다운 통렬한 미소를 날리며 물 안에 들어 선 ‘쉬’의 어미 ‘티엔’. 라틴댄스에 인생을 걸고 살아오다 주님을 만난 딸 같은 ‘따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듯 흉측한 장애를 얼굴에 달고 사는 묘족 소녀 ‘콩창’. 그녀로 인해 그 씨족 마을 역사에 처음으로 선포된 원색적 복음. 마지막으로, 물이 무서워 배에서 기다리고 있던 ‘배불뚝이’와 늘어지는 몸을 가눌 수가 없어서 배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쉬’.

   응어리져 맺힌 것을 풀지 못해 억울하고 분한 가슴으로 살아 왔던 그들. 두 마리 암탉을 잡아 왕자처럼 점심을 즐기고는 고즈넉한 계곡 자락이 내려다 보이는 조그만 밭두렁으로 다시 하나 둘씩 모여 들었다. 그리곤 몇몇이 저 산자락 너머에다 대고 고함들을 꽥꽥 괜히 질러 댄다.

   아내 구미경은 집에 돌아와서까지도 눈물을 훔치며 며칠을 킥킥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