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편지>
그리운 설날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 >
산록의 까치들이 법석이며 겨울을 누빈다. 불 켠 추억의 남포등 속에 정다운 모습들이 떠오른다.
눈구름이 가까이 내려온 날, 부엌으로 장독대로 분주히 설날을 준비하던 어머니의 발길. 솔가지 타는 아궁이에 풍로를 돌리며 못내 세밑의 아쉬움을 털어 넣듯 송진 묻은 장작을 쪼개 넣으시던 아버지. 맛깔스러운 음식들의 향기. 굴뚝은 종일 뻐금뻐금 연기를 뿜고 밤 깎으시던 누런 할아버지 곁에서 사람살이 굳어진 속통을 단아하게 깎는 법을 배우며 차진 인절미를 볼 붉힌 홍시에 찍어먹곤 했다.
닳아빠진 고무신에 이윽고 흰쌀 같은 눈이 쌓이면 복슬강아지 발자국을 덧찍으며 아이들과 마실을 돌던 흙담 길이었다. 얼부푼 밤엔 칼 시린 시절의 손바닥을 화롯불에 설설 녹여 깊은 사랑을 톡톡 구워주시던 할머니의 탈바가지 얼굴. 그 주름 주름마다 맺히던 꽃망울. 겹 바른 창호지에 이울던 종짓불도 밤늦도록 붉고 구수하였다. 그립다. 정 깊이 모여들던 아늑한 앞마당.
큰 명절 설날에는 이토록 세파의 한시름을 놓고 인생의 시린 손바닥을 잠시나마 함께 녹이며 서로 사랑을 채워주던 정이 가득했다. 요즘엔 그 따뜻함이 많이 사라지고 힘들어 굳어진 표정의 귀향 행렬이 종종 우리를 안쓰럽게 한다. 왜 이리 서글퍼진 세태인가. 왜 이리 싸락눈처럼 쓸쓸해진 마음들인가.
경제만이 전부는 아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 사랑하며 사느냐, 어떻게 참된 행복을 함께 나누느냐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오랜만에 다시 만난 이웃들 친지들과 활짝 핀 얼굴들로 서로 축복해 주던 그 따뜻함이 몹시 그립다.
이 나라 성도들이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고 불빛 추억 속의 설날처럼 아늑한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면 좋겠다. 온 마을과 이웃과 가족들을 서로 끈끈히 엉기게 하던 그 뜨거운 온정의 화롯불이 더욱 활활 지펴지기를 기도한다. 외로움도 쓰라림도 계층도 세대도 그 무엇도 다 한 솥에 녹여내는 그리운 설날, 돌아오거든 다시 뜨거운 아랫목으로 함께 차지게 엉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