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110)
그래도 의인은 제 길을 간다 하박국 2:1-4
< 정창균 목사, 남포교회 협동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
“세상이 어떻게 뒤집어져도, 신자는 여전히 제 길을 간다”
신자로서 현실을 살다보면 때로는 하나님이 많이 서운할 때가 있다. 우리의 신학이 통하지 않고, 우리의 신앙이 먹히지 않는 현실을 살아야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서운하다.
서운함이 사무치면 하나님이 위로가 아니라 상처가 된다. 상처가 오래 되고 깊어지다 보면 때로는 하나님이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분노의 대상이 될 때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 따져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오랜 옛날에 선지자 하박국이 하나님을 향하여 쏟아낸 항변도 바로 그 문제였다. 그는 하나님께 격렬하게 항변하고 탄원한다. “왜 이러시는 겁니까?” “언제까지 이러실 겁니까?” 그가 쏟아내는 항변의 핵심은 매우 간단하고 분명하다. 그것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하나님이 이 현실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성품과는 딴판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신다. 마치 못 보시는 분처럼 하나님은 가만히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세상이 돌아간다. 선지자는 이런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
둘째는 하나님은 기도를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부조리하고 불의한 삶의 현실을 놓고 하박국은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울부짖음이었다. 그런데도 마치 못 들으시는 분처럼 하나님은 아무런 대답도 안하신다. 부르짖는 간절한 기도는 허공을 치는 메아리처럼 되돌아온다.
불의한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무관심, 간절한 외침에 대한 하나님의 무응답! 이것이 선지자가 삶의 현장에서 직면하는 문제다. 그렇게 확실한 자신의 신학과 신앙이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전혀 통하지 않고, 먹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신학과 현실 사이의 괴리, 신앙으로 고백하는 하나님과 일상의 현장에서 확인하는 하나님 사이의 불일치이다. 그래서 그는 괴로워하고, 번뇌하고, 황당해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따져 묻는다. “어찌하여 이러시는 겁니까?” “어느 때까지 이러실 겁니까?” 하박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드디어 하나님의 응답이 임하고 있다. 성루에서 말씀이 선포되고 있다. 파수대에서 말씀이 울려 퍼지고 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 말씀이 얼마나 확고부동한지 판에 새겨진 것 같다. 판에 새긴 것은 지울 수도 없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또한 그 말씀이 얼마나 선명하고 분명한지 달려가면서도 읽을 것 같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이중적인 뜻을 담고 있다. 죄인은 믿음으로 의인이 된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해석이다. 그러나 이 말씀이 담고 있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믿음으로 의인이 된 사람은 현실이 어떻게 뒤바뀌어도 여전히 믿음의 길을 간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이것을 히브리서 기자에게서 배운다. 이 말씀을 풀어서 말하면 이런 말이 된다. “의인은 그래도 믿음의 길을 간다!” “세상이 뒤집어져도, 신자는 여전히 제 길을 간다!”
이 응답을 통하여 선지자가 분명하게 확인하는 사실이 있다. 두 가지 이다.
첫째로 역사는 어떤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곳을 향하여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악한 세력이 맹위를 떨치는 현실에서도 그가 내리는 결론이 그것이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리라!”(2:14). 상황이 이렇게 처참한 지금도 역사는 여전히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그곳을 향하여 가는 중이다.
둘째는 역사는 지금도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확신이다. 때로는 어떤 독재자나 재력가가 이 현실 역사를 제 맘먹은 대로 주무르며 이끄는 것 같아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아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갈대아의 등등한 위세가 현실이 되는 현장에서 하박국이 내리는 다음 결론이 그것이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어다!”(2:20).
오늘 날 교회 밖 세상이건, 교회 안 세상이건, 신자이건 불신자이건 정신 차리고 들어야 할 말씀이 바로 이것이다.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이 정하신 곳을 향하여 가고 있다. 역사는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이 다스리고 있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이 두 사실을 보는가 보지 못하는가의 차이이다. 이 사실을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현실 세상이 어떻게 잘못 돌아가고 있어도 휘둘리지 않는다. 세상이 어떻게 뒤집어져도 변절하지도, 도망가지도 않는다. 그냥 자기의 길을 갈 뿐이다. 여전히 제 길을 간다. 세상이 뒤집어져도 여전히 믿음으로 오늘의 현실을 살아간다.
세상이 이런데 언제까지 이러실 거냐고 따져 묻는 하박국에게 결국 하나님은 이렇게 되물으신 셈이었다. 세상이 이런데 너는 어떤 길을 갈 거냐고. 악인들로 세상이 뒤집어지고 있을 때 너는 어떤 길을 갈 거냐고. 그리고 하나님이 스스로 주신 답은 그것이었다. “의인은 그래도 제 길을 간다!” 세상이 어떻게 뒤집어져도, 신자는 여전히 제 길을 간다!
새해에 우리 각자가 그리고 한국교회가 가야할 길이 바로 그 길이다. 그만 남 탓하고, 권력의 언저리를 그만 기웃거리고, 더러운 탐욕을 그만 가슴에 품고, 신자답게 그리고 교회답게 제 길을 가는 한 해를 살아야 한다. 그것이 새해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또 한 번의 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