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수상| 하나님께 완강한 한 인생의 낙조를 보며_김성렬 목사

0
136

하나님께 완강한 한 인생의 낙조를 보며

< 김성렬 목사, 소망동산교회 >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면 멋있고 아름다운 인생 살고 있었을 것”  

 

   “목사님! 우리 할아버지 심방을 좀 가 주실 수 있을까요?” “예, 그렇게 하죠. 지금 교회로 오세요.”

   양 할머니의 전화다. 나는 아내와 함께 양 할머니를 태우고 요양원으로 향한다. 요양원에는 할머니의 남편이 금년 90세의 고령으로 요양원에 누워있다. 이 분은 필자가 교회를 개척한 후 처음으로 전도를 한 대상이다. 이유는 교회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15년이 흘렀다.

   이 분을 주목하게 된 것은 교회를 개척하고 전도를 하는 중에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었고 그는 신망이 두터운 이 지역의 유지였고 동네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였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우리 교회에 나오면 그만큼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가 수월할 것 같았고 전도의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 분에게 모든 심혈을 기울여 전도했다.

   그는 이 지역에서는 드물게 명문대학을 나온 인텔리요 엘리트 인사였다. 도시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일인지 모르겠지만 50-60여 년 전에는 시골에서 명문대학을 나온 사람이 거의 없었고 군대를 장교로 갔다 온 사람은 더더욱 희귀했다. 이런 정도의 학력과 이력이면 당시에는 지역의 인물이었고 국회의원 후보로도 나설만 했다.

   그는 전역 후 농업행정분야에 투신해 토지개량조합(지금의 농어촌진흥공사)이라는 기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유능하고 공사가 분명한 그의 품행은 직장 내 상하의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신망을 얻었으며 승승장구하였고 최고의 자리인 조합장에까지 올랐으며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었다.

   이 분을 만났을 때는 은퇴를 한 후 한참 지났을 때였다. 그는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며 그의 집은 구석구석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이 분에 대해 탐색을 한 결과 복음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의외로 완강한 태도에 내심 놀라게 되었다. 그래도 이런 저런 구실과 명분을 내세워 이 분을 접하게 되었고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 그 결과 그의 부인인 양 할머니를 전도하게 되었다.

   양 할머니로부터 들은 바로는 이 분이 공직에 있을 때 공정하고 청렴한 처신으로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불의를 보면 타협하지 않았으며, 약한 사람들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에 그의 집에는 항상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그는 또한 집안의 장남으로 4-5명의 동생들을 가르치고 시집 장가를 보내는 등 집안의 대들보요 부모의 역할까지 훌륭하게 감당할 만큼 형제우애도 깊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그는 자연히 집안의 형제들과 주변사람들의 신망을 얻게 되고 지역의 일꾼으로 주목을 받게 되어 지역민들로부터 정계진출의 권유를 끊임없이 받았지만 한사코 이를 거절하며 자신의 분수를 잃지 않으려는 겸비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의아한 구석이 있었으니 하나님에 대한 완강하고 부정적인 태도였다.

   들은 바에 의하면 그의 자녀들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친구의 전도를 받고 인근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고 한다. 웬만한 부모들은 자기가 교회에 다니지 않아도 자녀들이 교회에 다니는 것은 간섭하지 않는 것이 사회의 분위기였다. 더구나 지식인일수록 교회를 보는 시각이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주던 때였다. 그런데 그는 심하다고 할 정도로 자녀들의 교회 출입을 핍박했다.

   어느 주일날에는 주일예배에 참석한 자녀들이 예배가 진행 중인데도 교회에 들어가서 끌어내는 해프닝 을 벌였다고 한다. 예배를 인도하던 목사님은 그 광경을 보고 얼마나 당혹스럽고 민망했을까? 그 교회의 장로님들이나 교우들 중에는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들은 이 광경을 보고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그 정도로 끝낸 것이 아니라 자녀들을 집에 데려와서는 다시는 교회에 가지 않겠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매질을 했다고 한다. 이 일로 인해서일까? 그의 자녀들은 지금까지 교회에 다니지 않고 있다. 그들도 지금은 초로의 나이가 되어 늙어가고 있다.

   그동안 그에게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의 도리를 전심을 다하여 전하였다. 그는 자신의 인격과 예절을 발휘하여 상대방의 말을 가로막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러나 그 반응은 항상 냉랭하고 싸늘했다. 조목조목 자신의 지식과 삶의 경험,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허물을 집요하게 지적하며 하나님을 외면했다.

   그에게서는 두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는 나름대로 엄격하며 주변 사람들에게는 후한 인심과 배려를 잘 하면서도 하나님께는 완강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마 자기 의(義)에 사로잡혔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이 분과 만난 지 15년이 흘렀어도 그는 여전히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교회에는 영혼들이 하나 둘씩 전도되어 모이게 되었고, 필자는 지금까지 하나님께 완강한 이 영혼을 예수님께 인도해 보려고 영적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양 할머니는 지금도 예배 때마다 눈물로 예배를 드린다. 남편을 생각하고 자녀들을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며 신음과 절규를 하며 살고 있다. 우리 교우들은 이 분과 이 가정을 보면서 깊은 교훈과 두려운 신앙체험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면 저 분의 인생을 얼마나 멋있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있었을까? 저분이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의 진리를 깨닫고 살았다면 저분의 가정과 자녀들의 인생은 지금쯤 얼마나 달라져있을까? 또한 저분을 통해서 주변의 많은 이웃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우리 교우들이 안타까워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들을 한다.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예수를 잘 믿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