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강해 <7>| 이방인_김근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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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갈라디아서 2장 14-21절

< 김근배 목사, 동해참빛교회 >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신자들은 이방인들처럼 살지 않아야”  

 

1. 들머리(발단)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이방인들과 구별한 근거가 ‘율법의 의무’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 지킬 의무조차 없는 사람들을 이방인이요 죄인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대인들만이 하나님의 율법을 의무로 준수했다. 율법의 의무를 지지 않았던 이방인들은 이방인의 뜰에서만 하나님을 섬기게 했다. 이것이 유대교이다.

   ‘이것이 유대교이다’라는 말에 주목하자. 유대인들은 유대교 아래 있을 때 유대인이 된다. 이 말은 사도 바울이 사도 베드로를 혼낸 근거가 되었다.

   “당신(그리스도인)은 유대사람으로서 유대사람(유대교 율법의무)처럼 살지 않고 이방사람(율법해방 자유인)처럼 살고 있다(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 덕에 얻은 자유 때문에 그렇게 됐다). 그런데 이방사람(그리스도인)에게 어떻게 유대사람(유대교 율법)처럼 살라고 강요합니까?(이것은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에서 흔들려 율법의 의무에 매여서 나온 행동 때문에 나온 책망이다)”(2:14).

 

2. 주제(전개)

   F.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는 유대인으로서 유럽(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프라하(현재 체코 수도)에서 태어나 독일어(독일인)를 쓴 이방인이었다. 카프카는 네 개의 변신이 겹쳐진 경계인이었다. 유대인 태생, 유럽인 선망, 독일어 교육(유대 흔적 탈피), 그런데 결국은 이방인이었다. 카프카는 모든 것에 소속되었으나 동시에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것이 이방인이 갖는 좌절이다.

   이방인은 오늘 왔다가 내일 떠날 수 있지만 내일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은 사람을 말한다. 이방인은 오늘도 여기 살고 내일도 여기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주변의 모든 것에 친숙함을 못 느낀다. 항상 낯설다. 그들은 안다. 모든 걸(태생, 모국어) 버리고 왔는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자기 자신을 알고 있다.

 

3. 전개(위기)

   어떤 존재가 되어 어디 소속하겠다는 것은 다른 모든 것에서 단절하겠다는 각오를 하게 한다. 사도 바울은, 본래 자기는 유대사람인데 유대교에서 가르친 대로 율법의 의무를 지켜서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에서 단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고 인정받겠다(2:16)고 선언한다.

   이 선언은 유대사람이면서 그리스도인이 되겠다(칭의)는 고백이며, 그리스도인처럼 살면서 이방죄인들처럼 살지 않겠다(성화)는 다짐이 들어있다. 전자는 아예 존재를 바꾸겠다는 의지이고, 후자는 새로 바꾼 존재답게 살겠다는 자태이다.

 

4. 증거(절정)

   그래서인지 그리스도인들에겐 몇 개의 변신이 겹쳐진 모호한 경계지역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직 의로움(칭의)과 거룩함(성화)을 맹세(고백)한 중생인만 우뚝 선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소속이며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가 자기의 새로운 자신이 되는 형상이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 후로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십니다. 더 이상 내가 나로 살지 않습니다 (나는 없고 그리스도만 있습니다)”(2:20).

 

5. 마무리(결말)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을 비그리스도인들과 구별할 근거는 ‘나는 없고 그리스도가 있음’이다.

   만약 나(자아)도 있고, 육체의 욕망도 있고, 선망의 대상(Role model)도 있고, 복음의 진리에선 탈피(외면)가 있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면서 비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하고 있다.

   이런 사람은 오늘은 여기 있지만 내일은 떠날 수 있는 교회(믿음)의 이방인이다. 그래서 당신을 볼 때마다 항상 낯설다. 이방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