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양서부교회 방문기| “함께 공감하며 새롭게 다짐과 위로를 받는 시간들”_박종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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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공감하며 새롭게 다짐과 위로를 받는 시간들

<박종훈 목사, 궁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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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농어촌부 소속인 합신농목회는 제33차 모임으로 충남 온양서부교회에서 모였다. 분기마다 일 년에 4번 모이지만 늘 기다려지고 설레는 맘으로 참석한다. 이번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그 곳의 담임목사님은 어떠한 목회와 삶을 살고 계실까?

전국을 상대로 지역을 돌아가며 그동안 여러 교회를 방문하여 각기 다양한 은사와 지역적 특색에 따라 묵묵히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는 목회자들을 보고 느끼며 감동을 받고 돌아온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총회산하 여러 부서 중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단체가 농목회라고 하였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같은 농어촌 목회자라는 동질감도 있지만 사역환경이 거의 비슷하기에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해주며 마음이 통하는 공동체이다.

온양서부교회를 방문하면서 목적지가 거의 다 와 가지만 시내를 벗어나지 못하길래 교회당이 도시 안에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불과 몇 백 미터를 남기고 들판의 농로를 지나고 마을을 가로질려 밭이 있는 곳에 벽돌로 지은 이층 교회당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동네와 약간 떨어진 곳이며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성전은 전형적인 시골교회당의 모습이었다. 방연식 담임 목사 부부와 성도들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개회 예배 시간이 다가오며 전국 곳곳에서 회원들이 도착하여 반가운 대화를 나누며 웃는 소리로 떠들썩했다. 충남 노회장의 설교를 통하여 잘 알아듣지 못하는 시골 노인들에게 반복하여 전하는 말씀의 노련함을 한 수 배웠다.

저녁식사를 한 후에 기다리던 방연식 담임목사의 농촌목회와 교회당 건축 이야기를 들었다. 개척하여 34년 동안 인내하며 우직하게 달려온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동받기에 충분했다.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사역환경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충남인 들은 고무줄 특성이 있다는 어느 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지역사람들의 문화와 생활의 배경을 아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하셨다.

또한 직접 전도와 가정의 고장 난 전자제품을 고쳐주며 조금씩 주민들에게 다가가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도 주민들을 만나면 반드시 내려서 인사를 함으로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인근에 저수지가 있는데 농번기철에 마을 아이들끼리 놀다가 그만 익사하는 사고가 났었다고 한다. 농사일에 바쁜 주민들은 아이들을 방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알고 그 때부터 사모님과 함께 병설유치원이 시작되기 전까지 아이들을 교회에서 돌봐주는 사역을 시작하셨다. 이러한 지역상황에 필요한 맞춤식 섬김이 계기가 되어 자녀들의 부모님이 전도되고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교회당 건축에 대해 많은 은혜를 체험하신 과정을 간략하게 말씀하였다. 창고 같은 구 예배당이 겨울에는 밖의 온도보다 낮았고 여름에는 더 높은 기온으로 시급히 건축을 해야 할 열악한 상황이었다. 준비된 자금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와 절대농지인 토지의 허가 문제 등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4개월 만에 이층 벽돌 건물로 완공하고 입당예배를 1992년 12월에 드리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공사 도중에 마을에서도 회관을 건축하려고 관에서 지원금이 나왔지만 건축비가 부족하여 포기하려는 소식을 듣고 방목사님은 책임자들을 찾아가 상당한 기금을 주면서 회관건축을 하도록 힘을 실어 주었었다. 마을 주민들은 이 사실을 알고 감동을 받았고 서로 협력하여 건물을 완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교회당 입당예배 때 주민들은 저마다 봉투를 들고 축하해주었는데 교회에서 회관건축 후원한 금액보다 더 많이 나왔다고 한다. 이 후 관(官)에서 마을 골목길 포장 자금이 나오자 먼저 교회당 진입로를 우선적으로 하도록 마을에서 배려해 주었었다.

좁은 골목길을 차량이 다닐 정도로 넓히기 위해서는 대신 토지매입을 교회에서 해야 했다. 방 목사는 한 사람씩 찾아가서 설득하고 매입을 부탁하며 거절하는 어떤 분에게는 6~7번까지 찾아간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교회가 지역사회에서 선한 영향을 주었고 해가 갈수록 든든히 세워가는 중에 있다고 한다.

목회사역을 뒤돌아보면서 한두 가지 후회되는 점도 말씀을 하셨다. 지금은 합법적이지만 처음 건축할 때 법을 어기면서 진행했던 점과 자금이 부족하여 은행 빚을 안고 갔던 점, 성도들이 어렵게 헌금한 돈을 몇 년간 은행이자와 빚을 갚는데 사용했던 일이다.

목회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그 말씀에 농어촌 목회 후배들인 우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곳에서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다는 세월 속에도 사심(私心)없이 목양일념(牧羊一念)으로 그 자리를 지키며 이제 은퇴를 바라보는 방연식 목사님의 사역에 깊은 존경심을 가지게 되는 이야기였었다.

농어촌 목회는 많은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적은 능력과 사소한 은사라 할지라도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환경이다. 모든 사물(事物)이 그렇듯이 시간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본래의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방목사님의 오랜 세월이 그분의 어떠함을 밝히 말씀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 어찌 그 많은 사역을 다 소개할 수 있으랴마는 같은 시골에서 목회하는 동역자로서 공감하며 더 새롭게 다짐과 위로를 받는 합신 농목회 모임임을 확실하게 느꼈다.

우리의 주인 되시는 주님은 가장 적절한 환경과 장소에 그에 맞는 종을 그 시대에 보내시고 선하게 사용하심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