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108)| 정 직_정창균 목사

0
373

정 직 – 로마서 14장 11-12절

< 정창균 목사, 남포교회 협동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실수하는 것은 연약한 것이지만,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악한 것

 

 

제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시절에는 정부의 높은 사람이 TV 뉴스에 나와서 하는 판에 박힌 말을 자주 듣곤 하였습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는 말입니다. 

정부기관이나 권력을 가진 인사가 연루된 것으로 여겨지는 부정이나 범법행위로 여론이 시끄러워지면 으레 고위 관료 등이 언론에 나와서 국민을 향하여 하는 말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정부나 권력자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수사학적 어법이었습니다. 국민 다수가 정부의 책임이고 고위 인사의 소행이라고 심증을 굳히고 있을 때 한 인사가 나와서 그렇게 발표하고 아니라고 잡아떼는 것이지요.

그런 일이 한 세월 반복되면서 국민들은 정부 인사가 그렇게 말하면 그것은 틀림없이 그 짓을 한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풍조가 생겼습니다. 무서운 불신이지요. 그런 불신은 급기야 정부가 하는 일이나 말에 대한 그 시대 다수 국민들의 보편적인 정서로 확산되고 말았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에서 물가는 절대로 올리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라고 발표하면 많은 사람들은 곧 물가가 오른다는 말로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발 빠르게 사재기를 하였습니다. 한 때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는 말은 들을 수 없습니다. 대신 다른 말이 계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그런 의도도 없었고, 그것은 불법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일을 하겠느냐”는 발표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지 않았다는 것을 믿으라는 강요처럼 들립니다. 이런 상식적인 것도 모르고 우리를 의심하느냐고 국민을 은근히 깔보는 어법같이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위 당국자나 정치인이 여론이 들끓고 있는 문제를 놓고 그런 발표를 하면 그대로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양심으로 보나, 국가의 법으로 보나 그런 짓을 하면 안 되는 시대인 것을 알면서도 그 짓을 했다는 말이냐는 반문을 불러일으킵니다.

할 의도도 없었고, 할 수도 없다는 말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려는 그 발표는 오히려 그 짓을 했다는 말로 뒤집혀서 들립니다. 이전 시대에 속아본 경험 때문에 나타나는 단순한 외상증후군일까요? 나 혼자만 심사가 꼬이고 생각이 비뚤어진 못된 인간이어서 드는 생각일까요?

그런데 숱한 사람들이 발표한 것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있습니다. 해서는 안 되는 짓이면 어떤 책임추궁을 당해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실수로 그 짓을 했으면 했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정직입니다. 왜 우리의 말을 그렇게 믿지 않느냐고 개탄하기 전에, 우리가 처신을 어떻게 해왔기에 이 지경이 되었느냐고 자탄하는 것이 더 시급해보입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할 정치판에서야 정직이 치명적인 장애물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신앙인과 교회는 정직해야 합니다. 이 시대 신자와 교회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다양하고도 참혹한 문제들의 핵심에는 부정직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정직하지 않은 것입니다.

정치판의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때를 따라 정직을 버리는 것이 지혜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특히 영적인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이들은 살아남지 못할지라도 정직을 붙잡아야 합니다.

사람은 죄 된 본성에 젖어있고, 게다가 연약하기 까지 합니다. 자기의 소원과 달리 잘못을 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때때로 어떤 상황에서 잘못을 범하고 실패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실수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실패해서는 안됩니다. 실수하는 것은 연약한 것이지만,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신자의 언행은 단순히 인간 사이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고 단언합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상대로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롬14:11-12).

신자는 자기가 행한 모든 일을 하나님께 직고해야 된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상대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의 궁극적 대상은 사람들일지 몰라도, 신자들의 궁극적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도덕과 준법 차원에서 거짓말하지 않는 삶을 산다면, 신자들은 신앙적 이유 때문에 거짓말 할 수 없습니다. 외형은 똑같아 보일지 몰라도 그 본질은 판이하게 다른 것입니다.

신자인 우리에게 지금 절실하게 그리고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직고하는 심정으로 살아가는 정직입니다. 거기로부터 새로운 시작의 틈새가 열리기 시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