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성공인가? 충성인가?_허태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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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성공인가? 충성인가?

< 허태성 목사, 강변교회 >

 

진정한 목회의 목표인 열매를 맺기 위해 힘써 나아가는 동역자 되기를

 

목회자들 사이에서 언제부터인가 서로 간에 목회의 형편을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의 미덕이 되었습니다.

저 자신도 누군가로부터 ‘요즈음 목회가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저 하나님 은혜 가운데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으로 질문의 예봉을 피하여 두루뭉술한 대답을 한 적이 많은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요즈음 목회가 많이 어렵다고 느껴집니다. 무슨 큰 문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전처럼 등록 교인 수가 증가되고 헌금액수가 늘어나는 것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학교를 갓 졸업하고 개척교회를 하던 목회 초년병 시절이었던 1990년대만 해도 부흥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가시적인 성장이 있었기에 저는 저의 목회가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후 한 조직교회의 담임목회를 하던 2000년대에도 저는 저의 사역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도 조금씩이라도 양적 성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10년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요즈음은 제가 목회에 있어서 실패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등록교인 수도 더 이상 늘어나지도 않고 오히려 주일예배 출석인원은 더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와 정비례하여 교회 재정도 매년 조금씩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가지고 기도를 하며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 보지만 명확한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는 ‘한국교회’라는 배가 서서히 기울어져 침몰해가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

목회가 아무리 어려워도 목회자가 된 것을 한 번도 후회해 보지는 않았지만 성장이 멈추어버린 시대를 무기력하게 지내면서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저의 부족함과 무능함에 목회의 즐거움과 목회자의 긍지를 잃어버리고 만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저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목회에 성공이 어디 있어? 그런 것은 물량주의와 세속주의에 빠진 잘못된 목사나 갖고 있는 태도야. 나는 누가 뭐래도 바른신학과 바른교회와 바른생활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개혁주의 목사야. 진리를 더 깊이 탐구하여 설교하고 설교한 대로 살아가기를 힘쓰는 경건한 목사로 살거야. 거짓 없이 진실하게 설교하고 신실한 자세로 목양하는 일에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 할거야.. 주님은 나의 중심을 알아주실 거야. 목회가 잘 안 되는 것은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고 이제 말세가 되어서 성경의 예언대로 사람들의 마음이 완고해져서 그런 것일 거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니 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요즈음도 성공적인 목회를 간증하는 책을 저술하고 ‘이렇게 목회하라!’는 세미나를 하는 소수의 목회자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다수의 많은 목회자들은 성공 대신 충성을 목회의 목표로 삼고 그저 순교자와 같은 심정으로 목회현장을 참아내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아, 이제 교회의 부흥과 성장의 시대는 정말 지나간 것이란 말입니까?

요즈음 책을 한 권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뉴욕에 있는 리디머(Redeemer) 교회의 담임목사인 팀 켈러(Timothy Keller)가 쓴 센터 터치(Center Church)라는 책입니다.

그 책을 보면, 가장 세속적인 도시인 뉴욕 한 복판에서 30여년 가까이 복음중심의 목회를 하면서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그는 계량적 성공(Sucess)을 가리켜 목회를 잘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역의 유일하고 참된 범주가 충성(Faithfulness)이라고 주장하는 것에도 반대합니다. 성경은 그 이상의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열매 맺음(Fruitfulness)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전도의 열매, 회심의 열매, 경건한 성품의 열매, 성령의 열매와 같은 것 말입니다. 진정한 열매를 맺는 것으로 목회가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성공도 아니고 충성만도 아닌 열매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언제부터인가 열매가 잘 보이지 않는 목회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흐르는 세월을 따라 목회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 교단에서 더 이상 젊다고만 할 수 없는 중진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계수해보니 하나님께서 정년까지 목회를 허락하신다 해도 목회를 한 날보다 목회를 할 날이 훨씬 더 적은 지점에 도달해 있습니다. 한국교회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지고 저를 포함한 우리 교단의 목회자가 어떤 길로 가고 있는지를 바라보며 적잖은 고민을 하며 지냅니다.

경건한 성품과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며 ‘꿩 잡는 게 매’라는 식의 성공일변도의 목회가 정답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결과가 어떻든 충성만 하면 된다는 주장도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목회자로서의 책임과 부담을 지나치게 경감시키고 있으며 현실의 도전으로부터 숨어버린 소극적 자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개혁주의신학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답이 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의 목회는 ‘성공이냐? 충성이냐?’의 지나친 이분법적인 구도를 탈피하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진정한 목회의 목표인 열매를 맺기 위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지 저의 목회를 다시 한 번 깊이 살펴보고 다시 힘써 보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