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검하며 삽시다_안두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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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검하며 삽시다

< 안두익 목사, 동성교회 > 

 

나를 더 풍성하게 하실 주님 앞에서 충전해야 할 시간 가지길

 

 

며칠 전에 2년을 사용하던 핸드폰을 교체하기 위해 우리 부부가 멀쩡한 핸드폰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요즘 20-30여년 전만해도 상상도 못한 것들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 중에 하나가 핸드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선도 없이 어디서나 통화할 수 있는 것은 정말 탄성을 자아낼 만큼 대단한 발명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성능 좋은 휴대폰을 가지고 있어도 방전되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들고 다니다 보면 방전은 불가피합니다. 먼 길을 갈 때는 예비 충전기를 가지고 가거나 충전할 곳을 찾아야 합니다.

가끔 충전 상태를 점검하지 않고 사용하다가 갑자기 휴대폰이 꺼져 버린다면 여간 낭패가 아닙니다. 시간만 나면 플러그 인 해 두어야 합니다. 곧 꺼질 듯한 상태까지 가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인생도 그와 같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일종의 방전이 아닌가 합니다.

요즘 사람들 대부분은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크고 오버로딩(Overloading)으로 탈진현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삶이 까다롭고 힘들어져 가고 있다는 증상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분들은 어쩔 수 없이 정신적, 육체적 노동에 시달려 살아야 하고 불가피하게 경쟁에 내몰리기도 합니다. 남들이 뛰니 혼자서 고고한 학(鶴)인 척 하며 걸을 수 없습니다. 어떤 때는 누가 쫓아오지도 않는데 혼자 도망을 치듯 살아갑니다. 누군가 지금 피곤하고 지쳐 있다면 이미 많이 방전 된 상태입니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피곤하다면 곧 멈출지 모른다는 경고 사인(sign)입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충전의 시간을 가질 틈도 없이 너무 바빠 잔여 에너지를 점검하는 것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이미 밑바닥을 치며 경고음이 울려도 신호를 무시해버립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멈춰 서 버리는 일들이 잦습니다. 방전이 되고도 무리하게 밀고 나가다가 자칫 엄청난 아픔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에너지가 이미 고갈되어 있는 것을 알고도 멈추지 못하고 뛴다면 그것처럼 무모한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고갈 된 것을 어떻게 채우며 다시 윤기 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예레미야 애가 3장 28절에 보면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새 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짊어진 멍에가 무거울 때는 잠자코 있는 것이 좋고.” 참 좋은 번역입니다.

짊어진 멍에가 무거울 때는 잠자코 있으라는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라는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일하면 힘들다는 것입니다. 방전의 속도가 빠르게 되기 때문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잠자코 있는 것입니다. 이 점검이 필요합니다.

피곤한 영혼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비틀거리며 살다가 어느 곳에 짐을 내려놓고 쉬기를 원하지만 쉴만한 곳이 없습니다. 그러다 방전이 되어 낭패를 봅니다. 누구에게나 짐이 있습니다. 그 짐 가운데 중독은 우리가 짊어진 가장 큰 짐입니다.

웹스터 사전은 중독을 “어떤 일에 습관적으로 몰두하여 자신을 그 일에 항복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중독이 있습니다만, 그 중독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이 일중독입니다.

일 중독자는 일을 열심히 하는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라 일에 노예가 된 사람입니다. 일 중독자는 잠시도 놀지 못합니다. 조금만 빈둥거려도 죄책감이 생깁니다. 일 중독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는 없습니다. 일을 잘해서 성공하는 것이기에 오락도 취미도, 봉사도 없습니다. 자기 일에 관한 자기가 하나님입니다. 기다릴 줄도 모르고 하나님이 하신다는 믿음도 없습니다. 그래서 문제입니다.

이와 같은 연약한 인생에게 다가오신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수고한다’는 말은 원문에 능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사서 고생하는 능동적인 고생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무거운 짐’은 원문에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즉 피동적인 고생입니다. 원치 않는 환경 속에서 수난을 겪는 그런 고생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스스로 고난을 취하든지, 원치 않는 고난을 받든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존재입니다. 이런 인생들을 향하여 주님은 위대한 초대를 하십니다.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하나님이 아니면 누가 감히 이런 절대적인 초청과 약속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 오라, 내가 쉬게 하리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절대적인 초청이요 절대적인 약속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높이 나는 새일수록 오래 웅크리고 있을 줄 압니다.

이제 2016년도 꼭 절반을 달려 온 셈입니다. 정말 내 삶이 방전이 된지도 모르는 채 그렇게 달려 왔습니다. 힘들고 지쳐 있습니다. 로뎀나무 아래 널 부러진 채 죽기를 구하는 엘리야가 생각이 납니다. 이 남은 시간들, 그냥 체념하며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 계속 쓰임받고 싶습니다. 절박한 마음이 생깁니다.

남은 후반을 달려가려고 하면 가능한 충분한 충전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혹시 충전기에서 깜빡 거리며 경고음이 울리는지 점검해야 할 시간입니다.

인생은 마라톤입니다. 무조건 달리기만 한다고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속도와 방향을 조절해야 합니다. 힘을 쓰는 것도 필요하지만 완급 조절의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방출되는 만큼 충전은 필수입니다. 나의 삶에 한복판에 오셔서 이제 나를 더 풍성하게 하실 주님 앞에 충전을 해야 할 시간입니다.

우리 동역자 모두 혹시 충전기의 눈금이 밑바닥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점검하고 둘러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