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보적 칭의론’에 대한 유감
여전히 한국교회 안에서 칭의론 논쟁이 식지 않고 있다. 특히 풀러신학교 김세윤 교수가 주장한 ‘유보적 칭의론’으로 말미암은 논쟁이 이를 더 촉발시키고 있다.
김 교수가 문제를 제기한 것처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식의 무분별한 한국교회의 복음 세일즈, 혹은 성공과 번영의 신학이 가져다 준 껍데기만 남은 복음, 또는 거룩한 삶과 실천이 결여된 한국교회의 현실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이다.
사실 이런 논란은 이미 주재권 구원(lordship salvation) 논쟁으로 논의된 바 있다. 구원 따로, 삶 따로인 윤리 실종의 현실에서 ‘믿는다고 다 구원받는가? 그것이 아니다’라는 문제제기가 곧 주되심을 강조했던 개혁주의 그룹에서 주장되었다. 이는 소위 ‘믿으면 구원받는다’면서 구원, 곧 칭의와 성화를 분리해서 생각했던 복음주의 그룹에 대한 반박이었다.
이 문제 인식에 있어서 김 교수의 ‘유보적 칭의론’과 유사한 면이 없지 않다. 곧 값싼 복음, 값싼 은혜를 남발하는 교회의 현실에 대한 지적이 그렇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답은 유보적 칭의론과 같지 않았다.
주재권 구원 논쟁에서는 ‘주 되심’을 강조하면서도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통전적인 구원 안에서 ‘거듭난 자의 거룩한 삶’은 필연적으로 동반된다고 보았다. 한 마디로 거듭난 참된 신자라면 필연적으로 거룩에의 추구가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처럼 주재권 논쟁을 통해 값싼 칭의론을 남발하는 복음주의 교회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칭의 유보론이 아닌 통전적 구원론인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해법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작금의 교회 현실이 종교개혁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행했던 것이 아니라 칭의만을 파편적으로 구원의 서정에서 분리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복음주의자들은 개혁자들이 말한 구원의 서정이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주어지는 ‘하나’의 구원임을 외면했던 것이다.
참된 성도라면 자신이 받은 구원이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자신을 타락한 이 세상 가운데 방임하거나 마땅히 살아야할 거룩한 성도로서의 삶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들은 결단코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교만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자신에게 임한 구원이 자기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참된 신자들은 겸손한 마음과 뜨거운 충성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마련이다. 늘 진리를 사모하는 가운데 참된 경건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힘쓰는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은혜주실 것을 바라는 가운데 간절히 기도함으로 엎드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변함없는 구원을 아는 성도의 진정한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끝까지 지키신다는 사실은 오히려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더욱 힘 있게 살아가도록 이끌어 준다. 그것은 자신의 구원이 자신으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알기에 겸비하여 항상 복종함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매 순간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며 나아가게 된다. 주님이 베푸신 은혜가 너무나 감사하여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분이 허락하신 하루의 삶 속에서, 그분이 베푸시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힘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해 종교개혁의 선물인 도르트신조 제12항 ‘구원의 확신이 경건의 동기가 된다’는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견인의 확실함은 결코 참 신자를 교만하거나 육신의 안일함에 빠지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겸손, 자녀로서의 경외감, 참된 경건, 모든 싸움 가운데 인내, 불붙는 기도, 굳건히 십자가를 지고 진리를 고백함, 견고히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함의 참된 원천이다. 더욱이 이 은택을 묵상하는 것은 참 신자들을 항상 간절히 감사하고 선을 행하게 자극한다. 이것은 성경의 증거들과 성도들의 예에서 명백히 나타난다.”
나아가 제13항 ‘이 확신이 나태함으로 이끌지 않음’에서는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견인의 확신은 구원함을 입은 사람들로 하여금 방탕하거나 경건을 무시하게 하지 않으며 오히려 반대로 더욱 더 세심히 주의를 기울여 여호와의 도를 지키게 한다. 참 신자는 자신의 견인을 계속 확신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것으로 이 도를 행한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자애로운 인자하심을 오용함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로운 얼굴을 가리지 않도록, 더 큰 영혼의 아픔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이는 경건한 참된 신자에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생명보다 더 달며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시는 것은 사망보다 더 쓰기 때문이다.”
차제에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이 우리들에게 남겨준 유산을 더욱 확고하게 계승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