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승귀 사역 <8장 4항>_김병훈 교수

0
879

그리스도의 승귀 사역 <84>

< 김병훈 목사, 합신 조직신학 교수 >

 

 

8장 4항: “주 예수님께서는 이 직분을 매우 기꺼이 받으셨으며, 이를 수행하기 위하여, 율법 아래에 나셨으며, 율법을 완전하게 성취하셨다. 주님은 친히 그의 영혼 안에서 지극히 통탄할 고통을 견디셨으며, 그의 육신 안에서 지극히 고통스러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어, 사망의 권세 아래 놓였으나 썩음을 보지 않으셨다. 셋째 날에 주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고난을 받으셨던 몸과 동일한 몸으로, 살아나셨다. 그리고 그 몸으로 또한 하늘에 오르시어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셨으며, 중보를 하신다. 그리고 세상 끝 날에 사람들과 천사들을 심판하기 위해 돌아오실 것이다.

 

 

본 항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비하와 승귀의 상태, 두 가지로 구별을 합니다. 그 가운데 비하에 대해서는 지난 호에 설명을 하였으므로, 이번 호에서는 승귀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승귀란 제2위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인성을 취하시어 이 땅에 내려오시고 죽으시고 장사되어 죽음의 권세 아래 삼일 동안 머무시기까지에 이르는 수치와 고난의 비하 과정을 다 이루신 후에, 셋째 날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시고, 하늘에 오르시어,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으시고, 세상 끝 날에 돌아오시는 영광의 과정을 가리킵니다.

이와 같은 부활, 승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 그리고 재림의 과정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합니다.

 

  1. 부활

 

본 항목은 “셋째 날에 주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고난을 받으셨던 몸과 동일한 몸으로, 살아나셨음”을 고백하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승귀의 첫 단계로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련하여 살펴볼 바는 부활의 사실, 부활의 시점, 부활하신 몸, 부활 사건의 주체, 그리고 부활의 의의와 관련한 내용들입니다.

 

1) 부활의 사실과 관련하여, 신앙고백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제자들이 꾸며낸 거짓 소문이거나, 또는 그리스도께서 사실은 죽지 않으시고 거의 죽을 만큼 되었을 뿐이며, 그 상태로 마치 죽으신 것처럼 기절을 하셨을 뿐이라는 주장을 부인합니다.

즉 신앙고백서는 주님의 부활은 앞서 고백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지내심, 그리고 사망의 권세 아래 놓이셨다는 고백의 맥락에서 확실하게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며, 제자들이 결코 꾸며낸 거짓 소문이 아님을 교훈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낙망하여 흩어진 제자들이 거짓된 부활의 소문을 스스로 만들어 유포하고 자신들도 또한 죽을 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은 개연성이 극히 없는 일일 뿐입니다.

2) 부활의 시점과 관련하여, 신앙고백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시점과 관련하여 “셋째 날”임을 분명하게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표현들 가운데, “제 삼일에”(마 16:21, 20:19)의 것과, 또 “사흘 만에”(막 8:31) 또는 “삼일 만에”(막 10:34)의 것이 의미하는 바를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이러한 표현들과 달리,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 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마 12:40)에서 말하는 “밤낮 사흘 동안”에 대하여, 신앙고백서는 실제로 부활한 시간의 경과를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요나의 표적에 빗댄 은유적인 설명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이 됩니다.

3) 부활하신 몸에 대하여, 신앙고백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셨던 몸과 동일한 몸으로” 부활하셨음을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다음 두 가지 오류를 비판합니다.

하나는 주관적 환상설에 대한 비판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실제로는 부활하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부활을 간절히 바라던 그의 제자들이 심리적 정상상태를 벗어나 예수님을 환영으로 보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였다는 그릇된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제자들이 애초부터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대도 하지 않았으며 부활의 사실에 대해 회의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성경의 기록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신앙고백서는 이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은 환영이 아니라, 분명한 육체의 부활이었음을 선언합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객관적으로 인정을 하더라도 그의 부활이 영적인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며, 그것을 제자들에게 육체의 형태로 보여주신 것이라는 질못된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결코 그가 죽었던 것과 같은 몸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부정함으로써, 사실상 부활의 고유한 의미를 부정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빈 무덤과 관련하여 기술하는 성경의 기록들(마 28장, 막 16장, 눅 24장, 요 20장)과 어긋나며,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이신 일들(요 20:20,25), 자신에게는 영과 달리 살과 뼈가 있음을 보이신 일(눅 24:39)에 관한 기록들과도 어긋납니다. 신앙고백서는 이러한 거짓된 주장들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은 “고난을 받으셨던 몸과 동일한 몸”의 부활이었음을 고백합니다.

한편 부활하신 몸이 “고난을 받으셨던 몸과 동일한 몸”이라는 신앙고백서의 표현이 육체의 부활을 고백하는 것을 넘어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이 부활 이전에 가지셨던 몸과 동일한 성질의 몸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님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살과 뼈을 가지고 있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받으신 상처들도 있었지만, 그 몸은 분명히 아직 만져서는 안 되는 몸이었으며(요 20:17), 바로 알아보지 못할 만큼 다른 모양인 듯도 하였으며(눅 24:16, 요 20:14, 막 16:12), 닫힌 공간에 있는 제자들 가운데 신비롭게 나타나시기도 하셨습니다(요 20:19).

이러한 사실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이 단순히 지상의 몸이 그의 영혼과 재결합한 것이 아니라, 영혼이 몸과 재결합을 하면서 몸의 완전한 상태로 승화되었으며, 그의 몸은 이전에 가졌던 욕되고 약한 것으로 심었던 몸이 아니라, 썩지 않고 영광스러우며, 신령한 영적 몸임을 말해줍니다.

4) 부활 사건의 주체와 관련하여, 신앙고백서는 “셋째 날에 주님은 … 살아나셨다.”고 고백을 할 때, 부활을 있게끔 한 능력이 그리스도 자신의 능력인지, 또는 성부 하나님의 능력인지를 구별하는 표현을 하지 않은 채, “살아나셨다”는 사실만을 언급합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자신께서 자신의 부활을 스스로 이루셨음을 말하는 많은 성경의 증거들(예를 들어 요 2:19; 5:21; 10:28, 롬 1:4, 골 1:18)에 근거하여 언급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살아나셨다”는 사실에 대한 단순한 표현은 성경이 종종 언급하고 있듯이 부활의 사건이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으로 이루어졌다는 고백을 포괄합니다(롬 6:4, 행 2:24;13:30, 엡 1:19,20, 갈 1:1, 벧전 1:3).

그렇다면 누가 부활 사건의 주체일까요? 성경이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대하여 그리스도 자신의 권능으로 인한 것으로, 또 성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한 것으로 둘 다 언급을 하고 있는 까닭은 하나님 자신의 내적인 일이 아니라 피조계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사건들은 모두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공동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리스도께서는 신성과 동시에 또한 인성을 가지고 계심으로 특별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관련하여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심으로써 죽음에서 부활을 얻으신 것이며(히 5:7), 그의 신성과 관련하여서는 자신 또한 하나님으로서,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권능으로, 자신의 부활을 실행하신 것입니다.

5) 끝으로 부활의 의의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 자신이 정녕 메시야이심을 객관적으로 선포하고 자신의 왕권과 죽음과 마귀의 권세에 대한 심판주로서의 선언의 의미를 갖습니다(행 2:36; 3:13-15,; 5:31; 10:42). 또한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놀랍고 신비로운 사실에 대한 공포이기도 합니다(행 13:33, 롬 1:3). 아울러 우리들을 위한 영적 은택들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용서와 의롭게 하심, 긔리고 영원한 생명, 그리고 우리들의 부활에 관한 보증으로서의 의의를 갖습니다.

 

  1. 하늘에 오르심

 

승귀와 관련하여 생각할 내용은 두 번째 단계인 “하늘에 오르심”입니다. 신앙고백서는 부활에 대한 고백에 이어서 하늘에 오르신 일, 곧 승천을 고백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에 의하여 높임을 받으시고 만유를 회복하실 그 때가 될 때까지 하늘에 취하여지셨음을 말합니다(막 16:19, 눅 24:50,51, 행 1:1-12; 3:21).

승천에 관하여 특별히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그의 인성에 따라서 몸을 가지시고 땅에서 하늘로 장소의 이동을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때 올라가신 하늘은 먼저 세상을 떠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효과를 미리 누리며 거하고 있는 낙원입니다.

승천이 장소의 이동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까닭은 승천을 단지 비유적으로만 이해하는 루터파 때문입니다.

루터파는 그리스도께서 오르신 하늘을 어떠한 장소가 아니라 단지 기쁨과 영광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의 보이는 하늘과 구분이 되는 어떤 물리적 하늘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장소로서의 하늘에 올라가셨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루터파는 그리스도의 승천을 비유적으로 해석하되, 그리스도의 인성의 편재를 주장하면서 이르기를 그리스도께서 오르신 하늘은 먼저 죽은 성도들의 처소인 낙원이 아니라, 어디에나 있는 하나님 나라의 복락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시고 그의 인성이 이제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의 상태를 누리게 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신앙고백서가 “하늘에 오르셨다”고 고백할 때, 그것은 이러한 루터파의 주장을 분명하게 거부합니다.

 

  1.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

 

승귀의 세 번째 단계는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심”에 관한 고백입니다. 당연히 이 고백은 그리스도께서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심을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는 오른편이나 왼편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은유적인 표현으로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우편에 앉으심”이란 은유는 왕의 통치적 권위에 가장 가까운 자를 우편에 앉히는 관습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고백은 그가 하늘에 오르시어 누리시는 존귀와 영광의 상태를 말하며(빌 2:9; 히 1:3) 또한 그가 모든 피조물들 위와 그리고 모든 교회를 향해 행하시는 최고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심을 말합니다(고전 15:25, 엡 1:22, 벧전 3:22).

성경에서 보는 “하나님 우편에”(막 16:19, 골 3:1), “자기의 우편에”(엡 1:20), “권능의 우편에”(마 26:64, 눅 22:69),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히 1:3), “하나님의 보좌에”(행 2:30), “하나님 보좌 우편에)(히 12:2)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히 3:1) 등의 표현들은 이러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다시 오심

 

끝으로 승귀의 네 번째 단계는 “세상 끝 날에 사람들과 천사들을 심판하기 위해 돌아오시는” 재림입니다. 신앙고백서는 재림과 관련하여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사람들과 천사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을 고백합니다.

심판주이신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의 언급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마 19:28; 25:31,34; 눅 3:17, 롬 2:16; 14:9, 고후 5:10, 딤후 4:1, 약 5:9).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모든 심판의 권세를 아버지께 받으셨음을 밝히셨습니다(요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그리고 심판의 대상은 단지 사람들만이 아니라 천사들을 포함함을 교훈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악한 천사, 곧 악한 영들과 악인들은 영벌에 처하고,(마 24:30,31; 25:31,32, 계 20:7-15; 21:8-19) 그리스도의 백성들은 영원한 영광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마 25:33-46; 계 2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