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탐방을 마치며
< 장인수 박사(D.Min., Ph.D.) >
성서역사배경연구학회 소장
(The Biblical-Historical Backgrounds Institute)
이집트 제18왕조의 제10대 왕 아멘호테프4세(Amenhotep IV, 일명 Akhenaten, 재위 1352-1336 BC)의 흉상.
“사라는 얼굴이 하얗고 계란형의 미모를 갖춘 여인으로 추정하기도”
필자는 이집트 역사 탐방 기록을 마무리하면서 기대와 아쉬움이 공존하는 가운데 많은 절제와 감격이 교차하는 시간을 보냈다.
하나님의 구속사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이집트라는 지역을 언급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는 3200여년의 오랜 기간 동안 번영을 누렸던 인류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한 지역이다. 이 지역을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조명할 수 있었던 것은 족장 아브라함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란(Haran)에서 가나안(Canaan)으로 이주한 아브라함은 목축생활의 가장 힘든 기근의 시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이집트 행을 결심하고 가족을 이끌고 이집트로 이주하는 장면이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다(창 12:10-20).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온 후 조카 롯은 가족을 이끌고 아브라함의 곁을 떠났다. 롯은 요단지역의 소알(Zoar)을 이주지역으로 정하고 이주하기로 결정할 때 삶의 풍요를 꿈꾸는 표준이 되는 지역으로 이집트 땅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 13:10)는 장면을 보더라도 이집트 땅은 선망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이 이집트를 향하여 이동한 지역 하이집트의 수도는 멤피스(Memphis)였다. 이곳은 델타지역으로 그의 첫 번째 고향이었던 갈대아 우르보다, 그리고 제2고향 하란지역보다 기름진 땅이고 기후 조건 또한 사람이 살기에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지역이다.
당시에는 이집트 제11왕조 시대가 아브라함이 활동하던 시기였으며, 이집트를 통치하던 바로는 인테프1세(Intef Ⅰ. 2134-2117 BC) 치세 시대에서 멘투호테프 4세(Mentupotep IV. 1997-1991 BC) 치세시대까지의 통치 시기였다.
아브라함이 이집트로 이주할 때 아내 사라의 아름다움을 염려하면서 이집트로 이주하면 누이로 호칭하자며 대안을 제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가 이집트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이집트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를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아브람이 이집트에 이르렀을 때에 이집트 사람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창 12:11-14)라는 말씀이다.
이러한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용모와 피부색깔이다. 아브라함 부부는 샘족 계열의 갈대아 우르지역 출신들이다. 당시의 갈대아 우르의 여인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리고 당시 이집트 11왕조 시대의 이집트인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비교할 수 있는 고고학적 발굴을 통한 인물상의 조각상으로 인하여 상상할 수가 있다.
먼저 우르 제3왕조 시대의 여인상이 우르 왕묘를 발굴하던 고고학자 레너드 울리(Leonard Wolly, 1880-1960)에 의해 샤마드(Shamard) 여왕상이 완벽하게 발굴 되었는데 얼굴은 하얗고 각종 보석으로 장식된 계란형의 여인상이었다.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오늘날의 감각으로 보아도 미인형의 모습이다. 아마 사라도 이러한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이집트로 이주할 당시 바로였던 멘투호테프 2세(Mentupotep Ⅱ. 2060-2010 BC)의 이집트 군사 모형 인형들이 발굴되었는데 전쟁에 출정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완벽한 상태로 허버트 윈록(H.E. Winlock)에 의해 세상에 드러났다.
그들의 모습은 얼굴이 검은 마른 모습들이었다. 전형적인 함족 계열의 형통의 군인 모습들이 전사한 병사 60명의 무덤에서 발굴되었던 것이다(The Rise and Fall of the Middle ingdom in Thebes, New York, 1947). 당시의 이러한 얼굴형을 자연히 비교하여 보면 창세기 12장에 나타난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슴 아픈 대화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출애굽의 대이동이 있었던 현장들, 초대 교회사에 한 획을 그었던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삼위일체 교리를 정통고백으로 체계화 시켰던 아타나시우스의 기념교회의 터 아부메나(AbuMane) 등은 이집트가 갖고 있는 탐방프로그램의 중요한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출애굽 대장정의 출발지가 되고 있는 고센지역인 라암셋과 숙곳 지역이라고 추종되는 알마타리아(Almataria)지역은 카이로 북쪽 지역에서 조금 더 동북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남유다가 멸망한 이후 일부 유다 유민들은 이집트로 이주하여 성전을 세운다. 그 성전을 세운 지역이 엘레판린(Elrepantin) 지역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집트하면 출애굽시대의 행로를 추적하여 여행하는 탐방지역으로 시나이 반도를 지적한다.
시나이 반도하면 모세를 생각하고 이스라엘 공동체가 신약 교회의 그림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러기에 이집트 탐방 속에는 시나이 반도를 횡단하며 출애굽 시대로 시간여행(Time trip)을 하게 된다.
현재 출애굽 유적지로 추론하는 지역은 고고학적 검증을 거친 지역이라고는 볼 수 없다. 다만 출애굽 당시의 풍습들을 상상하며 이러한 환경과 지형구조였을 것이라는 피부에 와 닿는 출애굽 당시를 추론할 수가 있다.
현재 시내산(Sinai, Mt)으로 추론하는 가바르 무사(Gebel Musa, 2285m) 지역은 337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Constantinus. A.D 324-337)의 어머니였던 헬레나(Hellena)에 의해 이 산을 거룩한 산(Holy Mountain)이라고 명명하고 이 지역이 정통 출애굽 순례지로 전승되어 그리스도인들이 순례를 하고 있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시내산까지는 392㎞의 거리이다. 광야체험과 출애굽시대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코스로 생각한다.
이집트 역사탐방을 마무리하면서 필자는 오랜 이집트 역사의 흔적보다 구속사의 현장만을 추적한다는 기준을 정하고 탐방하였음을 독자에게 알리며 이집트 탕방을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