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시대 역사탐방<65>| 고대 이집트의 신화와 우상의 신전들_장인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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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신화와 우상의 신전들

 

< 장인수 박사(D.Min., Ph.D.) >

성서역사배경연구학회 소장

(The Biblical-Historical Backgrounds Institute)

biblelands@hanmail.net

생활문화2

룩소에 있는 카르낙 신전 전경

 

“기독교는 복음 외에 신전은 필요 없어”

고대 이집트의 대표적인 신화로 헬리오폴리스의 천지창조신화, 크놈의 인간창조신화와, 오시리스의 부활신화가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비도스(Abydos)의 오시리스(Osiris)는 후일 여동생 이시스(Isis)를 아내로 맞이한다. 이들 부부는 이집트인들에게 농경문화의 기초가 되는 빵과 포도주 그리고 맥주를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이시스는 여인들에게 곡식을 빻는 방법과 아마실을 짜는 법, 그리고 천을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오시리스는 신전을 만들고 신상을 조각하여 이집트인들에게 우상을 숭배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러나 얼마 후 사탄의 형상인 동생 세트(Seth)의 질투로 인하여 형인 오시리스는 동생 세트에 의해 살해당한다. 성격이 포악한 세트는 오시리스를 대신하여 이집트를 다스리겠다고 마음먹고 형의 시체를 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버린다.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는 나일강에 버린 남편의 시체가 들어있는 상자를 찾았으나 세트는 그 상자를 빼앗아 다시 형의 시체를 조각내어 각지에 버렸다. 그러나 이시스는 포기하지 않고 남편의 조각난 시체를 찾아내어 완전한 형태로 연결한 후 부패를 방지하는 향로를 발라 오시리스를 소생시킨다.

소생한 오시리스는 지하세계로 돌아가 죽은 자를 다스리는 제왕이 되었고 자신을 살해한 세트에 대한 복수는 아들 호루스(Horus)에게 일임한다. 마침내 성인으로 성장한 호루스는 삼촌인 아버지의 원수 세트를 물리치고 모든 신들의 지지를 받으며 이집트의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Veronica longs, Egyptian Mythology, Library of the World’s Myths and Legends(New York:Peter Bedrick Books, 1988), 56-57).

고대 이집트 초기에는 호루스신을 위한 대축제가 매우 중요한 종교행사 중 하나였다. 특별히 이집트를 통치할 새로운 바로가 등극할 때에는 의식을 맴피스(Memphis)에서 경축명절 행사로 치렀다. 이 경축행사에는 새로 이집트 통치자의 위치에 오른 바로가 어깨와 무릎을 덮는 넓은 가사를 걸치고 의식순서에 따라 의식을 행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행사에 바로는 호루스 신전에 가서 참배했다.

이집트는 이외에 여러 신화가 존재했는데 우주 창조의 신 눈(Nun)이 있었다. 그는 무한(Infinity), 무(Nothingness) 그리고 무소(無所, Nowhere)로 여겨지는 신이었고 그의 아들은 아툼(Atum)이었다. 그리고 태양신 라(Ra)가 있었고 대지의 신 누트(Nut)가 있었다. 공기의 신 슈(Shu), 습기의 신 테프누트(Tefunt), 주신 아몬(Amon)이 있었다. 한 마디로 잡신 종교의 다원 사상이 이집트의 부족 종교, 즉 우상종교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신화를 근거로 하여 많은 신전들이 건축되었다.

출애굽기 1장 11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70인역(Lxx)에는 온(On)이 첨가되어 있다. 온은 당시 고센의 수도였다(W.H. Gispen, Exodus, 34). 온은 이스라엘 자손들에 의해 건설된 도시였다(Encylopedia of the Bible, 535).

이사야서 19장 18절에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중 하나를 멸망의 성읍이라 칭하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은 태양의 성읍, 즉 헬리오폴리스를 언급하는 말로 해석한다. 이곳에는 태양신 라(Ra)와 아톰 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었다.

이러한 신전을 건축하는 데는 공식이 있었다. 탑문(塔門), 지붕이 없는 중정(中庭), 지붕이 있는 열주실(列柱實) 그리고 지성소(至聖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신전 입구에 들어서면 바닥이 높아지고 천정이 낮아지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신전 안에는 일조량도 적어서 제사를 집전하는 지성소에는 거의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신의 위엄을 나타내는 의미였다. 특별히 신왕국 시대의 바로들은 경쟁하듯 신전 건설을 개축하였다. 그후 가장 대표적인 신전이 루소 신전(Luxor Temple)과 아비도스(Abydos), 에드푸(Edfu), 텐테라(Dendera), 에스나(Esna), 코오옴보(Kom Ombo), 카르낙 신전(Temple of Karnak), 아부심벨(Abu Simble) 신전 등이 그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다.

이러한 신전들을 둘러보면 은혜를 입지 못한 인생들의 허망한 수고를 헤아려 볼수 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이렇게 편지하였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 하는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들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사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10:7)고 언급한다.

모세는 모압언약인 신명기언약 설교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살았던 것과 너희가 여러 나라를 통과한 것을 너희가 알며 너희가 또 그들 중에 있는 가증한 것과 목석과 은금의 우상을 보았느니라”(신 29:16-17).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 오랜 역사 속에 지금도 고대 이집트 신전들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지만 솔로몬이 건축한 하나님의 성전은(966-859 BC) 기원전 586년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느부갓네살에 의해 성전이 파괴될 때 지성소에 있던 법궤마저 사라져 버렸다.

제2 성전이 스룹바벨에 의해 재건축되고(516 BC) 헤롯대왕에 의해 성전은 화려가게 개축되었으나 주후 70년 로마의 장군 디도(Titus, AD 79-81)에 의해 돌 하나로 남김없이 파괴될 것을 예언한 주님의 말씀대로 철저하게 파괴되었다(마 24:2).

왜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임재의 상징이었던 성전이 철저하게 파괴되도록 그대로 두셨는가? 그 해답은 간단하다. 왜냐하면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친히 성전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다(마 12:6).

이 땅에서 지상 성전은 필요 없어졌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표상인 성전이 되시기 때문이다(요 2:1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