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평신도신학’을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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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평신도신학을 우려한다

 

최근까지 소위 ‘평신도신학’을 강조하는 일부 교파들과 이를 무분별하게 혼용하는 일부 장로교인들에 의해 ‘만인제사장’(Universal priesthood)론을 근거로 개신교 현실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주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그러한 주장들에서는 거의 대부분 ‘평신도’라는 용어를 전혀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평신도’(the laity)라는 용어는 로마가톨릭이나 루터교 혹은 성공회와 같은 수직적인 직제론을 따르는 교파들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용어이며, 그 근거로 만인제사장론을 언급하는 것은 결코 용인할 수 없는 용어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만인제사장론을 근거로 개신교 직제(職制)를 부정하면서 그 대안으로 평신도신학을 주장한다는 것은 이미 그 용어의 사용에서부터 만인제사장에 대한 부정확한 이해와 인식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로마가톨릭의 수직적 직제에 대한 거부 가운데서 시작한 종교개혁과 개신교의 직제는 수평적이며 기능적, 혹은 수종적이다. 영국에서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근대 민주주의 정치원리 역시 종교개혁의 직분론을 정립한 장로교의 교회정치원리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종교개혁을 바탕으로 갱신된 개신교의 직제론에 있어서 만인제사장론은 ‘제사’(祭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이는 개념을 정립할 수 없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初臨)과 십자가에 달리신 구속(救贖)의 성취 이후로 유대교의 제사와 제사장 제도가 모두 폐기되었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만 만인제사장론의 정확한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가장 적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성경은 히브리서인데, 히브리서는 기본적으로 유대교로 돌아오라는 회유에 직면하여 흔들리는 히브리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대교의 제사장과 제사제도가 모두 폐지되었음을 확신하도록 하는 사도의 권면으로 되어 있다.

만일 그들이 유대교의 회유에 흔들리고 만다면, 그들이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하는 패역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과거 성전에서 제사장과 같이 ‘중보’(中保)의 사역을 하는 직분은 완전히 폐지되었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로 해서만 신앙과 믿음이 가능한 것을 굳게 붙들도록 히브리서에서 사도는 강력히 권면한 것이다.

이러한 성경적 이해는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가 왜 ‘미사’(missa)가 아닌 ‘예배’를 드리는 지에 대한 근거가 되며, 이에 따라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 신앙에 있어서 예배는 제물과 제사장을 통해 이뤄지는 제사가 아니라 말씀(성경)과 설교자(성경의 교사)가 중심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종교개혁의 신앙유산은 ‘성찬’에 있어서도 로마가톨릭과 독특한 구별을 보이는데, 로마가톨릭의 화체설(transubstantiation)과 달리 우리들은 영적임재(spiritual presence)를 바탕으로 한다. 이 영적임재에 있어서 한 가지 유의할 것은, ‘영적’(spiritual)이라는 말로써 성령께서는 말씀의 영이시기 때문에 항상 성찬예식 자체로서만이 아니라, 그 성찬에 관련한 성경말씀과 강설을 통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영적으로 임재하신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개신교의 성찬은 제사장으로서의 사제가 아니라 말씀의 교사이자 목자인 목사에 의해 집례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직분으로서의 차이는 곧 제사장적이며 수직적인 직제인 로마가톨릭의 사제와, 말씀교사 혹은 목회자로서 직능(職能)적이며 수종(隨從)적 직제인 개신교의 목사로 극명하게 구별된다.

소위 ‘평신도신학’을 강조하는 이들의 주장에서 오해하는 부분이 바로 이러한 직제에 대한 오해로써, 개신교에서는 ‘평신도’라는 용어는 사용할 수 없음과 더불어 직분자로서 목사와 성도인 신자들이 동일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바울 사도가 말씀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고전 12:28)라는 말씀을 바탕으로 목사와 직분자(장로, 집사)들이 수종(隨從)적으로 그 직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동일할(수평적일) 뿐이다. 아울러 ‘수종’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직제에 있어 중요한 것은 자신이 시중들고 있는 직능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를 성경을 통해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현대 개신교의 문제점들이 바로 이러한 직분(職分)과 직능(職能)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만인제사장을 주장하며 평신도신학을 강조하는 이들의 문제의식은 거의가 다 이러한 직분과 직능에 대한 오해로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직분과 직능에 관한 정확한 이해와 개념이 없는 상태에서 주장하는 교회에 대한 문제의식이란 당장에는 통쾌하고 명쾌한 대안인 듯 보이지만, 결국에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하며 사안을 복잡하게 만드는 혼란만 초래하고 만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