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가장 효과적인 대안으로서 종교개혁정신_임용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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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가장 효과적인 대안으로서 종교개혁정신

< 임용민 목사, 새소망교회 > 

 

교회는 신학함의 가치와 수준을 높여 학문을 창조의 질서로 되돌려야

 

 

종교개혁자들에게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는 진리 자체이신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참되게 알도록 하신 것이다. 

이것은 중세 로마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것을 부패한 종교적 권위로 사람들을 억압하고 하나님께서 역사에 준 유익과 편리성을 모두 빼앗았던 것에 대한 유일한 답이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이 은혜는 종교 개혁 이후 로마 교회의 부패한 질서를 깨뜨리고 심지어 인문학적 질서를 넘어서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인간의 삶은 참으로 복되게 발전하게 됐다.

종교개혁으로부터 시작된 인류의 문화와 과학의 발전은 창조 이후 역사에 가장 폭발적인 것으로 속도와 질에 있어서 엄청난 것이었다. 문화와 과학의 발전으로부터 나온 인간의 편리함은 모두 창조된 것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즉 인간의 모든 발전과 편리함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부패함은 아담 이후 가인의 후손과 홍수 이후 노아의 후손들이 그랬던 것처럼 철저하게 하나님을 배제시켰다. 인간이 만들어낸 유익과 편리함이 마치 하나님과 전혀 무관한 것처럼 호도할 뿐이었다. 이것이 종교 개혁 이후에 산업혁명 이후 세계가 추구하는 공통 견해이다.

이런 문제는 실제로 개혁 교회들을 위축되게 만들었다. 이것은 실로 비참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총의 인도하심을 열어 보여준 주체로서 종교개혁의 후예들이 그 은총의 결과를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오히려 도전을 받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과학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시대가 인간 자체를 물질적이며 생물학적 의미를 넘어서지 못하는 자기모순과 혼란에 모두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실로 과학은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생물학적 보편성으로 떨어뜨려버렸다. 또한 지구에 생존의 대안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또 다른 행성을 대안으로 찾고 있는 실정이다. 지구에 양식이 부족하다고 말하면서, 천문학적 비용을 우주로 날려버리는 모순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과학이 창조된 세계를 모두 소진했음을 스스로가 자인하는 것이다. 근대 과학의 방식이 20-21세기의 발전을 이룬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유일한 생명의 터전을 상실케 한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술로 여전히 사람을 속이고 있고, 앞으로도 동일한 방법으로 속일 것임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의 지배는 수많은 엔지니어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소비하고 망가뜨리는 일 이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이들이 발견한 질서라는 것이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것을 부정하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 세계와 그 질서를 깨뜨리는 방식으로 확대 재생산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힉스입자는 원래 존재하던 것인데, 이것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자연적 입자들을 파괴하는 방식으로만 가능했다. 그것도 천문학적 에너지와 비용을 소비해가면서 말이다. 즉 과학의 지배는 하나님께서 창조 안에 감춰둔 것을 발견하는 방식이 아니라, 깨뜨리고 그것에서 뭔가를 찾아내지만 그것을 다시 자연으로 돌이키고 재생하여 만들 수 없는 방식만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현대 시대는 창조로 돌아가는 길을 버려버렸다. 이와 같이 답을 전혀 찾을 수 없는 혼돈에 모든 과학계는 빠져 들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시대는 엔트로피를 증가하는 방식을 중지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는 과학의 시대가 만들어 놓은 너무나 큰 일반 은총의 유익과 편리함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노아 홍수 이후 바벨탑을 중단시키신 은총의 개입이 없다면 우리는 더 이상 자연에 머물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교회다. 이것은 과학적 과제가 아니라, 교회의 과제임에도 교회는 16, 17세기의 참된 신앙 고백의 가치를 전혀 회복하질 못하고 있다. 오히려 현대적 관점의 편리함을 유지하기 위한 신학을 추구한다. 이것이 인본주의 신학이다. 그러나 개혁자들의 엄밀한 참된 신앙고백은 하나님만을 유일한 상급으로 두고, 그만으로 만족하며, 그에게만 영광을 돌리는 신학을 말한다.

우리는 이 개혁주의 신학이 주는 가장 중요한 내용을 간과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과학이 창조 세계 안에서 발견하고 만들어 놓은 모든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에 유일하게 질서를 주신 자로 계신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을 우리만 제시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는 이와 같은 의미에서 신학함의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렸다. 오히려 하나님을 현대 시대의 언어인 과학의 질서와 산업의 편리함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해도 나 몰라라 할 뿐이다.

이 시대에 개혁신학을 말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고 거룩하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우리는 이 말씀을 세상이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질서임을 알도록 해야 한다. 종교 개혁의 정신은 이와 같다. 존재하는 모든 세상의 유익과 편리함이 아무리 극대화 될지라도, 아무리 자극적인 것이 될지라도 하나님과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을 밝히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의 교회는 속히 하나님께 대한 경망스런 사변을 버리고, 참된 신앙고백을 회복해야 한다. 이에 기초하여 신학함의 가치와 수준을 높여, 과학과 산업이 모든 것을 파괴하는 방식의 질서를 창조의 질서로 되돌리는 길을 보여주는 수준을 회복해야 한다.

나아가 교회의 모든 직원들은 성도들을 이런 개혁정신으로 고양함으로 이 시대에 모든 선한 것의 아버지이신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에게 지금 남아있는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을 기억하옵소서”(시 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