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96)| 빈 무덤에서 갈릴리로_정창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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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무덤에서 갈릴리로  – 마가복음 16장 1-4절 –

< 정창균 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부활을 소유한 사람은 부활한 자답게 힘써서 오늘을 살아가야”

 

해마다 부활절이 되면 많은 이들이 갖게 되는 고민이 있습니다. 곧 부활의 감흥이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오늘 같은 부활주일 아침만이라도 감격스러워지고 흥분이 되고 가슴이 뜨거워지고 해야 될 것 같은데 사실은 아무런 특별한 느낌도 없고, 저절로 우러나오는 아무런 증상도 없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부활절 감사헌금은 얼마를 해야 적당할 것인가 하는 고민만 하나 더 늘어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뭔가 감격스러워지고 흥분이 좀 되어보려고 노력을 해봐도 여전히 마음은 덤덤하고 냉랭하여 지난주나 오늘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부활신앙은 무엇인가 잘못된 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품게 되기도 합니다. 목회자는 부활주일임을 내세워 예배 분위기를 띄워보고자 하지만 부활주일이라는 사실만으로 예배 분위기가 뜨거워지지는 않는다는 현실을 확인할 뿐입니다. 아마 이것이 다수의 신자들과 목회자들이 부활주일 아침에 겪는 곤혹스러움일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현장을 다루고 있는 복음서의 기록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성경은 우리가 생각하고 기대하고 있는 것과는 매우 다른 방법으로 부활사건을 다루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활의 그 현장에 대한 복음서들의 공통적인 증언은 어느 곳에서도 부활을 저절로 우러나오는 흥분과 감격으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바로 그날 첫 새벽에 예수님을 극진히도 사랑했던 몇몇 여자들은 극진한 정성으로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향품은 죽은 시체를 위한 것입니다. 그들은 부활은커녕, 여전히 죽어있을 예수님의 시체를 생각하며 찾아간 것입니다. 빈 무덤 앞에서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놀라고, 떨고, 도망하고, 무서워서 말문이 막힌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속속 전해 듣는 제자들이 나타낸 반응에 대하여 복음서가 반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제자들이 그 소식을 듣고 흥분하고 감격하고 좋아서 펄쩍펄쩍 뛰면서 “손을 높이 들고 주를 찬양”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이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믿지 아니함일러라.”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등등에서 보는 것처럼 부활 신앙은 감정적 흥분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적 믿음의 문제임을 복음서는 이렇게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주어지는 아주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갈릴리로 모이라는 말씀입니다.

빈 무덤을 향해 온 이들에게,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 계속해서 주어지는 명령은 갈릴리로 모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내가 죽고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부활할 것이니 너희들은 갈릴리로 오라. 거기서 만나자”는 말씀이었습니다.

무덤으로 나아온 이 사람들에게 천사가 다시 다급한 어조로 재촉하는 것도 갈릴리였습니다.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리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마 28:7). “너희가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주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라.”

마태복음 28장 10절에는 부활한 주님 자신이 직접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온통 갈릴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갈릴리는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는 곳, 예수님의 그 부활이 제자들에게 확인되는 삶의 현장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갈릴리에 모여 주님의 부활을 확인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명령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라”는 명령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라는 명령입니다. 매일매일의 삶의 현장이 부활을 확인한 자로서 살아야 하는 부활신앙의 구체적인 현장으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해서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에 대한 긴 말씀을 이러한 결론으로 마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결국 부활신앙은 생각만 해도 저절로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감격스러워지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과 그로 말미암은 나의 부활을 의지적으로 고백하고 인정하고 그에 대하여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는 것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부활할 사람으로서 오늘을 살아가는 삶의 문제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한 사람들, 그래서 자신도 부활할 것을 확인한 사람들은 부활을 소유한 사람처럼 그렇게 살기로 결단하고 오늘을 살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활신앙의 능력이고 요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