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 칼럼] 박형용 교수의『목회서신 주해』교정을 마치고…_강승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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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용 교수의『목회서신 주해』교정을 마치고…

강승주 목사(경기북노회 섬기는교회)

 

박형용 교수님께서 얼마 전에 『목회서신 주해』를 내셨다. 교수님은 평생 신약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신약 성경 각 권 주석에 심혈을 기울이셨는데, 은퇴 후 시간적 여유를 누리면서 그동안 출판했던 책들을 다시 정리하는 작업과 함께 새로운 주해서들을 출판하고 계신다.

교수님께서 내시는 주해서에는 일관된 흐름이 있는데, 그것은 개혁주의 신학 전통에 따라 정통주의의 보편적인 주해 관점을 보여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앞선 신학자들의 수고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교수님의 모든 주해서에는 교수님 자신의 견해와 우리에게도 익숙한 학자들의 견해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곧, 박윤선, 헨드릭센, 걷스리, 렌스키, 리델보스, 바빙크, 벵겔, 개핀, 그리고 하비 콘(Harvie M. Conn)의 제자로 앞선 분들에 비해 최근의 학자라고 할 수 있는 팀 켈러 등이다.

요즈음 책이나 인터넷 매체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을 배경으로 학위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신학자들이 기존의 신학적 전통을 공격하며 부수는 자료들을 많이 내세우고 있다. 게다가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 그런 주장들이 확대 재생산되는데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정보의 홍수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그 가운데는 허접한 것들도 있지만 나름 정교한 논리로 무장된 것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새로운 통찰력을 과시하는 것들도 있다. 문제는 많은 주장들이 인문학의 관점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주장은 무시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저자에 대한 것과 저작 시기 등 기존에 우리가 배웠던 모든 것들을 그들은 일단 부정하며 새로운 주장들을 소개한다. 이것은 성경을 대하는 자세가 출발부터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연히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성경적 근거보다 인문학적 근거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교수님의 주해서들은 진부한 것들로 치부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초다. 아무리 화려하게 보일지라도 이론적 기초가 그릇된 성경관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런 점에서 교수님의 주해서들은 우리가 배운 성경관을 재확인하게 하며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기본 원리를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기초가 확고하게 세워진다면 여타의 주장들에 대해 정제된 이해와 포용도 가능할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목회서신 주해』는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를 다루었다. 일반적으로 디모데전서에 이어 디모데후서를 다루는데 교수님은 기록된 순서를 따라 디모데전서, 디도서, 그리고 디모데후서 순서로 다루셨다. 덕분에 사상적 흐름과 함께 시간의 순서에 따른 세밀한 감정의 흐름도 읽을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이 겪었겠지만 교수님은 만나 뵐 때마다 직접 고안해 내신 퀴즈를 내시며 맞춰보라고 하신다. 대부분 맞추지 못한다. 그러면 교수님은 답을 알려주시고 즐겁게 살라고 말씀하신다. 목회서신의 주해 순서와 내용에도 그런 유쾌함이 배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는 설교 한편을 준비할 때 주해가 기본이었다. 주석들을 살피고 한걸음 더 나아가 원문 석의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육필 원고를 작성했다. 지금은 시대가 변한만큼 모든 것이 변했다. 이제 육필 원고를 고집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면 더 많은 정보를 사용할 수 있기에 과거를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방식을 취하건 충분한 자료 수집과 검토 과정이 없다면 설익은 자료를 들고 성의 없이 설교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능력은 제한되어 있다. 편의성도 필요하지만 기본은 절대로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성경 해석의 기본이 되는 주해서는 우리들의 기초 자료일 수밖에 없다. 교수님께서 애써 수고하셔서 세상에 내 놓으신 『목회서신 주해』서가 우리들에게 귀하게 쓰임받기를 기대해본다. 교정에 참여하는 특권을 누렸기에 교수님의 친필 사인이 담긴 『목회서신 주해』서를 받을 수 있었다. 또 한 권의 주해서가 서가에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