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을 근거로 한 새벽기도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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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선 주석을 근거로 한 새벽기도 예시

[성경] 요한복음 1:1-18
[찬송] 27장(통 27장)

[설교] 성육신

요한복음은 세 복음서와 조금 다른 면이 있다면 예수님의 신성이 강조된다. 여기서 말씀이란 단어는 헬라어 로고스를 사용한다. 그러나 플라톤 철학의 로고스와는 개념이 다르다. 철학에서는 우주를 움직이는 원리나 어떤 힘이 있다고 생각하여 로고스라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요한이 말한 말씀(로고스)는 비인격적 어떤 힘이 아니고 인격이신 성자 하나님을 가르킨다. 그리스도를 말씀(로고스)이라 칭한 이유는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계시자’란 의미이다. 철학자 김용옥이 로고스라는 단어가 같은 의미로 쓰인 것으로 오해하여 기독교를 세상철학과 연결시키는 것은 무식한 해석이다.

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어두움이란 빛과 대조적으로 빛은 생명이라면 어두움은 죽음을 상징한다. 생명을 막는 죽음의 세력, 즉 사단의 세력 아래서 죽어가는 이 죄악 된 세상을 어둠으로 말한다. 빛이 어두움을 비추고 있다 라는 뜻이므로, 본문은 이 죄악 된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을 통하여 죄악 된 이 세상 안으로 임하셨다는 뜻이다.

1: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하나님은 죄인을 부르시는 데 전도자를 사용하신다. 사도 요한은 여기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는데 예수그리스도의 앞길을 닦은 세례요한이었다. 세례요한은 스스로 온 자가 아니고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여기 ‘자기 땅’은 유대인 중에 오신 예수님을 말한다.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는 부르심을 거부하는 자들을 말한다. 따라서 예수는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마 23:37)라고 탄식했다. 예루살렘 근처에 가면 ‘눈물교회’라는 기념교회가 있다.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언덕에 세워진 것이다. 예수를 배척한 그들을 바라보면서 우신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가르치고 이적을 보여 주시고 사랑을 쏟아부었건만 자신을 배척하고 거부한 자들을 향하여 분노하시고 저주하신 것이 아니라 우신 것이다. 그들의 어두운 심령을 바라보시는 안타까운 눈물이다.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성자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셔서 함께 하신다. 유대인들은 죄악 된 세상 속으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십자가에 처형했다. 생명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세상 사람들은 세상적인 것에는 매우 똑똑하지만 그리스도를 알고 은혜를 받는 데는 무지하다. 어두움의 세력에 싸이면 생명의 말씀을 받지 아니한다. 영적으로 죽은 자의 삶은 어떤가? 영적으로 죽은 자도 육신은 살아간다. 짧은 육신의 기간은 회개의 기간이지만 하나님께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육신을 즐기면서 살아간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도 때로 선한 일을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죽은 자의 선행일 뿐이다. 죽은 자의 선행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다. 그것은 인간의 영광을 위할 뿐이다.

[적용]
예수 믿기를 거부하는 자들을 향하여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갖고 있습니까?

(영음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