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노 이야기 39] 빛나는 인물: 참 의사 빠레_프랑스 위그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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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인물: 참 의사 빠레

프랑스 위그노 연구소 제공(대표 : 조병수 박사)

 

파리 6구에 위치한 옛 의과대학교(현재 파리 시테대학교) 건물 외벽에는 의학 관련 인물들을 기리는 원형 부조가 달려있다. 대학 건물을 끼고 생뻬르가에서 오른쪽 자콥가로 돌아서면 “근대 외과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엉브롸즈 빠레(Ambroise Paré, 1510-1590)의 모습이 보인다. 빠레는 위그노로 국왕 프랑수와 1세 때부터 종군의사로 활동했는데, 앙리 2세에 의해 궁정 외과의사로 임명되어 이후 이어지는 국왕들을 차례대로 섬겼다. 중세를 거쳐 16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외과 치료는 야만적으로 이루어졌다. 상처 부위에 끓는 기름을 붓거나 불로 지지는 정도였다. 빠레는 동맥을 묶어 상처 부위를 마비시키는 방법을 채택하였고, 달걀노른자와 장미 기름, 그리고 테레핀 기름을 혼합한 액체를 발라 통증을 완화시키는 방법을 개발하였다.

1559년 6월 30일, 투르넬 궁정에서 연회가 열렸다. 합스부르크 왕가와 오랫동안 치룬 이탈리아 전쟁을 종식하는 까또-껑브레지 평화 협정과 앙리 2세의 딸 엘리자베뜨와 합스부르크-스페인 왕 필리페 2세의 결혼을 축하하는 연회였다. 연회 중에 마상시합이 벌어졌고, 이 시합에 국왕 앙리 2세가 직접 나섰다. 사부와 공작과 기즈 공작 같은 몇 명을 상대한 끝에 근위대장 몽고메리가 발탁되었는데, 그의 창끝이 부러지면서 파편이 앙리 2세의 눈을 찌르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빠레가 응급조치를 했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앙리는 열흘 만에 운명하고 말았다. 열다섯 살에 왕위를 이은 프랑수와 2세는 뇌질환을 앓고 있었다. 빠레는 그의 머리에 구멍을 뚫어 수술하려고 했지만, 빠레가 위그노임을 아는 가톨릭 측이 암살을 의심하는 바람에 성사시키지 못했다. 프랑수와는 17개월 만에 사망하였다.

1562년 봄부터 가톨릭과 위그노 사이에 30년 동안 여덟 번에 걸친 종교전쟁이 발발하였다. 제1차 종교전쟁에서 가장 험악한 전투는 그해 12월 19일 드류에서 벌어졌다. 이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종군의사로 참전했던 빠레는 2시간 동안 자그마치 2만 5천 명 이상이 전사하였다고 보고했을 정도이다. 이때 빠레는 귀족과 일반 병사를 가리지 않고 총상과 포상으로 입은 화상을 치료하였는데, 그가 치료한 부상자는 대부분 죽지 않았다. 빠레는 평생 의사로서의 좌우명을 가지고 있었다. 오래전, 그러니까 1537년과 1538년에 벌어진 삐에몽 전투에서 어떤 부대장을 치료하는 중에 빠레는 비망록에 이런 글귀를 남겼다. “나는 싸맬 뿐이고, 치료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Je le pansai, Dieu le guérit). 이 사상을 마음에 품은 빠레 앞에 신분의 높낮이를 막론하고 돕지 않아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572년 8월 24일은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바뗄레미 대학살이 자행된 최악의 날이다. 이틀 전, 위그노 진영을 이끄는 꼴리뉘 제독이 길을 가던 중에 두 발의 총탄에 맞았다. 한 발은 오른손 검지 부분을 날려버렸고, 다른 한 발은 왼쪽 팔뚝에 박혔다. 이때 빠레를 포함한 최고의 의사들이 제독의 절단된 손가락의 나머지 부분을 제거하고, 다른 쪽 팔을 두 번 절개하여 총알을 빼냈다. 대학살 당일 밤, 군인들이 이틀 전 피습당한 부상 때문에 이층 침실에 누워있는 꼴리뉘 제독을 살해하기 위해 들이닥쳤다. 딸과 사위, 삐에르 메를랑 목사, 그리고 빠레가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딸은 파리를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지만, 사위는 지붕 위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메를랑 목사는 지붕 밑에 여러 날 숨어 있다가 간신히 죽음을 모면하였고, 빠레는 왕실 주치의였기에 목숨을 건졌다.

때때로 빠레는 위그노 신앙을 공개하지 않은 사람으로 평가되지만, 대학살이 진행되는 동안 국왕 샤를르 9세가 그를 벽장 속에 숨겨 목숨을 구해낸 것을 보면 위그노였음을 의심할 바가 없다. 대학살 후유증을 이기지 못한 샤를르 9세는 보름 후에 파리 동쪽에 위치한 방센느 성으로 옮겨갔고, 2년 동안 괴로워하는 중에 23세의 나이로 죽었다. 밤마다 위그노 학살의 환상에 시달리는 샤를르의 곁을 끝까지 지킨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위그노 의사 빠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