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시대적 사명 인식의 필요성_변세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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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시대적 사명 인식의 필요성

< 변세권 목사, 온유한 교회 >

 

 

교회는 각 시대마다, 또한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각 구성원들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다양한 생명의 특징을 나타내게 된다”

 

“교회는 진리를 지키고 사수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각별한 각오를 가지는 데서 신령한 성도, 신령한 교회의 모습이 나타난다”

 

 

요즘 우리시대의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 문제로 교단들과 많은 교회들이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 현대 교회가 취해 나가야 할 신령한 교회의 역할은 무엇보다 시대적인 사명을 느끼고, 그것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1. 교회가 인식해야 할 시대적 특성

 

교회는 언제나 자기 시대에서 감당해야 할 자기의 몫이 있다. 교회들마다 이 시대적인 자기의 사명을 잘 깨달아야 하고, 넉넉하게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하여는 예루살렘 교회를 통해서 배우는 바가 많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가 모든 시대의 모델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개혁운동을 하면,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 예루살렘 교회로 돌아가자 하는 등등의 구호를 부르짖는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복음의 실상을 충분하게 파악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것을 갖춘 교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사실상 많은 것이 부족한 교회이다. 교회의 정체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보다 풍성한 교회의 이론을 누리지도 못했다. 교회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나중에 신약 성경이 다 기록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진정한 모델은 성경 전체의 사상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이때 교회는 각 시대마다, 또한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각 구성원들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서 다양한 생명의 특징을 나타내게 된다.

이런 까닭에 예루살렘 교회를 모범으로 제시하면서 그러한 형태를 모방해 내는 것이 교회개혁의 본질인 듯이 생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러기에 중세기에 종교 개혁자들이 교회를 개혁할 때에 그런 주장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성경 전체에서 교회상을 찾았고, 그것을 자기 시대의 상황이라고 하는 현실 속에서 필요한 정도에 맞도록 펼쳐나갔다. 그러므로 먼저 성경 전체의 사상을 통해서 교회가 무엇인가를 충분히 배워야 한다.

 

이런 충분하고 확실한 교회상을 가진 것을 전제한 다음, 자기 시대의 성격을 잘 분석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데서 자신이 속한 교회가 감당해 나가야 할 사명이 어떠해야 하겠는가를 명확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1. 교회가 인식해야 할 사명 의식

 

교회가 사명을 깨닫는 과정이 그저 획일적으로 지역을 복음화 하자, 세계를 복음화 하자는 등등의 표어를 내걸고 성도들을 재촉하고 채근하면서 결국에는 자기들의 교회를 부흥시키는 것에 불과한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가 사명을 인식함에 있어서 항상 중요한 것은 먼저 자신들의 교회의 특징, 혹은 개성 또는 인격을 먼저 잘 파악하는 일이다. 그런 다음에 자기 시대의 특징을 파악하고 여기에 비추어 교회가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식으로 시대적인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부러워하는 어떤 교회를 하나의 모델로 정해 놓고서는, 그렇게 똑 같이 되기 위하여 그 모델 교회가 취하고 있는 이런 저런 방법론들을 도입해서 그대로 적용해 나가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예루살렘 교회가 현대 교회의 모델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그 당시의 역사 속에서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했다는 측면에서 찾아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예루살렘 교회가 3,000명 혹은 5,000명으로 불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을 주목하고 그것을 뒤좇아 가는 식으로 교회의 사명을 설정하고, 명분을 찾기 위하여 예루살렘 교회의 경우를 들먹이는 것은 방향이 빗나가도 크게 빗나가는 것이다.

종교개혁시대의 교회들을 분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당시의 개혁 교회들은 그 시대의 교회로서 그 시대의 역사가 요청하는 문제에 직면하여, 자기의 몫을 담당했다는 차원에서 개혁교회로서의 교회 사명을 훌륭하게 감당한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 교회가 그 시대의 역사가 요청하고 있는 문제를 자신들에게 비추어 정확하게 파악하고 감당해 나가는 교회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중요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로, 그저 크게 부흥한 어떤 교회를 모델로 삼고서 그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을 통하여 그와 같은 교회를 또 하나 만들어 보겠다는 방법으로 나아가는 것은 참으로 부족한 생각이다.

따라서 교회는 항상 자신의 형편과 상황과 처지에 맞도록 생각해야 한다. 이때 특별히 성도들은 일차적으로 신령하게 자라는 일에 온 힘을 써야 한다. 여기에는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다.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은 이 일에 누구도 예외 없이 책임감을 가지고 나서야 한다.

그래서 각인이 부지런히 자라나야 하고, 하나로 연합해야 하며, 통일성 있는 교회를 이루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과정 속에서 교회에 요청하시는 하나님의 사명을 구체적으로 감지하고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이 이런 원리에서 형성되고 찾아지며 누려지는 것을 통하여 성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반대로 오히려 역사를 역류해서 과거의 어떤 교회를 이 시대에 도입해서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식으로 교회의 사명을 논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는 자기 시대에 잘 알려진 어떤 유명한 교회를 본받아서 그와 똑같이 커지는 것을 교회의 사명으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1. 교회가 인식해야 할 구속사의 특성

 

보다 엄격한 의미에서 본다면 예루살렘 교회가 담당했던 일을, 오늘날의 교회가 재현할 수는 없다. 예루살렘 교회는 구속사의 전환기에 특별하게 탄생된 교회다. 또한 예루살렘 교회는 오순절 성령 강림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는다.

여기서 오순절 성령 강림을 제시했는데 이 사건은 구속사에서 오직 유일하게 나타난 하나님의 특별한 사역이라는 의미이고, 이 점과 관련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생각해야 한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가 유일무이하게 특별한 성령의 역사를 받은 것은, 그러한 역사를 받아야 할 만큼 자기 시대에 직면하여 감당해야 할 고유의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명을 감당해 나가야 할 특별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의 능력을 받아야 했다. 그것은 이제 구약 교회를 종결짓고 신약 교회를 출발시키는 일이었다.

이 일 때문에 성령께서는 그렇게 강하게 역사해 주셨고, 그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의 주변적인 현상들도 많이 나타내셨다. 이는 달리 말하여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세상 앞에 교회의 정체성을 최초로 드러내는 사명을 감당해야 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는 세상 앞에 자기를 교회라고 주장하면서, 과연 교회가 어떤 존재이며 어떠한 생명력을 구현해 나가는 존재인가를 드러내 보여야 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이런 상황에 직면해 있었고, 그것을 감당하는 교회로서 존재해 나가야 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예루살렘 교회를 파악해야 한다. 예루살렘 교회가 서 있었던 시대적인 상황에 비추어서, 그리고 그 교회가 존재했던 역사의 과정전체를 통찰하여 비로소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이 해석되어지는 것이다.

당시 교회는 아주 긴급한 상황에 처해 있었으며, 이런 까닭에 성령의 강한 역사로 말미암아 그들의 열매라는 것도 신속하게 나오게 되었다. 또한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役事)라는 것도 증명이 되어야 할 형편이었기에 성령께서 많은 초월적인 현상들과 능력들을 베푸신 것이다.

여기에는 병 고침을 받는 역사, 방언과 같은 표적이 뒤따르는 일, 교회원들이 일치단결하여 유무상통하는 생활을 했던 일 등등이 있었다. 당연히 성령께서 배후에서 이 모든 일들을 주장하신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염두에 두지 않고 역사와 시간, 상황의 간격을 한꺼번에 다 무시한 채로 오늘이라고 하는 현대의 시점에서 그대로 도입하여 재현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교회는 오순절 운동과 같은 것을 할 수 없는 것이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같은 원리로 중세기 종교개혁도 같은 성격으로는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구속사의 경륜과 시대 자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1. 우리 시대에 요구되는 교회의 사명

 

초대교회와 중세기 개혁교회는 그들의 시대라고 하는 역사와 상황에 직면해 있었고, 오늘날의 교회는 현대라는 역사와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성격을 전제하고 역사하신다.

이런 원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유치하고 엉뚱한 주장을 하기 쉽다. 즉, 성경에 나타나 있는데 왜 오늘날 적용할 수 없느냐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사건(事件)과 원리(原理)의 차이점을 구별하지 못해서 이런 유치함에 빠져드는가 하면, 구속사가 집행되던 때의 역사적인 상황과 성격까지 생각하는 좀 더 넓은 안목이 없어서 이런 어린아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신령한 성도란, 범사에 성령의 인도를 받들어 나가는 사람이다. 이때 이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일차적으로 자신의 ‘마음의 자세’를 분명하게 단속해야 한다. 자기 인생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확실하게 하나님께 맡겨야 함은 물론이며, 동시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리면서 살아가는 사실이 실제로 있어야 한다.

이런 태도를 확실하게 드러내는 데서부터 성령의 충만을 누리는 삶의 일보가 시작되는 것이다. 자기의 아성과 계획, 고집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되고 철저하게 자기를 부정해야 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려고 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데서 신령한 사람으로서의 일보를 내딛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범사에 진리를 좇으며 살고, 진리에 성립되어져 가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 교회는 신령한 교회로서 자라나가면서 아울러 각 교회의 정도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각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 개개인이 먼저 서로서로 느껴야 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을 적극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에 특별히 ‘전투적인 교회’로 세워져 나가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군사로 서 있다. 이는 교회가 항상 적과 대치해 있으며, 전투에 임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침노하는 수단으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씨앗을 심으셨고, 이제 이 씨앗은 교회의 모습이 되어 누룩처럼 퍼져나가야 한다.

따라서 교회는 항상 교회를 향해서 돌진해 오는 사단의 공격을 받게 된다. 사단이 교회를 공격할 때가 없으리라고는 아예 생각을 말아야 한다. 이렇게 교회는 자신을 공격해오는 적이 있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으므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이때 적이 공격해오는 양태가 있는데 그것은 사단이 집중적으로 공격해오는 부분인, 바로 진리의 영역이다.

세상은 교회가 진리를 벗어나고 이탈하게 하기 위하여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다. 진리를 정면으로 배척하고 반대하는가 하면, 타협하고 양보하게 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교회에 대한 사단의 이러한 공격은 어느 시대를 무론하고 나타난다. 그러므로 교회가 어느 시대에나 감당하여야 할 사명 가운데 하나는 진리를 잘 보존하고 간수하며 후대로 계승시키는 일이다.

교회는 이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리를 보존하기가 쉽지 않다. 사단이 이런 저런 핑계거리를 제시하면서 유혹하게 되면, 하나 둘 양보하다가 마침내는 진리로부터 이탈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마치는 말

 

교회가 하루아침에 진리를 부정하고 배척해 버리는 식으로 타락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작게, 혹은 적게 시작한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하나, 둘씩 양보하고 타협하는 것이다.

그럴듯해 보이는 세상의 사고방식을 서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처음에는 미미하게 나타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일과 관련하여 나타나지만, 급기야는 진리를 바꾸어 버리는 데로 나아가고야 만다.

그러므로 교회는 진리를 지키고 사수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각별한 각오를 가져야 한다. 이렇게 하는 데서 신령한 성도, 혹은 신령한 교회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래서 신령한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대적하는 세상을 항상 인식한다. 교회는 이렇게 세상과 싸울만한 인식을 가져야 하고, 능력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하여 하루도 쉬지 말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연구하며, 실천해 나가야 한다. 이렇게 살아갈 때에 신령한 성도와 신령한 교회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