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교직자 수양회 셋째 날 설교] 한 나그네의 회고(창 48:15-16)_최칠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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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그네의 회고(창 48:15-16)

최칠용 목사(시은교회 원로, 증경총회장)

 

야곱은 족장시대 살았던 믿음의 사람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적으로 친근감이 많이 가는 믿음의 선진이다. 야곱은 태어나기 전부터 극적인 스토리가 많았다. 아버지 이삭의 20년 기도 끝에 잉태되었다. 어머니 리브가의 태중에서 놀라운 일들이 있었고, 견디다 못한 리브가는 기도했다. 하나님은 두 나라 두 백성에 대해 응답하셨다. 하나님은 야곱을 있는 그대로, 태어나기전에 이미 사랑하셨다. 사실 야곱이란 이름은 발꿈치를 잡았다는 뜻 외에도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속이다”, “남의 뒤를 치다”, “사기 치다” 의 뜻이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야곱처럼 태어날 때부터 드라마같은 스토리를 가지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사람은 없다.

야곱의 삶은 창 25장에서 시작해서 50장 장례 치르는 사건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는 147년의 인생을 살면서 노년에 두 번의 중요한 고백을 했다. 첫 번째가 130살 때 바로 앞에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한 회고이다. 애굽으로 내려 온 야곱은 요셉의 안내로 바로 앞에 섰다.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자 바로가 야곱의 나이를 물었다. 야곱은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다”고 대답했다. 야곱은 살아 온 130년을 “내 나그네 길은 험악한 130년”이라 회고했다. 야곱은 130살이 되었을 때 흉년이 들어 굶어 죽지 않으려고 애굽으로 왔다. 야곱에게 찾아 온 흉년은 야곱의 130년 동안 수고하고 노력해서 쌓아놓은 것을 헛것으로 만들었다. 그야말로 바벨탑처럼 무너졌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애굽에서 시작 된 가뭄은 주변 나라들로 퍼져나갔다. 애굽 땅만 기근이 심한 것이 아니라 온 지면에 기근이 심했다. 야곱이 살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심했다. 야곱의 가정에도 양식이 다 떨어졌다. 야곱은 가족들을 모아놓고 대책회의를 했을 것이다. 야곱은 가장으로서 가족이 굶는 모습을 볼 때 비참했을 것이다. 결론은 애굽으로 양식을 구하러 가기로 했다. 양식을 구하러 애굽으로 두 번이나 다녀왔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요셉을 만나는 기적도 있었다. 기근이 시작된지 2년쯤 지났을 때 요셉은 바로의 이름으로 야곱을 애굽으로 초청했다. 바로의 초청을 받은 야곱은 가슴이 뛰고 신이 났을 것이다.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살아있다는 소식은 야곱을 놀라게 했다. 얼마나 긴 세월 아픈 가슴으로 눈물을 흘렸겠는가. 22년동안 수 많은 밤들을 뜬 눈으로 눈물과 후회로 괴로워하며 그리워하던 아들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또 바로의 초청은 흉년에 가족을 굶기지 않고 살 수 있는 양식을 해결하게 되었다. 가장으로서 굶어 죽을 상황에서 가족을 배부르게 먹일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고마웠겠는가. 경제 문제가 해결 되어 양식 걱정, 돈 걱정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애굽으로 가라고 했다. 창 46장에서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던 날 밤에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셨다. 애굽으로 내려 가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셨다.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함께 가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시며 요셉이 임종을 지킬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야곱은 130세 때 70명의 가족을 이끌고 브엘세바에서 출발하여 애굽 고센 땅에 도착했다. 나이를 묻는 바로에게 험악한 나그네길 130세라고 대답했다. 나그네라는 말은 떠돌이라는 뜻이다. 가나안, 밧단아람, 애굽으로 130년을 떠돌며 살았다. 그 떠돌이 길이 너무 힘들고 고생스러워 험악한 나그네 세월이라고 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130년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고 가족도 먹여 살릴 수 없어 얻어 먹으러 온 것이다. 바로 앞에서 자신이 살아온 130년을 회고하는 야곱은 지나온 삶이 필름처럼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천하를 호령한 바로 앞에서 야곱은 얼마나 주눅이 들고 비참했겠는가. 자신의 초라함과 허탈함, 무기력이 얼마나 컸겠는가. 자존감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자신도 한 때는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세상 누구보다도 열심히, 성실하게 살았다. 부지런하게 살았고 책임감 있고 전투적으로 살았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죽을 힘을 다했다. 심지어 해서 안 되는 일까지 했다. 때로는 싸우고 빼앗고 속이고 남의 약점을 이용하기도 하고 욕도 먹으며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다. 외삼촌 라반이 품삯을 열 번이나 속일 때도 참고 견디며 파업도 안 하고 고소도 안 했다. 빈손에서 시작한 밧단아람의 20년의 수고에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대가족을 이루었다. 큰 재산을 모았다. 고향으로 금의환향하게 되었다.

모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형 에서에게 선물을 보내고 가족과 재산도 여러팀으로 나누어 얍복강을 건너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혼자 남아 밤새워 하나님과 씨름했다. 자신의 가족과 재산을 지켜달라고 매달렸다. 에서의 칼에 피해를 보지 않도록 지켜 달라고 기도했다. 허벅지의 관절이 위골이 될 정도로 격렬하게 매달렸다. 에서의 위기를 모면한 야곱은 세겜에 정착하기 위해 땅을 샀다. 더 큰 성공을 꿈꾸었다. 그때 딸 디나의 사건과 그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시므온과 레위의 범죄로 더 큰 위기도 만났다. 이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의 약속을 지키게 하셨다. 그 위기를 넘기게 하셨다. 야곱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벧엘에서 야곱에게 한 약속을 다 지켰다. 야곱은 가족으로 인한 고난도 잘 이겨내었다. 사랑하는 라헬과의 사별, 어머니의 임종을 못 지킨 아픔, 딸 디나 사건, 시므온과 레위의 저주, 르우벤과 빌하의 불륜, 요셉과 형제들의 갈등, 요셉을 잃어버린 아픔. 이 모든 고난을 잘 견디고 이겨냈다.

창세기 35장에서 야곱은 가나안 땅에 자리 잡고 정착을 했다.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복을 주셨다. “네 이름이 야곱이지만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아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야곱이 이 약속을 받았을 때 얼마나 좋았겠는가?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했을 것이다. 꿈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 인생은 이만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못 가 흉년이 들자 130년의 수고, 열정, 노력이 빈손이 되었다. 내 인생 130년은 어디로 갔을까? 얼마나 허무하고 허탈했겠는가? 이제 바로 앞에서 야곱은 초라하고 배곯은 늙은 나그네요 슬픈 나그네이다. 그가 할 수 있는 회고는 험악한 나그네 130년이었다. 자랑스럽던 땅은 농사도 못 짓는 불모지가 되었다. 초지도 말랐다. 온 세상이 가뭄으로 기근이 들어 갈 곳도 없었다. 그동안 자랑스럽게 여기던 공든 탑이 모래성이 되었다. 늙고 가난하고 힘없는,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바로의 입만 쳐다봐야 할 야곱은 자신의 인생 130년을 회고하면서 험악한 나그네 130년이라 했다. 여러분의 인생은 어떠한가?

둘째로 147세가 된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 앞에서 믿음의 눈으로 살아 온 인생을 회고했다. 야곱이 애굽에 온 지 17년이 지나 147세가 되었을 때 고센 땅에 거주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생육하고 번성한 것을 보았다. 하나님이 하신 약속이 이루어진 것을 보았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야곱과 동행하시면서 쉬지 않고 일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갈 때가 다 되었다는 것도 알았다. 야곱은 요셉을 불렀다. 자기가 죽으면 가나안 땅의 아버지 묘지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얼마 후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두 아들을 데리고 야곱을 찾아갔다. 아들을 본 야곱은 요셉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이 루스에서 복을 주셨다고 간증했다.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양자로 삼았다. 라헬의 죽음을 추모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했다. 야곱은 기도 중에 자신이 살아온 147년을 회고하며 신앙을 고백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 147년을 키워주신 하나님이라고 회고하며 고백했다. 내가 겪은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이라고 회고했다. 야곱은 17년 전 기세등등한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초라하고 궁색한 늙은 나그네로 자신의 처지를 험악한 나그네 130년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죽음 앞에서 사랑하는 아들을 보면서 당당하게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 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 그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고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시고 믿음을 키워주셨다고 회고하며 고백했다.

험악한 나그네 130년의 세월은 야곱에게는 의미 없는 날들이 아니었다. 험악한 나그네 130년을 통해 야곱은 하나님을 알아갔다. 믿음이 자랐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요 자신의 목자이심을 알았다. 외로이 밧단아람으로 도망가는 험한 여행길에서도, 품삯을 10번이나 번복하며 두 다리 뻗고 깊은 잠 한번 못 자보고 밤낮없이 수고한 밧단아람에서 20년 동안의 고단한 일상에서도, 형 에서의 칼에서, 가족의 아픔 속에서 하나님은 야곱의 목자가 되어 주셨고 야곱의 믿음을 키워주셨다. 하나님을 깊이 알게 해주셨다. 그 고난을 견딜 힘을 주셨다. 가나안 땅에 찾아온 흉년에서도 피할 길을 내셨다. 일용할 양식을 주셨다. 그의 후손이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147년 동안 한번도 야곱을 떠난 적이 없고, 항상 함께 동행하셨다. 목자가 되셔서 푸른 초장, 잔잔한 시내, 의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며 하나님을 알게 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믿음의 족장으로 키워주셨다고 회고했다. 이제야 야곱은 죽음 앞에서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요셉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축복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축복했다. 믿음의 계대가 잘 이어 나가기를 축복했다.

저는 은퇴한지 1년 6개월 된 원로목사 초년병이다. 지나온 40년 6개월의 목회를 회고하면서 야곱이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은퇴 후에 책임을 벗어난 홀가분도 있지만, 허탈감도 없지 않았다. 우리 목사님에서 원로 목사로, 설교에 쫓기던 목사에서 축도목사로 변해있는 자신을 보면서 야곱의 회고가 많이 공감되었다. 나의 40년의 목회는 하나님을 아는 세월이었고 하나님이 일하신 것을 두 눈으로 보는 시간이었고 하나님이 믿음을 자라게 하신 세월이었다. 험악한 세월 130년을 통해 야곱을 믿음의 족장으로 키워주시며 야곱의 하나님으로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오늘도 우리를 통해 계속 되는 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