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 번역개정 공청회 논평_김재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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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신학연구위원회 공청회 논평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 번역개정 공청회 논평

김재윤 교수(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교회의 하나됨과 『신앙고백서』 개정 작업의 의미

주 안에서 친애하는 합신 신학연구위원회에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신학연구위원회를 통해서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을 새롭게 하시고 이를 토대로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도록 은혜 베풀어 주심에 함께 감사합니다. 개정 작업뿐 아니라 개정을 통해서 얻게 된 소중한 고백서를 통해서 합신에 속한 개체교회들과 성도들이 자신의 믿는 바를 분명히 하는 데까지 실질적인 진전이 이루어지길 함께 소망합니다.

제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교단과 합신 교단은 하나의 교회가 되기 위해서 논의를 진척해 왔습니다. 이 논의의 구체적인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 교회의 속성 중 하나인 하나됨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종교개혁자들 특히 칼빈의 정신을 따르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칼빈은 항상 교회의 하나됨을 추구하였습니다. 이는 현재 세계적으로 교회들이 외형적으로 약화되어서 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무분별하게 이루어지는 교단 통합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는 전체 종교개혁 진영의 하나됨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일례로 “성찬에 대한 입장”에서 불링거와 큰 차이가 없음을 기꺼이 수용하였습니다. 취리히 합의는 이런 그의 정신을 잘 보여줍니다. 성찬에 대해서 그는 루터와도 기꺼이 대화하였습니다.

크랜머 추기경에게 쓴 편지에 그는 기꺼이 모든 종교개혁 진영이 받아들일 수 있는 신앙고백과 공교회적 회합을 열망하였습니다. 그는 로마 천주교회 또한 나쁜 상태에 있는 교회로 보면서도 완전히 타락한 거짓 교회 그래서 완전히 회복될 수 없는 교회로 보지 않으려는 관점도 유지하였습니다. 이런 칼빈의 모든 노력은 그리스도의 몸이 찢겨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교회의 하나됨에 대한 열망이 모든 개혁교회에 항상 온존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런 하나됨은 단지 조직이나 기관의 통합을 우선시해서는 안 됩니다. 칼빈의 노력도 참된 가르침과 예배를 중심으로 하는 보편 교회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우크스부르크 잠정 협정에 대한 그의 반대는 칼빈이 말한 교회의 하나됨이 단지 형식적 교단 통합의 차원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알게 해줍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칭의 교리에 대해서 그 어떤 타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로마 천주교회의 칭의 교리를 수용하는 것은 명목상의 통합을 이루지만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거절하는 길로 인도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와 더불어 아우크스부르크 잠정 협정의 두 번째 주제인 예배의 방식에 대해서도 칼빈은 매우 엄격한 입장을 취하여 타협을 거부하였습니다. 그가 추구한 교회의 하나됨은 “가르침과 예배의 하나됨”이었습니다.

합신 신학연구위원회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을 개정한 것은 합신 교단을 넘어 고신 교회에 속한 우리에게 교회의 하나됨을 위한 새로운 의미를 줍니다. 우리는 이 소중한 작업을 기초로 형식적이 아니라 진정하게 교회의 하나됨을 추구하는 대로를 함께 얻게 되었고, 고신 교회들은 유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을 고백하는 모든 조국 교회가 이를 통해 유익을 누리면서 하나의 교회로 세워져 가는데 큰 기초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번 개정 작업은 종교개혁자들이 추구한 교회의 하나됨을 같이 도모할 수 있는 귀한 자산이 됩니다. 이런 점에서 합신 신학연구위원회의 수고는 뜻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이와 더불어 개정 작업을 통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을 남녀노소 모두 친숙하게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국의 장로교단들이 신앙고백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초기의 다소 거친 번역과 신앙고백서의 엄중한 성격으로 개정이 용이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걸림돌로 인해서 개체교회의 성도들은 신앙고백서를 가까이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번 개정 작업은 이런 장애를 상당히 극복하고 친숙한 신앙고백으로 다가가기에 충분합니다. 신앙고백서를 책장에 먼지가 쌓여가는 책에서 성경과 더불어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신앙의 표준으로 가까이 가게 했습니다.

개정에 대한 몇몇 고민들

1) ‘예배’ 용어의 명사적 사용 (번역)에 대하여

개정 작업 중 내용 면에서 고민되는 두 지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신앙고백서 21장 경건한 예배와 안식일 6항의 내용 중 “날마다 드리는 사적인 가정 예배 그리고 은밀히 홀로 드리는 개인적인 예배 때도 그래야 하지만”이라는 부분입니다. 일차적으로 “하나님은 예배받으셔야 한다”는 동사적인 사용을 ‘가정 예배’, ‘개인적인 예배’라는 명사로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예배’라는 명사 혹은 용어 사용에서 조금은 유의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예배’라는 용어는 근본적으로 공예배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근거는 첫째, 21장 1항에서도 나와 있듯이 하나님을 예배하기에 합당한 방식은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해주시고 자신의 뜻으로 제한하셨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예배의 규정을 따르자면 예배는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계시한 합당한 방식을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하나님께서 성경에 제시한 합당한 방식 곧, 예배의 요소들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예배만을 ‘예배’라고 해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예배라는 용어를 지나치게 남발해서 기도회를 모두 예배라고 부르는 오류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예배에서는 우리 인간이 삼위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기 이전에 삼위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들은 말씀에 일치하는 믿는 성도들의 고백, 찬양, 기도, 송영으로 이 계시가 더 풍성히 하는 현장이 예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개혁자들은 총회로 모여 신앙고백서만을 작성한 것이 아니라 항상 『예배모범』을 함께 작성하고 직분을 말한 『교회치리서』도 항상 함께 제정하였습니다. 익히 아시는 것처럼 우리가 잘 아는 도르트 총회와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그러합니다.

둘째, 코로나를 통해서 우리는 개인적인 예배, 가정 예배가 공예배를 대체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풍조와 싸워야 했습니다. 지금도 인터넷 예배라는 허상이 한국교회를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인터넷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혹여 가정 예배, 개인적인 예배라는 명사적 사용이 공예배를 대체할 수 있는 듯한, 공예배와 동등한 예배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우리는 배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가정 예배, 개인적인 예배라는 명사적 번역이 타당한가의 여부와 더불어 공예배만을 예배로 규정하는 21장 1항의 내용과 어떻게 조화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필요합니다.

2) 국가 통치자가 총회를 소집할 수 있는가?

1647년 신앙고백서를 그대로 수용한 합신 개정 작업에는 23장 3항에서 “국가 통치자는 교회 회의를 소집하고 회의에 참석하며, 회의에서 결의된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일치하도록 돌아볼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교회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 때문에 미국의 장로교회가 개정한 부분입니다. 19세기 개혁교회들은 국가 통치자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교회의 자유를 침해당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교회는 국가 통치자들이 총회를 소집하고 교회의 지도자들을 감독의 형태로 세우고자 하는 시도들에 맞서 많은 투쟁을 해 왔습니다. 16세기와는 달라진 이런 형편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의 회의는 이제 완전히 국가 통치자들로부터 자유롭게 스스로 교회 회의를 소집해야 하며 현실적으로도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더불어 31장 2항에서도 원래 국가 통치자가 대회와 공의회를 소집해야 하는데, “국가 통치자가 교회에 대한 공공연한 대적자라면”이라는 조건 하에서만 자체적으로 모일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내용도 적절하게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보입니다.

남은 부탁들

개혁교회는 신앙고백서와 더불어 『예배모범』과 『교회 치리서』(직분론)를 함께 작성하고 개정해 왔습니다. 가르침, 예배, 직분은 교회를 세워가는 중요한 기초입니다(딤전 1-3장). 칼빈도 제네바 사역 초기에 『기독교강요』 초판을 작성하였고 스트라스부르크에 돌아오자마자 『예배모범』과 『교회 치리서』를 출판했습니다. 이 셋은 항상 함께 가야 합니다. 신앙고백서에서도 이 부분을 충분히 말하고 있습니다. 합신 신학위원회가 신앙고백서를 개정하는 의미 있는 작업을 해주신 것에서 더 나아가 『예배모범』, 구체적으로는 예전, 예식에 대한 작업, 그리고 『교회 치리서』에 대한 개정 작업도 계속해서 감당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개정 작업에 대해서 함께 살펴볼 기회를 주신 합신 신학연구위원회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