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된 교회의 부활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로써 대변되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를 생명처럼 받들 수 있어야!
변세권 총회장(온유한교회)
합신 총회 모든 교회와 성도님들에게 2024년 부활절을 맞아 문안드립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창조와 부활에 참여하셔서 그 진지한 승리와 기쁨을 담아내시는 감격과 감사가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성실하심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약속이, 매 순간 순간 영원의 맥박이며, 공간의 모든 지점이, 주님의 편재로 채워져 있으며, 유한은 무한에 의해 지탱되고, 모든 생성은 존재에 뿌리 박고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 살펴볼 것은 우리가 고백하는 기독교의 영생 교리는 육체와 분리된 영혼만의 독립적인 영생불사 사상과는 전혀 다릅니다. 비록 육체가 죽어 무덤에 묻혀 썩어버렸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장차 이전의 모습대로 부활하게 되고, 향후 더 이상 죽지 아니하고 영원히 살아간다는 데 있습니다. 이는 성도란 모름지기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인 존재들, 곧 성령의 신비적 역사를 통하여 다시 살아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 접붙여져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거듭난 생명, 곧 중생 또는 새 생명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 연합되어 있어서 성도는 장차 죽음의 과정을 겪고 다시 살아나게 되었을 때의 바로 그 생명력을 지금 이 땅에서부터 구현해나가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과 원리는 십자가 상의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신 사실, 곧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하시면서 죽어 무덤에 장사되었을지라도, 이후 사흘 만에 실제로 다시 살아나신 데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께서 비록 죽임을 당하셨으나 사흘 만에 다시 부활되신 바로 그 사실에 따라, 비로소 기독교 신앙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기독교의 대표적인 인상은 부활 신앙입니다. 그때의 부활 신앙이란 사람이 죽은 후 어디로 가느냐나,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문제의 핵심이 아닌 것은, 하나님께서 그 문제에 대해서는 계시 용어 또는 비밀 계시로 삼으신 때문이고, 오직 우리의 시선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향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개인주의 신앙을 넘어 유기적 연합체가 되어야 하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도 개개인이 아니요 성도들 전체를 당신의 한 몸으로 연합시키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공히, 하나의 몸으로서의 유기체로 성립되었으니, 곧 피차 간에 연락과 상합의 관게로서 결속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유기적 연합체로서의 교회를 세우시려는 목적에 따라, 그렇게 고난과 장사와 부활의 사역을 수행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꾼인 바울도 역시 보편 교회 차원에서는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1-22)라고 하였고, 지역 교회 차원에서는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머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6)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상에서 보듯이, 교회의 본질과 가치와 의미란 성도에게 가히 사활적이기 마련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단, 여기에서 교회란 역사 속에서 개혁된 바로 그 개혁교회(정통성)의 역사적 행진(전통성)의 궤도를 달려 나가는 교회를 가리킬 것임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오직 하나로서, 곧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포괄하고 아우르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 바로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부활은 사망을 전제합니다. 이러한 역설과 모순이 생명과 영광을 만드신다는 하나님의 기적에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이런 사실을 믿고 교회의 지체로서 자리매김이 정확한 가운데, 예배자로서의 축복을 향유해나가시기를 빌겠습니다. 이런 합신의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