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읽지 않는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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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는 신문

기독교는 글의 종교이다. 하나님은 친히 돌 판에 글을 써서 모세에게 주셨고, 십계명을 근간으로 하는 율법뿐 아니라 선지서와 성문서가 글로 기록되었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구약성경을 글로 소유하였다. 비록 예수님은 글을 남기지 않으셨지만(간음한 여자 사건에서 허리를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신 것 외에는), 사도들은 예수님의 행적과 초대교회의 역사를 글로 남기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성경을 통해 사람의 글로 표현하셨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글로 자신을 보이신 것이다. 마치 사람에게 육신이 있어야 예수님의 성육신이 가능하듯이, 사람에게 글이 있어야 성경계시가 가능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성경은 일반은총으로 글을 주신 하나님의 특별은총이다.

기독교가 글의 종교라는 위풍당당한 모습은 세상의 어떤 종교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성경 시대가 끝난 직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기독교 역사를 통틀어 “그 글”인 성경을 증언하고 해석하는 “글들”이 수없이 작성되었다. 이른바 사도 교부들로부터 시작해서 길고 긴 중세와 어둠을 밝힌 개혁시대, 그리고 최첨단의 인쇄술을 자랑하는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성경이라는 “그 글”을 이해하고 전파하기 위해 온갖 방식과 별별 종류의 “글들”이 지구의 표면을 덮을 만큼 끊임없이 출현하였다. 글 없는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고, 글 없이는 기독교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던 모든 글이 읽히는 것은 아님에 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신문 “기독교개혁신보”는 자그마치 900호를 맞이하였다. 거기에는 역사가 녹아있고 사상이 응집되어 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신문도 기독교가 글의 종교임을 입증하는 매체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개혁신보는 교단 안팎의 현장과 상황을 성실하게 보도하는 단순한 소식지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성경을 이해시키고 교회를 확립하는 사상지의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이쯤에서 900호를 맞이하는 우리 신문이 얼마나 애독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교단 신자들이 교단 신문을 읽지 않는다면 신문사는 헛된 수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읽지 않는 신문은 의미가 없다.

우리 신문에는 교단의 이모저모 뉴스, 교회를 일깨우는 바른 신학, 세상을 바라보는 기독교의 시각, 교단을 이끌어가는 사상 등이 게재된다. 따라서 우리는 교단 신문을 통해 최근 교단 안팎에 일어난 소식을 듣고, 믿음의 정로를 제시하는 소중한 신학 지식을 배우며, 현실을 바로 평가하는 가치관을 익히고, 교단의 개혁을 주도하는 사상을 확보한다. 교단의 신문을 읽지 않으면 교단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교단 신문을 읽는 데 힘써야 한다. 교단 신문이 즐겨 읽히려면 두말할 나위 없이 좋은 글이 많이 기고되어야 하지만, 이와 더불어 교단 신문을 애독하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회들은 당회와 제직회 같은 공적인 자리에서, 구역이나 부서의 작은 모임들에서, 심지어 신자들이 두어 명 모여 앉는 자리에서도 신문의 기사가 이야깃거리로 흘러나오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좋겠다. 어디에서든지 신문에 실린 내용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자는 말이다. 곳곳에서 교단 신문을 읽는 광경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뛴다. 나아가서 신문 기사를 대화의 소재로 삼을 뿐 아니라 기도의 제목이 되면 더욱 좋겠다. 특히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어려움을 당한 교회들과 사역자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가.

또한 신자들은 신문을 한번 읽어버리고 말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스크랩을 해보자. 발행 날짜(호)별로, 주제를 따라서, 동일 기고자의 글을 묶어서, 연재의 순서대로 말이다. 신문을 읽히기 위해 신문사도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면, 스크랩을 잘한 사람에게, 잦은 기고자에게,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에게, 교회 행사에 관한 소식을 보내준 사람에게, 사진을 기고한 사람에게 작지만 소중한 기념품이나 답례품을 보내주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많은 사람이 자연스레 교단 신문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개혁신보가 읽지 않는 신문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교회와 교인과 신문사가 다 같이 애독 운동에 부단히 관심을 기울이며 참여해야 한다. 앞으로도 우리 신문이 기독교가 글의 종교임을 입증하는 매체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기를 바라면서, 900호 발행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