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제108회 총회를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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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회 총회를 위한 제언

코앞으로 다가온 총회에 몇 가지 제언을 한다. 첫째로 집회에 관한 제언이다. 규모와 휴양이 자주 집회의 목적이 되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집회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과 심신을 쉬는 것을 위주로 기획되었다. 성대한 집회와 휴식의 집회를 나쁘다고 탓할 수 없다. 하지만 과시성의 단합대회는 기독교의 정신에 맞지 않을 뿐더러 불필요한 경비를 소모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휴식이 부족하다는 데 있지 않다. 이삼일의 휴양으로 피곤이 풀리는 것도 아니다. 양질의 숙소와 식사의 부족도, 즐거운 오락과 여흥의 부족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최자는 이런 미끼를 던지지 말고, 참석자는 이런 미끼를 물지 말아야 한다. 집회에서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성경을 읽는 시간이 많지 않고, 기도하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이다. 집회는 참석자들이 충분한 성경읽기와 넉넉한 기도시간을 갖도록 기획되고 진행되어야 한다.

둘째는 작은 교회 살리기에 관한 제언이다. 이것은 우리 총회가 지난 몇 회기 동안 힘써 왔던 훌륭한 프로젝트이다. 그러나 이쯤에서 이 사업이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는지 솔직하게 돌아봐야 한다. “살리기”라는 말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작은 교회 목회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 덕담을 나누는 것인가, 작은 교회를 방문해서 교우들을 격려해 주는 것인가, 성금을 모아 한두 번 경제를 지원해 주는 것인가? 물질 지원은 당연히 한계가 있다. 작은 교회에 필요한 것은 경제지원이 아니라 사상지원이다. 새끼손가락은 작고 가늘다는 것에 가치가 있다. 새끼손가락을 손보다 크게 만드는 것은 소용이 없는 일이다. 배꼽은 배의 한복판에 작은 자리를 차지하기에 아름답다. 배꼽을 배보다 크게 만드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찬가지로 작은 교회에 대한 신학을 정립해 주어야 하며, 작은 교회도 강하고 멋지고 은혜롭다는 자긍심을 심어 주는 철학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로, 사회에 더욱 분명한 색깔을 보이기를 제언한다. 오늘날 기독교는 다양한 종교 가운데 하나가 되면서 어중간한 위치에 서 있다. 세상과 자리를 공유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지만, 세상의 눈치를 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예컨대 사회봉사와 문화행사는 좋은 일이지만, 거기에 복음과 진리가 함몰되어버리는 것은 나쁜 일이다. 교회는 세상에서 낯선 존재이어야 한다. 낯설음은 세상과 다른 색깔을 보일 때만 가능하다. 우리 총회는 복음과 진리를 말해야 한다. 참된 소망은 예수님 밖에 없다고 말해야 한다. 국가조찬기도회에 가면, 대통령에게 정치를 잘하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하라. 경제인에게 경제를 살리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라고 말하라. 교육가에게 학교를 잘 세우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성경을 믿으라고 말하라. 의료진에게 정직하게 진료하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하라.

넷째로, 서구를 탈환하는 선교를 제언한다. 만인은 죄인이며 오직 예수님으로만 구원을 받기에 평등하다. 복음의 대상은 동서가 따로 없고 남북이 차별 없다. 하지만 세계가 여전히 서구에 의해 선도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서구를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중차대한 일이다. 서구의 인간 정신은 인본주의에 뿌리 둔 합리주의와 자유주의로 말미암아 오랜 시간 서서히 붕괴되어 왔고, 서구의 종교 현황은 어떤 식으로든지 발을 들여놓은 이슬람에 의해 변질되는 과정에 놓여 있다. 우리 총회는 이런 서구를 다시 복음화하기 위해 유능한 선교사를 파송하여 진리의 복음을 전파하고, 탁월한 목회자를 보내 성경적 교회를 설립해야 한다. 효과적으로 복음을 이식하려면 무엇보다도 거점 도시를 영적으로 공략하는 작전을 세워야 한다.

다섯째 제언은 미래에 관한 것이다. 세상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기술은 일상생활에서 첨단산업까지 아우르는 모든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무조건 환영할 것도 아니고 무조건 거부할 것도 아니라, 다만 분별력을 가지고 유익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기독교는 세상의 기술을 처음에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다가 결국은 언제나 수용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일을 거듭해 왔다. 예컨대 인공지능이 지금은 많은 논쟁을 일으키지만 마침내는 어떤 식으로든지 받아들여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총회 차원에서 분석과 예견의 실력을 갖춘 전문가 위원회를 너무 늦지 않게 설립하여 얼마나 수용하고 어떻게 활용할지 적절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