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합신문학상 수상작] 우수상/단편소설 : 김 목사의 소명_김수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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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소명

김수환 목사(새사람교회)

성경(마 19:23~24)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며, 신앙생활을 좁은 길(마 7:13)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목회자의 길은 더욱 좁은 길일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는 이미 세상 것으로 가득 차 있는 부자들(?)이며, 자력으로 천국 입성하기에 불가능한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믿음(생명)의 길 위에 서 있고, 사역자의 길 위에 서 있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가 작동한 결과입니다. 만일 주님의 은혜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지옥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은퇴를 앞둔 저에게도 여러 번의 시험과 위기가 있었지만, 여전히 이렇게 ’믿음과 사역자의 길, 위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요, 손짓의 결과입니다. 이번 저의 글은 가상적인 내용이지만, 그 중심은 저와 모든 우리 성도들의 고백일 것입니다. 기독교개혁신보사와 심사위원님께 감사합니다.

 

무미건조한 추수감사절이 벌써 3년째이다. 그건 김 목사 사모가 세상을 떠난 햇수와 무관치 않다. 이전까지는 매년 교회의 가장 큰 행사였다. 추수감사절 몇 달 전부터, 그러니까 여름 더위가 끝나자마자 ‘새 생명 축제’라는 전도행사를 위하여 온 교회는 화력을 총 집중하였다.
예배와 설교뿐만이 아니라 크고 작은 교회의 모든 모임과 행사들이 한 명의 불신자라도 더 교회로 인도하기 위한 목표에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새 생명 축제’ 당일인 추수감사절엔 아침 7시부터 밤 8시까지 5번의 예배가 진행되었고, 어느 해인가는 100명의 새 생명이 탄생하기도 했다.
그날 한 권사는 너무 감격스러워 목사님을 붙잡고 엉엉 울기까지 했었다. 포항제철 용광로만큼이나 뜨거웠던 추수감사절이 조용해진 것은 바로 3년 전, 사모가 세상을 떠나간 뒤부터다. 그건 비단 추수감사절만이 아니었다. 김 목사의 목회 전반이 마치 폐업 전 상가들처럼 한없이 적막하고 공허했다.
금번 추수감사절도 예외가 아니다. 강단 옆에 교인들이 갖다 놓은 몇 개의 과일 바구니와 강단 뒤의 추수감사예배라는 장식만이 을씨년스럽게 걸려 있다.
김 목사 설교도 구령에 관한 절절한 메시지가 아니라, 구태의연한 감사, 그냥 설교를 위한 설교였다.
“성도의 삶의 특징은 감사이고, 감사하면 반드시 감사할 수 있는 축복이 따라옵니다”라고 설교의 톤을 높여보지만, 그럴수록 성도들의 감사의 마음은 오히려 바닥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성도들의 이런 예배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김 목사도 설교 내내 식은땀을 흘렸다.

그런데도 그날 7가정의 새 신자가 등록하는 기이한 일이 생겼다. 은밀하게 숨어서 기도한 성도들의 중보기도가 있었던 것일까? 새 신자가 교회에 올 만한 공식적인 이유들이 하나도 없었는데,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7가족 중 한 사람이 33년 전, 추수감사절 날 최혜성이 전도한 김 목사를 그토록 교회에 열심 내게 하고, 목회의 길로 접어들게 만든 최혜영이라는 사실이다.

예배 후, 여전도사님께서 새 신자들을 목양실로 안내하였다. 목양실엔 2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었고, 중앙에는 안개꽃과 장미꽃을 섞어서 꽂아둔 화병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리고 안쪽 벽에는 ‘목양일념’이라고 쓴 액자 하나가 걸려 있었다. 허겁지겁 목양실로 들어온 김 목사가 교회와 자신의 목회 철학을 간단히 소개했다. 그리곤 인척사항이 기재된 등록카드를 보고 한 가정, 한 가정 문답을 주고받았다. 3번째 순서가 바로 문제의 최혜영 집사 가정이었다.
“첫째 따님이 박미진이고, 둘째가 박미경, 어머니 성함이 최혜영씨…….”
김 목사는 최혜영이라는 이름에 순간 멈칫했다. ‘최혜영’이란 이 세 글자는 김 목사의 뇌가 어떻게 되기 전까지는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낱말들이다.
“설마 그 누나가 이곳에 올 리가…….” 하면서도 ‘최혜영’이라는 동일한 이름에 관심이 가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최 집사님께선 전에 어디서 신앙생활을 하셨나요?” “예, 여기 오기 전까지는 울산에 있는 서문교회에 다녔고요, 결혼 전에는 줄곧 전주에서…….”
김 목사는 전주라는 말에 흠칫 놀랐고, 잔잔한 가슴에 약간의 파문이 일었다.
“이 교회가 속한 교단이 합동측이 맞나요?”라고 묻는 최혜영 집사의 질문이 다 끝나기도 전에 “네, 사당동 총신대에 속한 교단 입니……” 하면서 고개를 드는 순간 최혜영 집사의 얼굴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그런데 목사님,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아요. 혹시 전주가 고향 아니신지요?” 최혜영 집사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 전주 맞습니다. 그곳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럼 고등학교가 혹시 신흥고 아니세요?……”
“네, 맞습니다. 예수병원 가기 전, 다가공원 맞은편에 있는 신흥고등학교” 김 목사가 작은 눈을 크게 뜨고 최혜영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혹시 혜성이 친구? 김성훈? 성훈이 아닌가?”
“맞아요, 제가 성훈이에요. 혜성이와 2, 3학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김성훈, 혜성이가 추수감사절 날 저를 교회로 전도했지요.”
“그런데, 주보엔 김병로 목사로 나와 있는 것 같던데~”
최혜영과 김 목사는 자신들이 찾는 사람이 동일한 인물인지, 서로 확인하기에 바빴다.
거의 확인 작업이 끝났을 무렵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이람~” 최혜영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연거푸 고개를 좌우로 도리질을 했다. 그러자 김 목사도 화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최혜영에게로 나아갔다.
그리고 두 손으로 최혜영의 한 손을 움켜잡고 흔들며 “혜영이 누나란 말이야? 최혜영 누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이게~”
김 목사가 잡았던 손을 내려놓고, 자리에 돌아와 “오, 주여!” 하면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최혜영의 두 딸, 박미진과 박미경도 양손을 입에 대고, 놀란 토끼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새 신자들과 여전도사는 몇 계단씩 건너뛰어 오가는 대화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 마치 외국인들을 바라보듯 했다.

오후 예배와 임시 당회까지 모두 마치고 돌아온 김 목사는 지난날들의 추억과 궁금증으로 밤잠을 설쳤다. 월요일이 시작되기가 바쁘게 두 사람은 만남을 약속했고, 김 목사의 단골 까페인 넓고 한적한 ‘하늘 정원’에서 만났다.
카페에 나온 최혜영은 어제 교회에서 나온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캐주얼한 옷차림 때문일까? 더 젊고 밝아 보였다.
“내가 호칭을 뭐라고 해야 할지, 어색하네. 교회에선 당연히 목사님이라고 불러야겠지만, 갑자기 목사님이라고 부르려 하니, 그 말이 자꾸 목 안으로 기어들어 가려고 하네. 옛날에 너무 편하게 지내서 그런가 봐” 의자를 다시 고쳐 앉으며 최혜영이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누나가 목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나도 어색해. 누나가 그냥 편한 대로 불러. 나는 옛날처럼 ‘성훈아’라고, 불러주는 게 훨씬 좋아. 그냥 혜성이라 생각하고……”
막 가져온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김 목사가 말했다.
“고맙다. 그냥 편하게 말할게. 결혼식이 끝나고 3개월 정도가 지났을 무렵, 혼자서 친정에 왔는데, 무슨 말끝에 혜성이로부터 너의 얘기를 들었어. 네가 나를 이성으로 너무 좋아했었고, 너로 하여금 누나를 포기케 하려고 거짓말을 했다는 거야. ‘누나는 장차 목회자와 결혼 할 거고, 교회의 사모가 될 거라고, 하나님께 서원 기도까지 했다’라고. 그런데 네가 그 말을 진짜로 믿고 진로까지 확 바꾸어서 신학대학으로 편입을 했다는 거야. 그래서 자기가 거짓말을 한 게 너무 미안하고, 죄책감까지 들고, 나중에는 두렵기까지 하더라는거야. 이러다가 친구 일생을 망치는 건 아닐까 하고~”

한 다리 건너 소문으로만 들었던 얘기들이 하나둘씩 선명한 사실로 드러나자, 김 목사는 눈을 감고 연신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 최혜영이 다시 얘기를 이어 나갔다.
“성훈이 네가 나를 좋아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인지는 몰랐지. 그리고 이성으로써가 아니라, 그냥 교회 누나로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지. 하지만 얘기 낳고, 살림하며 바쁘게 살다 보니, 이것저것 다 잊어버리더라고. 그런데 언제부턴가 남편과 자꾸 싸우고 힘들다 보니, 가끔씩 동생 이야기가 생각나더라고. 내가 성훈이하고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나? 고생할까 봐 교회 사모가 안 되고, 돈 있는 집에 시집 온 게 잘못된 것이었나? 내가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서 이렇게 자꾸 남편과 싸우고, 가정생활이 힘든 것 아닌가? 편할 땐 그런저런 생각이 안 나다가도, 안 좋은 일만 생기면 꼭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마치 하나님이 벌이라도 내리시는 것 같고, 아마도 그런 생각들이 이혼을 더 쉽게 결정했는지도 모르겠어.”
남편과 싸웠던 안 좋은 기억 때문일까? 그 말을 하는 최혜영의 표정이 조금 어두어 졌다.
“그럼 , 지금 따로 사는 거야?”
김 목사가 감았던 눈을 뜨고 최혜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응, 아무래도 관계가 나아질 것 같지 않더라고. 그 일 때문에 금식기도도 여러 번 하고, 정신과에도 여러 차례 같이 가서 상담도 받아보고, 치료도 해 봤는데,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심해지더라고. 의처증 치료가 그렇게 힘든 정신질환이래. 나도 그런 걸 드라마나 소설책에서만 보다가 내가 직접 겪어보니까 장난이 아니야, 너무 힘들어. 전문 상담가도 이혼을 권장하고, 다행이 남편도 동의를 해서 은혜롭게 잘 정리를 했지. 법적으로도 아주 깔끔하게. 얘들은 둘 다 내가 데리고……”
그 말을 하는 최혜영의 낯빛이 더 어두워 졌다.

최혜영의 불행하고 아픈 과거를 고해성사처럼 그녀 자신의 고백으로 듣자, 그동안 최혜영을 원망해 왔던, 거북이 등가죽처럼 강퍅했던 김 목사의 마음이 한결 유연해지는 듯 했다.
김 목사가 고개를 숙인 채로 탁자를 바라보며 차분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나도 혜성이를 통해서 누나 얘기를 대충 들었어. 그렇게 해서 나를 신학교에 보내려고 혜성이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하셨나 봐.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어찌 감히 신학교에 갈 생각을 하며, 목사가 될 수 있었겠어? 지금도 내가 목사가 된 게 실감이 안 나는데……”
최혜영이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후, 휴지로 손을 닦으며 자리에 앉았다.
김 목사가 카운터에 가서 자기 커피 잔에 뜨거운 물을 리필해 와서 한 모금을 마신 후, 탁자에 내려놓았다.
“누나, 나도 결혼하기 전, 아마 30번도 더 선을 봤을 거야. 내가 마음에 들면, 상대방이 맘에 안 들어 하고,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 하면, 또 내가 맘에 안 들고……100% 마음에 드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나중엔 지쳐서 그냥 사모가 되겠다는 게 너무 고마워서 결혼을 했는데, 부부가 참 그렇더라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기도한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더라고. 모르겠어, 옛날 누나의 이미지가 내 무의식 속에 너무 깊이 각인되어서일까? 집사람에게 잘해주려고 무척 애를 쓰고, 노력을 하는데도 두 사람 사이에 항상 뭔가 얇은 막 같은 게 끼어 있는 듯 했어. 집사람도 그것 때문에 늘 힘들어 했고, 괴로워했지. 집사람의 발병 원인이 결코 나 때문이 아니라고 담당 의사가 두 번 세 번 말을 했는데도, 자꾸 나 때문에 병이 나고, 나 때문에 세상을 일찍 떠난 것 같아서 지금도 무척 괴롭고 죄책감으로 밤잠을 설칠 때가 너무 많아. ‘아내 한 사람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자가 무슨 목회를 한다고’ 자꾸 이런 생각도 들고. 교인 중에서도 나 들으라고 노골적으로 그렇게 떠들고 다니는 집사도 있어. 문제는 내 신앙 양심도 그것을 부인할 수 없다는 거지. 요즘은 기도도 잘 안 되고, 강단에서 교인들을 바라보며, 설교하는 게 너무 힘들어. 그래서 교회와 노회 앞에 언제 사임서를 제출할까? 지금 그것을 고민하고 있는 중이야.”

김 목사의 삶에 최혜영 자신이 본의 아니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 들자, 급하게 말을 받았다.
“사모를 마음 다해 사랑하지 못하게 한 건, 분명 내 잘못도 큰 것 같네. 그런데 교회에 열심을 내게 하고, 목회자의 길을 가게 한 것은 좋은 일 아닌가?”
최혜영은 혼자 중얼거리듯, 그 말을 하며 작게 웃었다.
사실 김 목사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도 오직 공부밖에 모르는 쑥맥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중학교 2, 3학년만 되어도 여학생들을 만나러 다닌다고 난리였다. 하지만 김 목사는 고 2가 되었는데도 여학생에 대한 호기심은커녕, 오히려 여학생을 만나면 얼굴이 더 먼저 빨개졌다.
그러던 김 목사가 목사 아들인 친구 최혜성의 전도를 받고 난생처음 교회에 가게 된 것이 그의 운명을 바꾸게 된 것이다. 예배를 마치고 사택에서 라면을 끓여 가족들과 함께 먹는데, 그때 친구보다 2살 위인 그의 누나 최혜영을 처음 보게 된 것이다. 김 목사가 최혜영을 보는 순간, 잠들어 있던 이성의 눈이 한순간 깨어났고,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김 목사의 교회 열심은 시작되었다. 주일 대예배, 주일 밤예배는 말할 것도 없고, 수요예배 심지어는 새벽예배도 거의 빠지는 날이 없었다. 교인들은 김 목사의 그런 속사정도 모르고, 믿음 좋은 학생이라고 입술이 마르도록 칭찬들만 늘어놓았다.
약간의 교회 출석만 자제했었더라면, 아마 S대도 무난하게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기다 보니,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고, 결국 H대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이 터진 것은 대학 1학년 한 학기를 마치고, 2학기가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자신의 전부와 같은 혜영이 누나가 목회자와 결혼할 거며, 교회 사모가 되기로 하나님께 이미 서원을 했고 부모님과도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최혜영 동생인 친구 최혜성을 통해서 듣게 된 것이다. 사실 자기 누나는 하나도 관심이 없는데, 자기 혼자 일방적으로, 그것도 병적일 정도로 집착하는 친구가 너무 걱정된 나머지 누나를 포기케 할 목적으로 최혜성 나름, 전략을 세운 것이 바로 ‘사모전략’이었던 것이다.
친구 최혜성은 김 목사가 가정환경으로 보나 장래성으로 보나 목회자가 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전략이 더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친구의 그 얘기를 100% 사실로 알게 된 김 목사는 오직 최혜영과의 사랑과 결혼을 위하여 기꺼이 목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듬해 바로 신학대에 편입을 결행한다. 지금 생각하면 일반 대학을 마친 후, 신대원에 진학해도 목회자가 되는 길이 있는데, 당시 그런 정보가 없던 김 목사는 목회자가 되려면 오로지 신학대학을 졸업해야 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뒤늦게 아들의 신학대학으로의 전학 사실을 알게 된 김 목사 집안은 발칵 뒤집혔고, 화가 난 아버지는 당장 등록금과 용돈을 끊어버렸다. 김 목사는 월부 책 판매와 노가다를 해가며, 아주 힘겹게 대학을 마쳤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신대원에 진학을 했다. 그리고 한 학기를 마친 후, 연기했던 군에 입대했다.

사랑과 결혼을 위한 눈물겨운 희생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그의 진심에 응답하지 않는다. 그가 입대하여 훈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최혜영이 좋은 혼처 자리가 생겼다며,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결혼식이 끝난 몇 달 뒤, 이 사실을 알게 된 김 목사의 충격은 군 복무 내내 자살충동에 시달렸다.
사격을 할 때에도, 혼자 불침번을 설 때에도, 극단적인 생각들이 두더지 팡팡볼처럼 문득 문득 떠올랐다. 총기가 되었든, 탄창이 되었든, 대검이 되었든, 유격용 로프가 되었든, 보이는 모든 것들이 자살할 수 있는 수단들로 연상 되었다.
자살의 충동이 잠잠해진 것은 제대 후, 복학해서 친구 전도사님들과 함께 기도하고, 한 교수님과 지속적인 상담을 받은 뒤부터이다.
김 목사에게 새겨진 최혜영에 대한 그리움과 배신감은 전문가들도 쉽게 꺼낼 수 없을 만큼 마음 깊은 곳에 낚씨 바늘처럼 박혀 있었다. 김 목사의 자살 충동과 최혜영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치유되고 회복이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이었다.

김 목사는 최혜영 때문에 그토록 교회에 열심을 내었고, 신학대에 전학(轉學)을 하였으며, 신대원 졸업 후, 목사가 되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구원의 확신과 신앙의 기초를 놓았고, 신학대와 신대원을 다니면서 신학과 복음을 체계적으로 깨닫고 전도자와 목회자가 되었다.
물론 최혜영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김 목사 삶의 축(軸))과 살(矢)은 최혜영에 의해 수정되고 재편되어 지금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모가 세상을 떠나고, 사모의 발병과 죽음의 근원이 자신 때문이라 믿고 양심에 가책이 되어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목회직까지 그만두려고 하는 이 시점에 또다시 최혜영이 그 앞에 나타난 것이다. 33년 전, 그날과 같은 추수감사절에.

압축된 33년간의 삶, 사모가 죽었다는 얘기, 그리고 힘들게 얻어낸 목회직 까지 내려놓겠다는 얘기를 묵묵히 듣고 보니, 최혜영 자신도 마치 공범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고, 어떻게 든 이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훈아, 아니 김 목사, 다시 시작하자, 기도할게.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고 우리가 전주에서 교회 다닐 때, 돌아가신 아빠로부터 귀가 아프도록 들은 말씀이잖아! 분명 달라질 거야”

이상한 일이다. 카페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아무런 생각 없이 덤덤했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있는데 신기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박카스를 마셨을 때처럼 힘이 생긴다. 친구 목사가 몇 날 며칠을 금식기도 하며 중보기도를 해줬을 때에도 아무 일도 없이 밋밋했었다. 그런데 특별히 뭘 해준 것도 없고, 그냥 ‘내가 기도할게’라고 한마디 말을 한 것밖에 없는데, 마음이 소생되는 듯하고, 힘이 생긴다.
“기도해 줄게”라는 말이 자꾸 ’결혼해 줄게‘라는 말로 들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도라는 단어와 결혼이라는 단어는 결코 오독될 수 있는 단어가 아님에도 김 목사에게는 이상하게 두 단어가 자꾸 환치되어 들린다. 또 33년 전 때와 꼭 같이 김 목사 혼자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생기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때 김 목사보다도 김 목사를 더 잘 알고 있고, 김 목사에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번번히 금식기도까지 해줬던 친구 하 목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김 목사가 먼저 말을 했다.
“하 목사, 당신이 기도해 줄 때는 아무 일도 안 생겼는데, 혜영이 누나는 그냥 보기만 했는데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니, 이게 무슨 영문이지?”

하 목사가 하 하 하 하고 호탕하게 웃으며,
“김 목사, 혜영이 누나가 천사다, 천사! 아니, 중보자! 하나님께서 혜영이 누나를 통해서 김 목사 당신을 다시 부르시는 거라고. 고 2때는 애굽과 같은 세상으로부터 교회로 부르시고, 또 신학대학으로 부르시더니, 목사직을 내팽개치고 세상으로 도망가려 하니까 또다시 혜영이 누나를 통해서 가지 못하게 꽉 붙잡으시는 거라고. 아니 재소명을 주시는 거라고”
“하 목사, 그거 너무 알레고리컬한 해석 아니야? 우리 칼빈주의 입장에서 개혁주의적으로 해석을 해야지.”
김 목사가 속으로는 은근히 좋아하면서도 마음에 없는 칼빈주의와 개혁주의라는 말을 꺼냈다. 그러자 하 목사가 성경 구절까지 인용해 가면서 다시 자기 말을 변호한다.
“김 목사, 하나님께선 우리를 호렙산에서만 부르시는 게 아니고, 다메섹 도상에서만 부르시는 게 아니라고. 하나님의 부르심은 너무 다양해, 사람을 통해서도 부르시고, 나귀를 통해서도 부르시고, 심지어는 천둥 번개를 통해서도 부르신다고. 교회나 기도원에서 거룩하게 기도할 때만 부르시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활동을 자기 인식의 틀 안에 가두는 우를 범하는 거라고. 그것도 1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계속, 아니 평생, 유효한 부르심으로 우리를……”
“알았습니다, 하 박사님, 100% 아멘입니다.”
김 목사는 일부러 약간 비꼬는 투로 말했지만,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까지 강변하는 하 목사의 설명을 듣고 보니, 기분만 좋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확신까지 생기게 되었다.

전화를 끊고 나자, 김 목사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 감사의 눈물일까, 회한의 눈물일까? 아니면, 이 둘이 반반씩 섞인 눈물일까? 한동안 말라붙었던 김 목사의 두 눈에서 뜨거운 액체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33년 전 난생처음 교회에 가서 라면을 먹던 일, 그때 김 목사를 정신 나가게 했던 혜영이 누나의 청순한 얼굴, 대학을 옮길 때, 의논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 격노했던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 용돈이 바닥이 났는데, 노가다 하다가 발목을 다쳤던 일, 금식기도로 준비까지 하며, 목사 안수 받던 날의 북받침, 그리고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를 끼고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아내의 모습.
그때 혜영이 누나로부터 카톡이 날아옴으로 꼬리를 물고 주마등처럼 떠오르던 지난날의 추억은 중단되었다.
“한번 들어봐, 아침에 김 목사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이 가스펠 송이 떠오르네”라는 멘트와 함께 <십자가의 전달자>라는 복음성가 음원이 있는 URL을 보내주었다. 그 복음성가는 한때 김 목사도 너무 좋아하고 자주 부르며 은혜를 받았던 노래였다.

난 지극히 작은 자 죄인 중에 괴수
무익한 날 부르셔서

간절한 기대와 소망 부끄럽지 않게
십자가 전케 하셨네

어디든지 가리라 주 위해서라면
나는 전하리 그 십자가

내 몸에 벤 십자가 그 보혈의 향기
온 세상 채울 때까지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사나 죽으나 난 주의 것

십자가의 능력 십자가의 소망
내 안에 주만 사시는 것

난 지극히 작은 자 죄인 중에 괴수
무익한 날 부르셔서

간절한 기대와 소망 부끄럽지 않게
십자가 전케 하셨네
내 사랑 나의 십자가

김 목사는 두 번은 그냥 들었고, 한 번은 소리 내어 불렀다.
그날 밤, 김 목사는 교회와 노회 앞에 제출할 사직서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