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 현장 리포트 <3>| 복 터진 여인, 그녀의 후반기 인생_최현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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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터진 여인, 그녀의 후반기 인생

< 최현재 목사,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남가주노회 >

 

남은 인생 자투리까지 하나님께 드려 쓰임 받는 그 모습이 아름다워

 

 

일반적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고 바라는 일이 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고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는 것이리라 여겨진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으로 들려주신 말씀인 마태복음 6장에서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하시며 공중의 새도 백합화도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신다 하신다.

다만 우리 인생들이 추구해야할 일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며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인생들이 추구해야할 진정한 복의 의미를 정의해 주신 것이다.

그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여성이 한분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이 여성을 복 터진 여성이라 부른다. 이 분과는 의사와 환자로 처음 만났다. 치료를 하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참 복이 많은 여성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온 가족이 페루에서 6년, 일본에서 25년 동안 선교사로 봉사하였다. 특히 일본에서는 히로시마 원폭지역에 남아있던 방사능에 피폭되어, 그 후유증으로 암이 생겨 그로 인한 고통과 싸우면서 더 이상 선교사역이 불가능해 고국인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 험한 병고를 극복하여 이제는 건강을 회복하였다.

지금은 캘리포니아의 한 종합병원에서 환자들에게 건강한 식단과 생활 습관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자녀들은 모두 장성하였고 이제 건강한 몸으로 혼자 살며 남은 인생을 즐기는 삶을 꿈 꿀만 하다.

그러나 그녀는 인생의 후반기에 그 모든 삶의 즐거움을 내려놓았다. 대신 끊임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쓰임받기 원하는 삶을 선택한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필자는 그녀가 그 누구보다도 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려야하는 여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몇 년 전 필자는 그녀와 인도의 선교여정을 함께 하게 되었다. 그 여정을 함께하면서 그녀의 진가를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그녀와 필자는 인도의 콜커타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필자는 일주일 먼저 인도 북동쪽 뱅글라데쉬와의 국경지역이며 뱅골 호랑이가 산다는 순더반의 육백여개의 섬들 중 몇을 방문하여 치료사역을 해야 했다.

필자는 미국을 출발하여 두 번 비행기를 갈아타고 밤늦게 콜커타에 도착하였다. 공항에서 만난 함께 동역할 팀을 인도하시는 분이 “우리 팀은 오늘 밤 순더반 지역으로 3시간을 이동해야 합니다”고 말했다.

이때 필자의 몸은 이미 두 번의 비행 여정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누울 곳을 찾아 몸을 기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이미 계획된 여정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어두운 밤에 덜덜거리는 버스 지붕위에 다시 짐을 올려 싣고 세 시간동안을 달려야 했다.

도착한 그 나루터에서 ‘아, 이제는 누울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도 잠시, 이제는 다시 모든 짐을 내려 나루터로 옮겨 배에 싣고 3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니 기가 막혀 한숨만 터져 나온다.

칠흑 같은 흑암 중에 무거운 짐들을 들고 끙끙거리며 나루터로 옮겨 배에 싣고 차가운 강바람을 맞으며 새벽 3시반경에 도착하여 이제는 배에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가 동이 트면 바로 사역을 시작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여기 일행들과 달리 필자는 이 사역을 시작으로 콜커타에서, 그리고 비사카파트남에서 다시 캄보디아로 이동하여 여러 마을들을 다니며 사역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처음부터 이렇게 힘을 다 써버리면 남은 사역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한없이 몰려오는 걱정들과 함께 플래시를 들고 배에서 내려 섬의 이곳저곳을 살피며 누울 곳을 찾아보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잠시 스쳐지나가는 플래시 불빛 끝으로 보여 지는 사람 같은 물체가 어둠가운데 보였다. 자세히 보며 필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흙으로 지어진 움막 같은 곳에 들짐승처럼 웅크리고 누워 잠을 자는 현지 인도인을 보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귀한 사람이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모른 채 영 육간 이렇듯 짐승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 배후에 역사하는 악한 마귀의 영이 얼마나 사특하고 교활한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사역으로 적게는 하루 30명에서, 한 섬에서는 몰려오는 환자들을 돌려보낼 수 없어 하루에 130여명을 치료해야 했다. 하루에 가장 많은 환자들을 돌보아야했던 날 시간을 정하여 환자수를 조정하려는데 기다리던 사람들이 돌아갈 수 없다며 떼를 쓰다가 폭력사태가 일어 날 것 같은 험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하였다. 곧 그들을 진정시키고 치료를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순더반에서의 모든 사역을 마치고 그녀를 만나 또 다른 사역을 준비하기 위하여 콜커타로 돌아온 필자의 몸은 과로로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누적된 피로에다 몸살까지 앓아 목은 쉬고 온몸은 오한에 푹푹 쑤시고 심한 기침에 더 이상의 사역에 대한 의욕마저 상실한 상태였다.

콜커타로 이동한 필자는 그곳에서 약속한 대로 캐로린 선교사를 만났다. 그녀는 건강한 모습으로 필자와 함께 사역할 기대로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러나 필자의 목의 통증과 함께 말을 할 수 없고 몸살에 두통 등 그야말로 중 환자의 모습에 많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런 필자를 위하여 주님께 간절히 기도해 준 것을 잊을 수 없다.

우리 일행은 다음 사역을 위해 콜커타에서 비사카파트남으로 향하기전 남은 사역을 정리한 후 이제 마지막 밤을 콜커타에서 지내야하는데 그 작은 모텔에 남은 방이 한 개 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다른 방도가 없다는 판단으로 함께 방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두개의 간이 침대를 사용하여 작은 방에 키가 거인 같은 영국인인 아트와 미국인 캐로린, 그리고 필자가 함께 잠을 청해본다. 내일 새벽 4시 비행기로 떠나야 해서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 한시 경에 출발해야 한다. 매 시간이 고통으로 여겨졌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인 캐로린 선교사, 그리고 필자와 아트 선교사가 함께 방을 나누어 함께 사용해야 한다니 필자는 혼자 독방을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지만 방도가 없어 함께 밤을 지내야만 하였다.

한밤 중 키가 큰 아트 선교사는 세상모르고 코를 드르릉 골며 골아 떨어졌고 필자는 밤을 꼴딱 새우면서 기침을 해대는 중에 미국에서 독일을 거쳐 콜커타에 도착한 캐로린 선교사는 그 피곤한 중에서 잠을 자야하는데 잠 한숨 잘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필자는 이 모든 상황을 돌이켜 생각하면서 한없는 감사가 마음 저변에서 솟아오름을 느꼈다. 한 영국인 남성은 영국에서 콜커타로, 또 한 미국인 여성은 미국에서 유럽을 거쳐 콜커타로, 한국인 남성(필자)은 미국에서 독일과 콜커타 그리고 순더반을 거쳐 다시 콜커타로 와서 한 방에서 잠자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이해와 상식으로는 될 수도 없고 받아들여지지도 않는 일이 아닌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복음과 예수님이 아니면 영국사람, 미국 여인, 한국 사람이 한 방에서 잠을 잘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들의 이런 불편함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감수할 수 있었을까? 캐로린 선교사의 모든 사역이 끝날 때까지 시종 미소를 머금고 감사가 넘치는 모습을 보며 남은 인생의 자투리 부분까지 하나님께 드려 쓰임 받으려는 그 모습을 보며 과연 그녀는 복이 터지게 넘치는 여성이라 여겨진다.

다시금 다짐해 본다. 앞으로 더욱 기쁜 마음으로 복음을 인한 모든 불편함과 고통을 기쁨 중에 감사함으로 감당하여 남은 생애에도 그리고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의 삶에도 하나남께서 부으시는 그런 복이 터져 넘치기를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