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은사에 대한 성경적 인식
사도 시대의 예배 정경을 통해 당시의 기적 은사는 교회에 보편적으로 적용되었다. 워필드에 의하면 당시 교회는 특징적으로 기적을 행하는 교회였고 심지어 기적 은사들이 예배의 정경을 이루었다. 따라서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면, 그것은 보편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이 보편적이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도들 이후 공교회가 기적적 은사가 아닌 평상적 은사와 방식으로 사역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기적 은사가 사도 시대에 보편적이었다는 사실은 완성된 성경의 토대 위에 평상적 사역으로 복음을 전하고 목양하는 사도 이후의 교회들을 초대교회의 비범한 사역과 구분해야 함을 말한다. 따라서 사도 시대의 교회의 예배와 사역의 특징을 사도 이후의 교회와 오늘날에도 동일시하려는 것은 위험하다. 신사도 운동과 은사주의 류의 신학과 신앙의 위험성이 여기에 있다.
합신 총회 헌법, 교회정치에는 이러한 인식이 잘 반영돼 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최초에 기적을 행할 은사를 사도들에게 주셨고(마 10:8), 그들의 선교에 의하여 각국에서 택한 백성을 모아 그의 몸 된 교회를 세우셨다. 사도직과 선지자직은 그대로 계승되지 않았고, 그 직의 표가 되는 사도적 기적(고후 12:12)도 멎어졌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회의 기초가 성립될 때에만 기초 직원이 있었다”(엡 2:20; 계 21:14). (제 4장 제1조). 그리고 제 2조의 제목을 “교회의 평범한 항존 직원”이라 하므로, 비범한 사도직과 현재의 평범한 항존 직원(목사, 교사, 장로, 집사)을 구분한다.
사도들의 사역은 신약교회의 기초를 세우고, 영감 받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완성하는 특별하고 비범한 사역이었다. 당시의 기적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는 목적으로 주어졌으며 그것은 성경이 완성된 후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사도들이 떠난 후, 교회는 구약과 신약,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남긴 성경을 평상적 사역 방식으로 전하므로 택함 받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교회를 이룬다.
기적 은사는 일시적으로 주어졌던 직분으로서 사도들과 함께 지나갔다고 볼 수 있다. 왜냐면 기적 은사는 본질적으로 사도들에 대한 보증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신약 교회의 기초를 놓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완성하고 남길 특별하고 일시적인 직분으로서 사도의 신임장과 같은 것이 기적 은사였다. 사도들이 기초를 놓은 교회에 한정된 은사였다. 워필드는 말한다. “이 은사들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라고 권위를 부여하여 임명하신 대리인들로서의 사도들이 지닌 신임장의 일부였다. 그러므로 이 같은 기능은 그 은사들을 분명히 사도들의 교회에 한정시켰으며, 당연히 사도들의 교회와 함께 사라졌다.”(B. B. Warfield, 기독교 기적론)
구약의 기적들은 오실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보내진 선지자들과 그들이 전하는 말씀의 신임장이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되심과 구주로서 전하신 말씀들에 대한 신임장이요 확증이었다. 사도 시대에는 교회의 기초를 놓으라고 보내신 사도들과 그들이 전한 말씀의 신임장이요 확증이었다. 그렇게 기적들이 필요했다. 교회의 기초가 세워지고 기록된 말씀으로서 성경이 완성되었을 때, 사도도 떠나가고, 사도를 확증하던 기적 은사라는 신임장도 사라졌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도 시대 이후로는 성경이라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성령의 역사로 교회가 세워져 간다. 비범한 방식으로서 기적 은사보다는 말씀 선포와 성례와 권징이라는 평상적인 방식이 사역의 보편성이 되었다.
사도들이 떠난 후 이적 은사가 사라진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 시기를 칼로 자르듯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도들이 떠나는 시점에서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어느 시점에서 이적 은사가 교회에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과 주권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이다.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과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표방한 교회는 은사들의 기원과 성격에 대한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그들의 신앙고백 가운데 그리고 교회의 질서 가운데 기적 은사가 멈추고 중단되었음을 표명했다. 그리고 사도 이후의 교회의 역사적 문헌들이 이를 증거한다.
오늘날 개혁교단 교회들은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오늘날에도 사도시대와 같은 기적들을 추구하고 표방하는 신학 사조와 목회 행위들이 주변에 존재한다. 개혁교단 내에 그런 조류를 부흥의 한 방식으로 포용하는 오류에 드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