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과 희생의 열정 필요한 때_박성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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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과 희생의 열정 필요한 때

< 박성호목사, 푸른초장교회 >

 

처음 시작할 때의 개혁을 위한 희생과 열정 다시 찾아야 할 것

 

 

얼마 전 오랫동안 함께 뜻을 나누었던 모선교회 동역자들과 신안군의 H도(섬)를 다녀왔다. 신비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솜씨를 보면서 오랜 만의 달콤한 휴식의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감사한 것은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는 잠 27:17의 말씀의 복을 함께 누리는 시간 이었고 또 무엇보다도 더 감사한 것은 대학시절의 목회소명의 ‘초심’을 다시 한 번 회복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멤버들이 장소를 그 섬으로 선택한 이유는 그곳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고 그곳이 40여 년 전 학창시절에 선교회를 만들면서 첫 번째로 낙도를 선정하여 어린이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목포에서 10여 시간을 토하고 멀미하면서 배를 타고 가서 땀 흘리며 전도하며 봉사했던 섬이었기 때문이다.

물이 없어 샤워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빗물로 세수정도만 하는 고생을 감수하면서 열정적으로 전도했던 초창기 멤버들의 에피소드와 희생의 대화를 들으면서 나도 소명의 초심으로 돌아가 자신을 점검하는 큰 유익을 체험했다.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할 때면 누구나 선한 뜻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초심’은 아름답다. 처음부터 불순한 마음을 가지고 무슨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개는 거룩하고 순수하고 좋은 의도로 시작한다. 또 평생토록 신실하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며 시작하기에 ‘초심’은 매우 귀한 것이다. 그러나 그 초심을 지키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도 모르게 시간이 흐르면서 타성에 젖고 또 편리한 것을 추구하게 되면서 나태하게 된다. 매일 설교하고 목회의 분주함에 쫒기다 보니 어느새 60 고개를 훌쩍 넘어버렸다.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환갑 진갑 다 지나고 보니 이제 좀 편하고 싶고 나태해 지고 열정도 식어 버리는 듯 했는데 다시 한 번 ‘초심’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 크게 유익하고 감사했다. 모든 일에 모든 모임에는 초심과 희생의 헌신이 필요하다. 또 초심의 열정과 희생의 헌신에는 반드시 열매가 있다.

우리교단도 설립 된지 벌써 34년이 지나고 있다. 대 교단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교회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교단으로 인정받고 있고. 또 남서울교회 지하에서 출발한 합동신학대학원도 한국교회가 부러워하는 귀한 신학교로 성장했다.

이 모든 배후에도 초심의 열정과 희생의 헌신이 있었음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정규대학 교직원의 지위를 잃고 적정한 사례도 받지 못하면서도 열정적으로 가르치셨던 교수님들의 희생과, 섬기던 교회에서 하루아침에 쫒겨나 한 동안 임지도 없이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겪으면서 눈물겹게 공부했던 선배들이 있었고 또 명동의 귀한 재산을 아낌없이 드린 분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합동측 총회에서는 합동신학교 학생들에게는 강도사고시 자격을 안 준다하여 우리는 수년을 전도사로 사역할 각오와 결심으로 공부를 했고, 군목시험에 합격하여 군종장교로 입대해야 하는데 자격을 박탈당하여 사병으로 입대해야 하는 아픔을 겪은 친구들도 있었다.

이런 고난과 환경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른 신학을 배워 바른 교회를 세우고 바른 삶을 살아야겠다는 좋은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초심’이 점점 식어져 가고 있다. 나부터도 좀 더 편해지고 싶고, 좀 더 폭 넓고 유연해져야 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잘 못된 관행들을 개혁하기 보다는 동화되어 가는 듯하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 합신의 정신이 무엇인가? 고신은 순교정신을 자랑하고 통합은 연합을 강조하는 등 각 교단 나름대로의 자랑과 특성이 있다. 그럼 우리 합신의 자랑과 특성은 무엇인가?

개혁주의 바른 신학을 배웠음에도 목회현장에서는 교회성장의 목적 때문인지 예배나 조직형태로 볼 때 장로교회인지 오순절교회인지 선교단체인지 구분할 수가 없게 된 것과,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는 열악한 환경 때문인지 부교역자를 청빙하려해도 구할 수 없는 작금의 우리의 현실을 바라볼 때 마음이 답답하고 안타깝다

이제 우리교단과 신학교는 출발시의 ‘초심’을 찾아야 한다. 개혁을 위한 희생의 열정을 다시 찾아야할 때가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분리된 또 하나의 군소교단으로 전락라고 말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희생의 열정을 다시 찾아야 한다.

초심과 희생의 열정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합신으로 세워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