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총회교직자 수양회 강의] 웨스트민스터 신앙문서와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의 전가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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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신앙문서와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의 전가 교리’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의 전가’와 관련하여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16세기 중엽, 테오도르 베자(Theodore Beza, 1519-1605)가 신약주석(1556년)에서 로마서 5장 18절을 주석하며 진술하기를 죄인이 의롭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갚으신 형벌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한 의가 전가됨으로 인한다고 한 바에 대하여, 피스카토르(Johannes Piscator, 1546-1625)가 이에 대하여 신자에게 전가되는 그리스도의 순종은 오직 고난과 죽음의 순종일 뿐이라고 반박을 하였다.

유럽 여러 개혁교회 총회의 판단

이후로 여러 모양의 신학 토론이 있었고, 유럽 각 나라의 개혁교회는 이에 대한 총회의 판단을 제시하였다. 가장 빠르게는 16세기 말 스위스 개혁교회는 베른 총회(1588)에서 ‘그리스도께서 자기 생명을 친히 바치시어 율법이 요구하는 두 번째 돌판을 성취하시는’ 순종을 고난의 순종과 구별하여 진술함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순종을 잘 진술하였다. 17세기 초 프랑스 개혁교회는 17(1603), 18(1607), 20(1612), 21(1614)차로 이어지는 대회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는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만이 아니라 능동적 순종의 측면을 포함하는 모든 순종에 의한 것이라 결의하고 목사로 하여금 서명하도록 하였다.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도르트 총회(1619)에서 벨직 신앙고백서의 22조 가운데 본래의 진술, “그가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을 수정하여, “그가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행하신”으로 바꾸었다. 추가된 ‘우리를 대신하여’는 수동적 순종만을 주장하는 이들이 반대하는 문구이었음을 고려할 때, 네덜란드 개혁교회도 그리스도의 모든 순종에 의한 의의 전가를 승인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17세기 중엽에 열린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당연히 이러한 사안에 대하여 총대들 사이에 토론이 있었고, 총회는 그리스도의 모든 순종에 근거한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의 교훈을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에 반영해 두었다. 개혁교회의 총회들의 이러한 흐름은 17세기 후반 스위스 개혁교회의 일치신조(1675)에 이르러 가장 강한 어조로 진술되고 있다. 수동적 순종에 의한 의의 전가만을 주장하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능동적 의를 자신을 위한 의로 주장하며 택함 받은 자들에게는 자신의 수동적 의만을 주며 전가한다고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능동적 의와 수동적 의를 분리한다. 이러한 판단들과 이와 비슷한 모든 것들은 명백한 성경에 어긋나며 또한 우리의 믿음과 구원을 주시는 분이시며 완성하시는 분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반대된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효력을 무력하게 만든다. 겉보기에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높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약화시킨다.”(16항의 일부)

칭의 – 의롭다 함

그러면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이 어떠한 진술로 그리스도의 모든 순종에 의한 의의 전가의 교리를 전달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1장 1절은 의롭다 함을 받는 은혜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의지할 때 오직 그리스도의 순종과 속상을 이들에게 전가하심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진술한다. 여기서 의의 전가와 관련하여 신앙고백서가 표현하는 “그리스도의 순종과 속상”에서 “속상”(贖償, satisfaction)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그리스도의 고난, 특별히 죽음을 의미하며,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으로 인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순종”은 하나님의 명령이나 율법에 대한 순종, 곧 능동적 순종을 뜻한다. 이러하기에 신앙고백서는 11장 1절에서 죄인을 향한 의의 전가가 ‘그리스도의 모든 순종’에 근거하고 있음을 잘 진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11장 3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순종, 그리고 죽음으로, 이렇게 의롭다하심을 받는 모든 사람의 빚을 완전히 청산하셨으며, 이들을 대신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공의를 합당하고 참되며 완전하게 만족시키셨다.”라는 반복된 진술에서 확인된다. 여기서 “자신의 순종, 그리고 죽음으로”의 표현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하는 일에는 빚의 완전한 청산만이 아니라, 신자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일이 필요함을 밝혀 주고 있다.

행위 언약과 약속된 생명

이처럼 신앙고백서는 왜 공의의 만족을 위하여 단지 그리스도의 죽음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순종 또한 필요하다고 진술하고 있을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맺으신 최초의 언약인 행위 언약과 관련된 사실 때문이다. 신앙고백서는 7장 ‘사람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 1절과 2절에서 진술하기를, 이성적 피조물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은 마땅한 일임에도 하나님께서 자발적으로 자신을 낮추시어 언약에 순종하는 일에 복과 상을 주시기로 하신 행위 언약을 주셨으며, 행위 언약을 지킬 때 “아담에게 그리고 아담 안에 있는 그의 후손들에게 생명이 약속되었다.”고 진술한다. 이때 하나님께서 창조 때에 사람과 맺으신 행위 언약은 나중에 율법을 순종하는 일과 관련하여 여전히 효력을 갖는다. 신앙고백서 19장 1절(참고, 대요리문답 93)에서는 행위 언약에 따라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을 율법으로 진술하면서, “율법을 성취하는 경우에는 생명을 주기로 약속하셨으며, 깨뜨리는 경우에는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음을 밝힌다.

그렇다면 행위 언약을 지킴으로써 사람에게 약속된 생명은 무엇일까? 4장 ‘창조’ 2절은 본래 사람은 창조 때에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행복했으며 피조물에 대한 통치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지키는 한 이러한 복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임을 말한다. 이것은 창조 때에 이미 주어진 복이다. 이 복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지 않을 경우 계속 누릴 수 있는 복이다. 그러나 불순종의 경우에는 이 복을 잃어버리고 죽음의 벌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 창조 때의 복은 계속해서 지켜지기에는 불안전성을 가진다. 아담과 하와의 최초의 상태와 관련하여 4장 2절은 “범죄 할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 이들은 변할 수 있는 자신들의 의지의 자유에 따라 행하도록 허용” 되었다고 진술한 부분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이 말은 아담은 언제라도 최초의 복된 상태를 불순종으로 잃어버릴 수 있는 타락의 가능성 아래 있음을 의미한다. 이 타락의 가능성은 불순종으로 인하여 당할 죽음의 벌을 받는 가능성이다. 신앙고백서가 이러한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행위 언약의 순종을 통해 주시는 상을 생명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담이 죄를 범할 가능성이 없으며 그 결과 죽을 가능성이 없는 복을 받을 것임을 뜻한다. 곧 창조 때에 아담이 이미 누리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약속에 의해 주어지는 생명이며 아직 이들이 소유하지 못한 생명이다.

은혜 언약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생명

이제 행위 언약에 대한 불순종으로 인하여 아담과 하와는 약속된 (죽을 가능성이 없는) 생명은 물론 창조 때에 누리던 (선을 행할 가능성이 있으나 죽을 가능성이 있는) 복마저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신앙고백서는 7장 3절에서 이제 사람이 타락하였으므로 스스로는 행위 언약에 의해 약속된 생명을 받을 수가 없게 되었음을 말한다. 그러나 “은혜 언약 안에서, 주님께서는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생명과 구원을 값없이 제안”하셨음을 진술한다. 아담은 범죄함으로 행위 언약에 따른 약속된 생명을 받지 못 하였으며, 또한 타락하여 부패하였으므로 행위 언약 아래 약속된 생명을 율법의 순종을 통해 얻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은혜 언약 아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과 구원을 값없이 받을 수가 있게 되었다. 신앙고백서는 8장 ‘중보자 그리스도’ 5절에서 “주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모든 사람을 위하여, 화목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 속한 영원한 유산을 값을 치르고 사셨다.”고 진술함으로 아담이 행위 언약에 대하여 순종하였다면 받았을 약속된 생명이 바로 “하늘나라의 영원한 유산”임을 밝히 교훈한다. 그리스도에 의한 생명과 구원, 하늘나라에 속한 영원한 유산은 바로 신자가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 곧 죄를 범할 가능성이 없으며 죽음을 겪을 가능성이 없는 생명의 복이다. 바로 아담이 행위 언약에 순종하였더라면 받았을 상이며 복이다.

은혜 언약 아래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행위 언약

신앙고백서는 그리스도께서 아담에게 행위 언약 아래 약속된 생명을 신자에게 주실 수 있는 까닭은 바로 8장 5절(참조, 11장 3절)에서 보듯이, “완전한 순종, 그리고 그분 자신을 드린 희생제사로 말미암아 성부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히 만족”시킨 공로에 있다. 희생제사는 행위 언약에 따른 벌을 갚으셨음을, 그리고 완전한 순종은 행위 언약에 따른 요구의 완전한 성취로서 상의 권리를 세우셨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은혜 언약은 그리스도께서 아담이 실패한 행위 언약에 따른 조건을 완전히 성취하심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꺼이 율법 아래 나신 것은 행위 언약 아래 율법의 요구를 완전하게 성취하시기 위한 것이며, 그리하여 은혜 언약에 따라 영원한 생명을 신자에게 주시기 위한 것이다.

맺는 말

아담의 타락 이후 원죄 아래 있는 어떤 사람도 행위 언약으로 영생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께서 중보자로서 신자를 대신하여 행위 언약 아래 모든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심으로써 신자는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되며, 행위 언약에 따른 영생의 약속을 받을 권리를 받게 되었다. 요컨대 신자는 법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모든 순종으로 말미암아 영생의 권리를 누리며, 의롭게 된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또한 영생을 유업으로 받는다. 이러한 교리는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의 가르침이니, 이를 거절하면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거절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