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년 후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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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후 한국교회

시간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도 없고 현재에 오래 머물 수도 없고 미래를 선취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창조와 함께 시작된 시간은 영원이 물리적으로 구체화된 실재이다. 그래서 영원과 마찬가지로 시간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다스림 아래 놓여 있다. 특히 미래는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어 있고 성취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대체로 가려져 있다. 다만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따라 성경 계시를 통해 미래의 특정한 부분들을 보여주실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시대의 현상을 분별함으로써 앞날을 예측해볼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셨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20년 후에 한국교회가 어떤 상황을 맞이할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는 자연적인 감소로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인구 성장을 저해하는 주원인으로 꼽히는 저출산 또는 미출산 경향이 기독신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수용되어 교인수의 자연적인 감소를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신자를 전도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교회의 사명이다. 그런데 불신자 전도만큼이나 교회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사안은 아이 낳을 적령기에 있는 신자들에게 출산을 장려하는 것이다. 교회는 사회에 만연한 결혼과 출산 포비아(공포증)가 신자들을 옥죄지 못하도록 방책을 마련하고, 단순히 출산을 격려하는 것을 넘어 기독교 인구를 증가시킬 다산을 장려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자아내야 한다.

향후 기독교 인구의 감소는 목회자 공급에 직격탄을 날릴 것이 뻔하다. 지금처럼 신학교 지원자의 급감이 지속되면 우선 파트타임 사역자들을 구하지 못하는 난항은 더욱 가속화되고, 머지않아 전임사역자들을 부르는 일도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에 임박할 문제는 담임목사 청빙이다. 이미 설립된 교회의 수는 한동안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되는 반면에 목회자의 수는 꾸준히 줄어들어 한 목사가 여러 교회를 순회하듯 목회해야 할 상황이 벌어질 것이 예상된다. 이미 목회자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는 여러 나라의 실정이 우리에게도 현실로 다가오는 셈이다.

문제가 이쯤에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신학교 지원자의 급감은 숫자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것은 자세히 보면 질적 문제도 동반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지원자가 많던 시절에는 인품, 경건, 학력 등을 십분 고려하여 훌륭한 목회자 후보생을 가려 뽑았지만, 지금처럼 지원자가 급감한 상황에서는 이와 같은 기대가 사치로 보일 수도 있다. 선발의 숫자에 마지노선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은 결국 불량 목회자를 생산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이로 말미암아 벌써 무인가 신학교와 무자격 목회자의 병폐를 오랫동안 맛본 한국교회는 다시 쓰디쓴 열매를 먹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목회자는 불량이고 사역은 과도하다는 두 가지 문제가 겹친다. 수준 미달 목회자의 과도한 사역이 빚어내는 후유증의 증폭이다. 능력이 부족한 목회자가 여러 교회를 순회하다 보면 전적 돌봄이 결핍되어 교회와 성도에게 영적 나태가 심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목사 자신이 피로가 누적되어 목회도 부실해지고 설교도 부실해진다. 이런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 목회자는 최첨단 대화형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는 자구책을 모색할 것이다. 지금은 시작점에 있지만 앞으로 눈부시게 발전할 챗봇에 의존하여 목회자는 멋진 설교를 입수할 것이다. 어쩌면 20년 후에는 이런 모델이 웬만한 실력을 갖춘 설교자보다 더 완성도가 높은 설교를 제공해 줄지도 모른다.

그러면 교인들은 이런 설교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교인들은 손목에 아니면 손가락에 시계형 또는 반지형 감시 인공지능 단말기를 장착하고는 목사의 설교가 얼마나 챗봇에 의존하는지 검사하는 것을 일로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설교를 듣는 동안 검사 프로그램을 구동시키면 자동으로 설교의 인공지능 의존도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존도가 높게 판명될수록 목사에 대한 신뢰도는 땅에 떨어진다. 교인들은 구태여 목사의 설교를 들을 이유가 없어진다. 신자들은 스스로 자기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설교를 들려달라고 인공지능 모델에게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기술과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적응해 온 교회와 신자는 이런 방식에도 별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신자는 약해지고 교회는 위축되고 기독교는 쇠퇴한다. 이런 일이 20년 후에 벌어지리라고 예측한 것은 너무 멀리 잡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