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챗GPT 시대를 맞아_김원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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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시대를 맞아

김원광 목사(중계충성교회)

 

얼마 전에 챗GPT라는 새로운 검색 기능이 등장했다는 소식을 듣고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직접 접속을 해서 사용을 해 보았다. 그리고 엄청난 기능들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인공지능(AI)시대가 훌쩍 우리 곁에 와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처음에 챗GPT에 접속한 후, 시험적으로, 24개월 정도 된 손녀 딸 아이를 위한 동화를 만들어 보았다. 우리 손녀딸 아이는 아무 것이나 입에 넣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그 습관을 고치는데 도움이 될 동화를 만들어 달라고 챗GPT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불과 30초 정도 만에 A4용지 한 페이지 분량의 동화가 완성됐다. 내용은 백설공주가 독사과를 먹고 잠이 든 부분을 일부 채용한 것 같아 보였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 왕자가 모든 면에서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이나 입으로 먹어보는 습관이 있어서 부주의하게 독이 든 사과를 먹어서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고, 그 일로 아무 것이나 먹는 것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달아, 나쁜 습관을 고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동화를 딸아이에게 보내 주면서 아무 것이나 입에 넣는 손녀딸의 습관을 고치는 데 사용해 보라는 말을 해 주었다.

그 후로도 다양한 면에서 챗GPT를 시험해 보았다. 혹시 ‘설교도 작성할 수 있을까?’해서 설교문 작성을 명령해 보기도 했고, 성경의 내용에 관한 질문도 해 보았다. 처음에 다윗에 대해 아는 바를 말해 보라고 하니 조금은 우스운 대답이 나왔다. 성경의 다윗만이 아니라 소위 우리나라의 김다윗이나 이다윗과 같은 사람들의 이름까지 언급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성경의 다윗에 대해 아는 바를 정리해 보라고 좀 더 구체적인 명령어를 제시하자 훨씬 더 성경 속의 다윗에 대한 내용만을 제대로 정리해 알려 주었다.

이모저모 시험을 해 보면서 든 생각이 있었다. 우선 챗GPT로 정말 좋은 설교문을 작성한다는 것이 아직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챗GPT가 만든 설교문이 그냥 평범한 신학대학생이 리포트로 작성한 설교문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제법 잘 쓴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챗GPT는 잘 알려진 설교자들의 문체를 쉽게 모방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설교문을 빌리 그레함이나 스펄전의 문체로 바꾸어서 작성하라고 하면 금방 그렇게 문체를 바꾸어 작성하는 것이 가능했다.

정말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지금은 이렇게 문자 기반의 인공지능(AI)이 서비스 되고 있지만, 앞으로 얼마든지 음성 기반의 인공지능(AI) 서비스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마치 사람과 대화하듯, 인공지능과 대화할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세상에서 목회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선 아무리 챗GPT가 발전한다고 해도 한 개인에 관한 관심을 목회자처럼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챗GPT는 목회자들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알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의 삶을 바르게 이끌기 위해 아비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과 같은 일들을 결코 할 수가 없다. 또한 설교에서도 성도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을 살펴서 위로하고 격려하는 구체적이고 세밀한 일들을 결코 해 낼 수가 없다.

몇 차례 챗GPT를 사용하면서 느낀 것은 무미건조한 지식의 향연만 가득하다는 것이었다. 엄청난 지식의 향연이 펼쳐지지만 정작 내게 있어야 할 가장 핵심적인 대답은 얻기가 쉽지 않았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사람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며, 함께 아파하며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은 역시 사람밖에 없다.

챗GPT는 필요한 지식을 쉽게 얻을 수 있게 해 주는 요긴한 도구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을 들여 힘든 노력을 하지 않아도 인공지능(AI)이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쉽게 찾아줄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간단한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 얼마든지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들을 잘 활용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챗GPT의 한계와 여러 사용상의 편리성에도 불구하고, 챗GPT의 등장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 그것은 우리의 목회가 정말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기계적인 행위나 직업적인 행위가 되어 버린다면, 그 자리를 챗GPT가 대신하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닐 것이란 사실이다. 챗GPT의 등장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우리의 목회의 본질을 돌아보는 기회를 삼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