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과 하나님의 나라 15
김진수 교수(합신, 구약신학)
지난 글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레위인의 번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것은 신약의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의 지위를 얻을 일을 지시한다. 그리스도께서 수행하신 대제사장의 직분은 그분께 속한 백성에게 제사장의 지위를 제공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는 제사장의 삶을 산다(롬 12:1).
여기서 레위인과 제사장의 관계를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민수기는 레위인과 제사장의 직분을 따로 구분한다. 레위인은 제사장을 돕는 자들로서 하나님이 제사장에게 주신 선물이다(민 18:2, 6). 레위인은 제사장을 도와 성소에서 섬기는 일을 했지만, 성소의 기구와 제단에는 가까이하지 않아야 했다(민 18:3). 하지만 신명기나 여호수아 등 구약의 다른 곳에서는 레위인과 제사장의 구분을 허무는 듯한 기록이 나타난다. 가령 민수기는 레위인 가운데 고핫 자손이 여호와의 궤를 메도록 규정하는데 반해(민 4:1-20), 여호수아서는 레위 사람 제사장이 여호와의 궤를 메는 것으로 소개한다(수 3:3, 17; 18: 8:33). 이와 함께 “레위 사람 제사장”이란 칭호도 보기에 따라서는 레위인과 제사장의 구분을 허무는 것처럼 보인다. 학자들 사이에 특별히 논쟁의 대상이 되는 본문은 특별히 신명기 18:1이다. 이 구절에는 “레위 사람 제사장”(halewyyim hakkōhǎnîm)과 “레위의 온 지파”(kōl-šēbeṭ lewī)가 접속사 없이 연이어 나타난다.
에머톤(J. A. Emerton)은 두 단어로 구성된 두 어구가 접속사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두 표현은 동격(apposition)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레위인과 제사장의 구분은 사라진다. 레위인은 모두 제사장이다. 하지만 라이트(G. E. Wright)는 신명기 18:1의 “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에 대해 다른 이해를 보여 준다. 그는 “레위의 온 지파”가 “레위 사람 제사장”을 확장하는 “더 넓은 명칭”이라고 설명한다. “레위 사람 제사장”은 성소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에 봉사하는 “제단-성직자”(the altar-clergy)이며, 일반 “레위 사람”은 백성에게 생계를 의지하면서 토라를 가르치고 해석하는 역할을 했던 “고객”(clients)이었다. 압바(R. Abba)도 라이트의 견해를 따른다. 신명기 18:1의 접속사가 없는 구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실은 레위 온 지파”(The Levitical priests, indeed all the tribe of Levi)로 번역하고, 이 구절이 레위 지파와 제사장을 구분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압바에 의하면, 신명기 18:2-7이 제사장의 사례(謝禮)를 따로 언급함으로써 이 구분을 정당화한다. 궤를 메는 것과 관련하여, 압바는 일반적으로 레위인이 궤를 메었으나 특별한 경우(수 3:3; 8:33; 왕상 8:6 참조) 제사장이 궤를 메었다고 설명한다. 위의 설명 중 라이트와 압바의 것이 구약의 여러 증거를 고려한 균형 잡힌 설명이다.
하지만 “레위 사람 제사장”이란 표현에는 분명히 레위인과 제사장의 구분을 약화하는 측면이 있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제사장이 레위인에 속한다는 사실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레위인과 제사장이 같은 그룹에 속한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모세는 신명기 31장에서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9절)을 언급하는 가운데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25절)을 이야기한다. 이는 모세가 “레위 사람”과 “레위 자손 제사장들”을 동일시한다는 인상을 주기까지 한다. 여호수아 18:7 역시 이런 관점을 반영한다. 이 기록은 레위 사람에게 기업이 분배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이 그들의 기업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레위인과 제사장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이런 기록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마침내 모두 “왕 같은 제사장”이 될 구속사의 진행 방향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백성을 대신하여 직분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레 3:6-10, 8:19 참조). 그것은 적어도 지위나 신분에 있어서 백성과 레위인과 제사장 사이에 차별이 없음을 나타낸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하나이다.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제사장들의 나라”(mamleket kōhǎnîm)는 나라의 구성원이 모두 제사장의 신분을 갖는다는 것을 나타낸다(출 19:6).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인 또는 제사장의 개념은 레위인과 제사장의 규례를 제정한 모세 시대에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은 살렘 왕 멜기세덱에 관한 것이다. 창세기 14:18에서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소개된다. 이는 이미 족장시대부터 제사장이란 개념이 알려져 있었음을 의미한다. 시편 110:4에서 다윗은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 될 메시아-왕에 대해 예언하였으며, 예수님은 마태복음 22:43-45에서 이 예언이 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이것은 히브리서에서도 재확인된다(히 6:20). 히브리서는 멜기세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히 7:3). 이 설명은 일종의 비유이다. 창세기 14장에서 멜기세덱은 갑자기 등장하였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그의 부모, 그의 출생과 죽음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란 칭호를 가진 인물을 소개하는 방식으로는 너무나 이례적이다. 창세기는 중요한 인물을 소개할 때 언제나 족보를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멜기세덱은 성경 독자에게 더욱 특별한 인물로 다가온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는]” 인물인 것처럼 보인다. 히브리서는 이런 사실에 기초하여 멜기세덱과 예수 그리스도를 연결한다. 히브리서의 관점에서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지시하는 예표이자 그림자다.
아무튼, 제사장이란 개념은 구약 이스라엘 나라가 형성되기 훨씬 이전인 족장 시대에도 있었다. 어떤 면에서 족장들 스스로가 제사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해온 이후 적어도 네 차례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다(창 12:7, 8; 13:18; 22:9). 이삭과 야곱도 각각 한차례와 두 차례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다(창 26:25; 33:20; 35:7). 물론 족장들이 제단을 쌓은 이유가 여호와께 제사하기 위한 것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본문은 그것을 자세히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여호와께 제단을 쌓는다든지,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든지, 제단을 하나님과 관련된 이름으로 부르는 등의 행위는 그것이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의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을 나타내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여호와께 제물로 바치기 위해 제단을 쌓은 것은 많은 내용을 함의한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제사장의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하여 독자를 제물로 바치고 이삭이 아버지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여 제물이 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여 자신을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대제사장이 되실 일을 지시한다.
제사장에 대한 논의는 여기서 멈출 수 없는 일이다. 이스라엘에서 족장들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는 제사장 개념은 사실상 창조에서 출발한다. 창세기 2장에서 저자가 아담을 소개하는 방식은 그가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의 원형이었음을 알려준다. 여러 가지를 예로 들 수 있겠지만, 이곳에서는 두 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창세기 2:15에서 여호와께서 아담을 에덴에 두시는 행위를 묘사하는 동사(hēnnîaḥ)는 여호와 앞/성소에 무언가를 두거나 바치는 행위를 묘사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출 16:33-34; 레 16:23; 민 17:4[19]; 신 26:4, 10; 대하 4:8). 다음으로,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해야 할 일을 묘사하는 두 동사(‘ābad, šāmar)는 성소에서 섬기는 레위인과 제사장의 임무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민 3:7-8; 8:26; 18:2-7). 이는 아담이 에덴의 동산에서 한 일이 레위인 제사장이 성소에서 한 일과 같은 성격의 것임을 나타낸다. 물론, 아담이 해야 했던 일은 동산의 땅을 경작하고 지키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육체적 노동의 차원에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일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다. 그러기에 아담이 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는 일을 표현하는 동사가 레위인 제사장이 성소에서 섬기고 지키는 일을 묘사하는 동사와 같다는 것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항임에 틀림이 없다.
결론적으로, 아담은 처음부터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으로 창조되었다. 족장들과 이스라엘 민족은 아담의 역할을 이어받아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과 제사장들의 나라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이 가르치는 제사장 직분을 완성하는 분으로 오신 참 이스라엘이요 마지막 아담이시다. 신약의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호와만을 섬기는 제사장의 지위와 명예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