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끌리는 신앙과 내달리는 신앙_남웅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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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끌리는 신앙과 내달리는 신앙

남웅기 목사(바로선 교회, 본보 논설위원)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써 그 겸손함을 드러낼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 부탁함으로써 그 의지함을 나타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어야만 한다.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변함없는 것이며, 닮아가는 것이며, 그를 위하여 나 자신을 던져 내며, 그에게 한 약속을 책임지는 힘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자녀 된 성도에게 바라는 것은 또 다른 데 있다. 그건 바로 남들이 할 수 없는 그 무엇과의 구별됨이다. 절대자 신을 두려워하며 그 앞에서 겸손해지거나.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찾거나 매달리는 건, 불신자들도 할 줄 아는 일이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고 헌금하는 건, 전능자 하나님 앞에서의 그 겸손함의 고백일 따름이다. 긴급한 위험이나 절박한 사태나 절호의 기회를 앞두고 특별히 간구하는 것도, 하나님을 찾는 그 의지의 하나라 하겠다.

그러나 그것으로만 내 믿음을 증명할 수는 없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표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어야만 한다. 그 징표란 예컨대 기독 신앙과 섬김에 흔들림이 없어야 하고, 하나님과 믿음의 선배를 닮아가야만 한다. 또한, 그의 나라와 그 의를 드러내는 일에 아낌이나 두려움이 없어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행한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함과 의지함은 필요 없다는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겸손함과 의지함이 없이는 그 사랑은 결코 꽃피울 수 없으며, 그 사랑이 없으면 그 겸손함과 의지함을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겸손함과 의지함이 그 사랑을 꽃피울 필요조건이라면, 사랑은 마침내 열매 맺을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참된 신앙은 이끌림에서 비롯되고 내달림으로써 비로소 증명되는 것 같다. 이끌림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필수조건이다. 이끌림은 소명(하나님의 부르심)이고, 주님의 음성이고, 성령의 감동이고, 마음의 깨달음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신앙생활이 시작되는 건 아니다. 신앙의 표현은 이끌림을 넘어 내 쪽에서 만들어 내는 구체적인 반응을 말한다. 그게 곧 내달림이다. 성경을 구입하여 읽어 본다든지, 교회를 찾아 예배에 참석한다든지 하게 된다. 다만 교회 질서와 규례를 따르는 것만으론 결코 내달리는 신앙인이라 할 수 없다. 다만 이끌림을 받은 사람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내달리는 모습을 통해 영광 받으시고. 또한 성경(고전 9:24)도 우리에게 신앙생활의 경주를 촉구한다. 그 내달림의 원동력은 곧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 되신다’는 믿음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이끌림만이 아닌 내달림으로 증명된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내달리지 않는다면, 그건 목회자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것은 자기 판단과 선택과 결단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점은 성도 중에 다만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하나님께 간구하는 열정만으로 그치는 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그건 믿음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다. 믿음은 내 사랑의 증명이요. 내달림의 표현이다. 믿음의 증명은 구원을 얻는 일이요 십자가의 길이다. 성도에게 있어 내달림의 신앙이 귀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만 이끌림의 표현만으로 자신의 믿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이들이 생각밖에 많다는 게 목회 경험의 아픈 대목이다. 그러므로 ‘행함이 없으면 무엇으로 그 믿음을 증명하겠느냐?’는 말씀(약 2;14)은 곱씹어 볼 만하다. 성경(잠 3:1)은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정한 때를 놓치는 안타까운 이들이 많다. 거기엔 고통과 손실과 그에 걸맞은 벌칙까지 따르기 마련이다.

우리는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저마다 변비의 고통. 불면증의 고통을 경험한다. 그때를 놓치거나 어김에 대한 대가 지불은 혹독하기 이를 데 없다. 하물며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기회를 놓치거나,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고의로 주께서 주신 기회를 날려버린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심하겠는가? 또한 하나님이 주신 그 벌칙은 또 얼마나 두렵겠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소름이 돋는다.

여기서 고의로 날려버린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 함은 회개의 기회를 말한다. 즉 회개란 돌이킴의 기회, 쓰임 받을 기회, 십자가를 질 기회를 살려내는 것을 말한다. 돌이키고 쓰임 받고 십자가를 진다 함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사랑이다.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쓰임 받아야 하는데 죽음에 이르기까지 감당해야 한다. 그것이 곧 신앙의 동력이며. 내달림의 삶이다. 그냥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이끌림의 신앙만으로 자족해선 안 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도라면, 그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와, 그 때를 살려 내는 회개와,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