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신학교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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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는 지금

신학교는 지금 한 모퉁이만 더 돌아서면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을 칠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교단 목회자를 양성하는 여러 신학대학원들이 수년 전부터 정원 미달 사태를 빚더니, 급기야 작년에는 단 하나의 신대원을 빼고는 모두 미달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 학교마저도 가까스로 미달을 벗어난 상황이라 이런 추세에 제동이 걸리지 않을 경우, 올해 말 치러질 2024년도 입학 정원이 충족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더욱 우려되는 문제는 미달사태 그 자체가 아니라 신학교의 문을 두드리는 지원자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신학교 지원자가 급격하게 감소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회학적 이유가 피부에 가장 먼저 와 닿는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인구감소가 본질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 신학교에 적령인 사람들이 출생하던 시기쯤부터 저출산 풍조가 고급 사회인임을 말해주는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였고, 그것도 모자라 시간이 흐르면서 아예 미출산이 사회 전반에 흔들리지 않는 요새처럼 자리를 잡아버렸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인구의 저수지가 자연스레 마르고, 교회에서는 아동과 청년의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신학교를 지원하는 재원이 덩달아 고갈된 것이다.

그러나 신학교의 위기를 이렇게 물리적인 이유에서만 찾는 것은 뭔가 석연치 않은 듯이 보인다. 더 깊은 차원에서 보면 이 위기는 영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학교 지원자의 감소가 교회의 위상 추락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세상사의 시비에 과도하게 말려들어 불필요한 구설수에 오르내리거나, 서로 물고 뜯고 치고 박고 싸우며 법정 고소를 일삼는 추태는 세상이 볼 때 비웃음과 손가락질을 받을 정도로 달갑지 않지만, 교회 안의 젊은이들이 볼 때도 혐오스럽기 짝이 없다. 이런 흉한 모습은 젊은이들에게 교회를 떠날 빌미를 제공하고, 혹시 교회에 남아 있더라도 비활동적인 신자로 전락하여 목회자가 될 꿈같은 것은 절대로 품지 않는다.

교회가 스스로 목회자의 수급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목회자의 위상이 실추된 것도 신학교 위기의 심각한 원인임에 틀림없다. 슬픈 일이지만, 교회는 목사를 존경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목사가 목회지에 빨리 적응을 하지 못하거나 능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면 교회는 쉽게 존경의 마음을 접는다. 목회자도 교회와 함께 성장하는 법인데, 교회가 목회자의 성장을 기다리지 못한다. 때로는 신임투표라는 명목으로 목회자의 임기를 제한하고 사역을 정지시킨다. 목회자의 길을 가려는 마음을 품었던 사람이라도 교회가 목회자를 폄하하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 그 마음이 산산이 부서져간다.

교회는 훌륭한 목회자가 없다고 한탄하지만, 정작 교회가 그런 현상을 빚어내는 주요 원인 제공자라는 사실을 인식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교회에서 더 이상 신학교 진학을 권유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전에는 설교, 성경 공부, 심방, 상담, 대화 중에 믿음과 인품을 갖춘 훌륭한 청소년이나 젊은이를 보면 신학을 하라고 권유하는 일이 많았다. 강력한 도전을 받은 청소년들은 목회자와 선교사가 될 꿈을 꾸었고, 진지한 권유를 받은 젊은이들은 유망한 진로와 선망의 직업을 내려놓고 신학교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지금 교회는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우대하고 광고해 줄 뿐이다. 따라서 젊은이를 신학교가 아닌 다른 데로 빼앗기는 것이다.

신자는 소중한 자식을 목회자로 내 놓기를 기도하고, 교회는 아까운 청년에게 목회자의 길을 제시하며, 교단은 디모데를 발굴하는 작업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신학교는 지원자가 찾아오기를 안일하게 기다리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발 벗고 나서서 교회를 향해 진솔하게 신학교의 위기를 알리고 대대적인 협조를 의뢰하며, 청소년 집회이든 젊은이 집회든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미래 교회를 책임질 목회자가 필요하다고 외쳐야 한다.

신학교는 지원자들을 끌어당길 방법을 다각적으로 마련하고 다방면의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신학교의 제도와 교육방식은 물론이고 교수진의 태도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부족한 사람도 배척받지 않고 결국은 충실한 목회자로 양육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 신학교는 기독교가 영적 문제를 극복할 때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번 기차는 놓쳤지만, 다음 기차까지 놓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