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로 바라보는 세상 <20>| 보물 상자_전정식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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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상자

< 전정식 장로, 남포교회 >

“세상적 가치관 버리고 예수님 중심의 장성한 믿음의 사람 되길”

 

가을이 시작되면 아이고 어른이고 간에 독감 예방접종을 합니다. 그 덕분에 진료실은 아주 부산합니다.

그런 주간 어느 날에 세 살 된 귀여운 남자아이가 엄마 손에 이끌리어 진료실에 들어옵니다. 그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고, 작은 손에는 작지도 않은 상자가 들려져 있습니다.

아이는 주사 맞는 것을 두려워하였으나 진찰할 때에는 그래도 협조적입니다. 아이를 안정시키려 일부러 말을 건넬 때 대답도 잘합니다. 상자 안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미니카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엄마 말에 의하면 아이가 외출을 할 때나, 심지어 잘 때조차도 미니카들을 떼어 놓으려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이가 태어나 두 살 가까이 되면 부모와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해 지고 또 사회성도 생기게 됩니다. 그런 과정 중에 엄마, 아빠, 가족 외에도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됩니다. 이때 가족이외의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데다 또 엄마와 떨어져야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불안을 느껴 떼를 쓰거나 또는 특정한 물건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런 물건들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거나 또는 아기 때 쓰던 물건일 경우도 있는데 보통 인형이나 장난감, 때로는 담요 등이 있습니다. 이런 애착 대상은 어른들에게는 가치 없는 물건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불안을 해소하는 좋은 방편이 됩니다. 이런 증상은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치료의 대상은 아닙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이들이 특정한 물건에 집착하는 모습과 유사한 행동이 병적인 불안장애에 빠진 어른에서도 발견되는데, 거의 쓸모없이 보이는 낡고 가치 없는 물건들에 집착하는 강박적 수집행동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치료의 대상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 진료실에서 본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과 그리고 교회생활에서 많은 초신자들의 신앙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사실 중 한 가지는 ‘어쩌면 그렇게도 믿음의 성장 과정이 어린아이의 성장과 유사한 점이 많은지’ 하는 점입니다. 또 저도 예외는 아니어서 신앙의 자라는 과정이 남들과 똑같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 처음 믿음을 갖거나 모태신앙으로 자라다가 커서 자기의지로 믿음을 갖게 되면 누구나 열심히 교회생활을 합니다. 저도 언젠가부터 성경공부도 부지런히 하고 봉사활동도 적극 참가하게 되었고 또 때가 되어 교회 직분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직분을 맡게 된 이후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잘해야 된다는 부담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회 속에서 열심히 살던 저로서는 아직도 말하고, 생각하고, 깨닫는 것에 이 세상의 가치관이 큰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회 앞에서도 역할이 있으며 믿음도 중요하지만 가시적인 열매를 맺는 행위도 있어야하고 또 교회 지도자일수록 높은 윤리기준을 가져야한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교회 안에는 문제투성입니다. 또 그런 마음으로 교회의 모임에서 거침없이 옳은 말을 아끼지 않다보면 회의가 경직되고 서로 보기가 민망한 지경에도 이르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한해를 보내며, 지난 일 년 동안의 교회생활을 되돌아 볼 때, 어쩌면 저는 장성한 어른이 되어서도 아직 믿음의 수준이 어린아이와 같아 세상초등학문의 가치기준을 보물 상자처럼 붙잡고 세상학문의 기준으로 믿음을 말하고 생각하고 깨달았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니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새해에는 장성한 어른이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듯이 세상의 가치관을 과감히 버리고, 장성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 나의 말하고 생각하고 깨닫는 것의 중심에 예수님이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