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새기는 신년 설교] 새해 새 사람_박윤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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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새 사람

 

박윤선 목사(1905~1988, 합신 초대 총장)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땅 위에서 주인공이다. 그가 선하면 만물도 선해진다. 그러나 그가 악하면 만물도 추악해진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더러 만물을 다스리게 하신 까닭이다.(창 1:28)
우리는 사람이 악하므로 만물이 추악해지는 것을 원통히 여긴다. 그러나 그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는 것을 슬퍼한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는 세계는 무엇보다 보기 싫고 불행하며 비참한 것이다. 우리는 여러 천년 죄악으로 낡아진 인생이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 보기 싫은 인생이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그 오랜 세월 동안 그 복잡한 죄악 세력의 와중에서도 인생이 아주 마귀화 되지는 않았다는 사실과, 아주 금수화 하지는 않은 사실이다. 그것은 기적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반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며 그것으로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오지 못한다.
그러므로 구주님이 오시어 구원 운동의 역사 곧 인생을 새롭게 하는 수천 년 역사를 이루셨다. 이제 새로운 인생이 되려면 성경적으로 다음 몇 가지를 기억해야 된다.

1. 새 사람이 되려면 옛 것을 버린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라”라고 하였다(빌 3:13-14). 우리는 뒤에 있는 것을 기억하다가 전진하지 못한다.

(1) 뒤에 있는 것, 곧 과거의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과거에 우리가 주 안에서 잘한 것일 수 있다. 우리가 과거에 잘한 것을 기억하면 그 결과는 교만, 태만 등을 가져올 것뿐이다.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그것은 현재를 과거로 꾸며 보려는 헛된 꿈에 빠지게 한다. 현재는, 또 다시 현재가 요구하는 새로운 움직임으로만 그 빛을 발한다. 신진대사는 생리적 원리이지만 역시 영적진리라고 할 수 있다. 어제 날의 신앙으로 오늘 살 수 없고, 오늘은 또 다시 새힘 있는 신앙이 요구된다.

(2) 우리 뒤에 있는 것은 우리가 잘못한 것들일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잘못한 것을 한동안 기억하며 그것에 대하여 죄책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늘 죄책만 느끼고 전진이 없어도 안 된다. 실재에서 떠나서 성공의 길을 가는 것만이 실패자의 할 일이다. 그러므로 격언에도 말하기를 “실패는 성공에 이르는 돌다리”라고 한다. (Failure is a steping stone to success)라고 하였다. 과거의 실패를 무관심하게 여기고 회개하지 않음도 병통이지만, 그 실패로 인하여 늘 상심만 하고 낙심하는 것도 잘못이다. 실망과 낙심은 죄인구원을 위한 기독교의 금물이다. 기독교는 의인을 부르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그 어떤 잘하였다는 것이라도 기독교의 밑천을 이루지 못한다. 누구든지 기독교의 복음에 인간의 무엇을 가하면 그것은 복음을 무시하는 행동인 것이다.

우리는 남들의 과거 허물도 기억하지 말아야 한다. 남들이 내 허물을 잊어 버려주기 원하는 나로서 남들의 허물을 기억할 수 있을까? 우리 인생들은 악하여 남들의 은혜는 잊어버리기 잘하고, 남들의 허물은 기억한다. 그것은 무자비한 일이고 또 불공평한 일이다.

2. 새 사람이 되려면 적극적으로 회개하여 새로워져야 됨

신자가 새로워져야 할 필요에 대하여 성경이 많이 말하고 있다.

(1) 독수리처럼 새로워지자.
시 103:5에 말하기를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하였다.
독수리는 오래 사는 짐승이고 해마다 털을 갈아 고와지며 젊은 원기를 새롭게 가진다고 한다. 신자도 늘 낡은 것으로 세월 보내지 말고 시절을 따라 열매를 맺는 나무처럼(시1:3) 시대를 극복하고 또 앞서 나아가는, 새로워지는, 생명의 충만에서 살아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새롭게” 하는 은혜로 되는 것인데 인간 편에서는 회개의 행위로 나타난다.

(2) 옷을 갈아입듯이 새로워지자
엡4:22-24에 말하기를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철저한 회개를 가르치는 비유다. 죄를 회개할 때 얼마쯤만 고치고 얼마쯤은 남겨 두면 그것이 불원(不遠)한 장래에 화근이 된다. 죄는 죽은 물건이 아니고 살아서 움직이는 듯이 그 세력이 누룩처럼 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자는 낡은 옷을 벗어 버리듯이 죄를 근절시켜야 된다.

3. 새 사람이 되려면 최후의 각오가 있어야 됨

어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삼년을 와서 열매를 구하였으나 열매를 얻지 못하였다.(눅13:6-9) 그 때 그가 그 나무를 찍으려 하니 과원지기가 말하기를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눅 13:8-9)

이것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열매 맺도록 최후의 운동을 일으킨 데 대한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본분이다. 우리가 열매를 맺으면이어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지면에서 멸절되어 마땅하다. 이런 중대한 책임감에서 우리는 최후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즉 우리가 금년에는 열매 있는 신자들이 되기를 최후적으로 결단해야 된다. 앞으로는 또다시 새해가 없고 금년뿐일 듯이 생각하고 최후의 결심으로 회개 운동을 일으키되 자신에게서 일으켜야 한다. 금년밖에는 회개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1957년 ‘파수군’에서)

‘파수군(把守軍)’은 1949년 고려신학교가 교지를 창간하면서 붙인 이름인데 이후 개혁주의 신학지로 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