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울려 퍼지는 풍금소리 2
박병화 목사(부천 상동21세기 교회 증경총회장)
오구라다이 그리스도교회에서
11월 29일(화)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한 주간을 일본에서 보내야하기에 틈틈이 주일설교를 준비했다. 아침식사는 호텔 1층에 있는 식당에서 했다. 먼저 메인 음식을 입구에서 선택해야 했다. 고기를 선택할 것인가? 송어를 선택할 것인가? 계란을 선택할 것인가? 메인 음식을 선택하고 나서 나머지는 각자가 갖다가 먹는 뷔페 스타일의 아침 식사를 맛있게 했다.
아침 식사 후에 우리는 박성주 선교사님이 시무하는 오구라다이 그리스도교회로 향하였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치바(Chiba)시에서 나리타공항까지는 꽤나 멀었다. 서울에서 인천공항까지의 거리에 두 배나 되었다. 치바(Chiba)시는 어느 도시보다도 작은 도시이지만 면적은 토쿄의 두 배가 되는 넒은 지역이었다.
오구라다이교회는 교회 단독 건물이었다. 그리고 일본교회는 추수감사절을 따로 지키지 않는다고 들었다. 우리는 예배당 안에서 찬송가 369장 ‘죄짐 맡은 우리 구주”를 불렀다. 일본에서는 장례식장에서나 결혼식장에서나 이 찬송가를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결혼식은 예배당에서, 생활은 신사와 함께, 그리고 죽으면 절간에 가서 장례를 치른다는 것이었다.
2018년 가을, 일본장로교회와 합신 교단 사이에 선교협력 MOU가 체결되었다. 당시 총회장으로 교단을 섬기고 있던 홍동필 목사님이 문서에 서명을 하였다. 현재 일본장로교회에 소속된 합신교단 출신의 목사는 김용민 선교사, 허태성 선교사, 박성주 선교사, 임태교 선교사 4명인데 이들은 모두 일본인교회를 맡아서 담임목회를 하고 있다. 이런 선교사님들이 워낙 신실하게 성경적인 개혁주의 신학을 가지고 목회를 잘하고 있기에 일본장로교회 안에서도 우리 합신교단과 목회자들을 인정하며 신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장로교회는 전체 교회 수가 68 교회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우리 교단 4분의 선교사를 위시하여 모두 10명의 선교사들이 일본장로교회의 멤버십을 가지고 있다하니 일본교회가 얼마나 열악하고 한국선교사님들이 얼마나 일본선교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잘 알 수가 있다. 한국목회자들이 일본인교회에서 담임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그들은 마음 문을 잘 열지 않는다고 들었다. 아마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성도들도 담임목회자가 외국인이라면 마음 문을 쉽게 열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인 성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5년 10년이 지나면서 신실한 목회자, 성경적인 목회자, 삶이 뒷받침되는 목회자인 것을 확인하고 나서는 점차로 마음 문을 연다고 한다. 일본도 한국처럼 신학교에 가는 젊은이들이 자꾸 적어지고 목회자도 점점 줄어들어 8,000개의 교회 중에 약 1,000교회가 목회자가 없는 ’무목교회‘로 방치되어 있는 상황이다.
박성주 선교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는 45년 되었다. 그리고 예배당 건물은 건축한지 30년이 되었다. 미국인 선교사가 미국에서 자재를 들여와 건축한 예배당이라고 한다. 박성주 선교사님은 이 교회의 5대 목사이다. 개척한 분은 장로님이시다.
그리고 1대 목사님은 신학교 음악학 교수로 10년 사역을 하셨다고 했다. 박선교사님은 2018년 4월에 이 교회에 청빙을 받아 지금까지 사역을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일본에서 26년 동안 사역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박성주선교사님은 동경에서 10년 동안 일본인 교회에 시무하다가 이곳에 오신지 5년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출석하는 교인들은 25명인데, 장로님은 두 분이다. 일본에서는 50명이 되면 대형교회에 속한다. 이 교회가 개척할 때는 30-40대 교회 멤버들이 주축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은 평균연령이 70대이고 최고령자는 95세이다.
우리는 본당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통성기도를 하였다. 일본교회는 예배를 드릴 때 많은 교회가 풍금으로 찬송가 반주를 한다고 한다. 박성주 선교사님은 서울 화평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할 때 안만수 목사님의 권면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은 일본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1층 주일학교실로 와서 간식을 나누며 박성주 선교사님 내외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일본 사람들은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이 말을 하면 끝까지 듣는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인 교회는 예배시간에 풍금으로 찬송가 반주를 한다.
그리고 일본인 집 대부분을 보면 벽이 없다. 유리로 되어있다. 그리고 바람이 불면 겉문을 닫는다. 그리로 일본 사람들은 저녁에 들어오면 겉문을 닫는 소리로 집안 식구들이 퇴근했구나, 외출에서 돌아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 사람들은 퇴근을 하면 커튼을 친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 가정이고, 당신들은 당신 가정이라고 생각하는 일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다른 가정에 그 어떤 피해도 그 어떤 불편함도 주지 않는 것은 물론 본인들도 결코 다른 사람들로부터 다른 가정으로부터 공개되고 소통하는 것을 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삶 그 자체이다.
일본식 주택인 박성주 선교사님의 사택은 난방이 없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집은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물을 내리면 변기 물받이에 수도꼭지에서 물이 내려오듯이 내려온다. 그것은 손을 닦으라는 동시에 물을 받는 것이기에 이중으로 유익하다. 일본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깨끗하다, 작다. 친절하다’고 말할 수가 있다. 일본도 4계절이 있다. 동경은 부산과 같다. 겨울 온도는 2도~10도이다.
김용민 선교사님과 사역 이야기를 나누면서 들은 이야기이다. 교회에 3년 동안 잘 나오던 자매가 있었는데 선교사님이 그 자매에게 “이제 세례를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권면을 하니까 교회를 떠났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절대로 이웃을 집으로 초대하지 않는다고 한다. 집으로 초대하면 그것은 아주 절대적으로 한 식구인양 여기는 관계라고 한다. 그리고 집으로 초대받아 가면 절대로 그 집의 방문을 함부로 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집이 작다가 보니 아무래도 집안에 많은 물건으로 인하여 집안이 정리정돈이 되지 않아서 깨끗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도하려고 이웃에 사는 분을 10여 년간 온 정성과 힘을 다하여 집으로 초대하기도 하고 한 식구처럼 여겨 주었는데 자기는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얼마나 지치고 포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영혼을 성급히 구원을 시키려고 했다가는 그들이 교회와 선교사님을 떠나기에 일본선교는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연금으로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어서 서민들은 죽을 때까지 돈을 벌어야 먹고 살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은행 이자가 없는 제로 금리가 되어, 돈을 집에다 보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많다는 것이다.
김용민 선교사님은 일본인 교회의 선교사로 소원을 하다가 가정에서 개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분이 100만 엔을 가져왔고, 또 한 분이 50만 엔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차가 꼭 필요했는데 차를 주시기에, 아 하나님이 개입하시는구나! 이제 교회가 되려고 하는구나! 하며 큰 기대를 가졌는데 모든 것이 올 스톱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광야생활이 시작이 된 것이었다. 이때 회의가 몰려왔지만, 오히려 이때부터 영혼이 귀함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한 영혼이 얼마나 귀한가? 다른 한인교회나 일본인교회의 청빙이 와도 떠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박성주 선교사님 가정과 교회를 방문한 후에 나리타공항 제3터미널로 가서 짐을 붙이고 우동으로 식사를 하였다. 역시 일본우동이었다. 면과 국물이 일품이었다. 김만형 총회장님이 일본에 온 첫 산을 넘었다고 해서 무슨 말인가 했더니 일본에 와서 우동을 먹는 것이 이제 드디어 해결이 되었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1시간 40분의 비행 끝에 허태성 선교사님이 사역하는 카가와현의 타가마스공항에 도착했다. 허태성 선교사님 내외가 반갑게 영접해 주었다. 그런데 몸만 오신 것이 아니라 이곳의 명물인 두부로 만든 도넛을 사오셨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그리고 음료수도 한 병씩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 지역은 우동이 유명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우동을 사먹는 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해서 당뇨병 환자가 많다는 것이다.
허태성 선교사님이 사역하는 시코쿠라는 지역은 제주도의 거의 10배가 되는 큰 섬으로서 카가와현, 에히메현, 토쿠시마현, 고치현 4개의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 허태성 선교사님이 살고있는 카가와현 만노초(町)는 16,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교회는 일본장로교회에 속한 만노그리스도교회 단 한 개뿐이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교회가 소중한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 호텔은 방 하나에 얼마가 아니라 투숙객 수대로 숙박비가 계산된다고 한다. 예를 들면, 방 하나에 두 사람이 들어가면 1인당 75,000원씩 해서 150,000원을 지불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천공항에서 타카마스 공항까지 오가는 비행기가 그동안 코로나로 중단되었다가 11월 23일부터 다시 운항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천에서 1시간 30분만 비행하면 이곳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항에서 대형운전 면허를 가지고 계신 박성주 선교사님이 렌트한 큰 차를 타고 허태성 선교사님의 차를 따라서 우리는 호텔로 가서 체크인을 하고 근처 일본식 전통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부슬비가 내리는 바닷가를 걸었다. 또 알게 된 것은 일본에서는 100 볼트용 전기콘덴서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부득불 호텔에서, 박성주 선교사님이 주신 것으로 휴대폰을 충전하였다. 얼마나 피곤하던지 씻지도 못하고 일본에서의 둘째 날 밤에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