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송년의 길목] 목사의 강_김수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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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강

김수환 목사(새사람교회)

 

우리가 속한 교파를 ‘대한예수교 장로회’라고 부른다. 줄여서 보통 ‘예장’이라고 한다. 여기 ‘장로회’라는 말은 교회의 정치체제가 장로들의 모임인 ‘장로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의 장로란, 통칭 장로만이 아니라, 치리와 가르침을 겸한 목사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임을 소위 ‘당회’라고 부르고 있다. 1년에 한 번씩 모이는 총회도 확대된 당회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장로교회란, 정치체제뿐만이 아니라, 교회의 중요한 정책들이 이 모임(장로회=당회)에서 결정된다. 그러기에 장로회(당회)는 우리 몸의 심장과 같은 곳이며, 교회 전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즉 당회가 은혜롭고 평안하면 교회 전체가 평안하고, 당회가 서로 불화하고 갈등이 생기면 교회 전체가 화평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교회는 침체되고 부흥과 성장도 함께 멈추고 마는 것이다.

집안에서 엄마 아빠가 늘 다투고 싸우면 아무리 좋은 학원을 보내고 비싼 교육을 시켜도 훌륭한 자녀로 자라날 수 없기에 최고의 자녀 교육은 역시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한다. 교회의 목사와 장로를 가정의 엄마 아빠로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당회의 어떠함이 곧바로 교회의 어떠함으로 나타나는 원리는 동일하다. 그만큼 우리 장로교회에서의 당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딤전 5:17에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 할 것이니라”는 말씀이 있다. 장로들을 배로 존경해야 하며, 치리와 가르침을 겸한 목사는 그 이상으로 존경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목양을 받는 교인들의 자세와 태도에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지만, 장로들은 이 말씀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평신도로 신앙생활 하다가 장로로 임직을 받고 당회원으로서 교회를 섬기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 들로 자칫 목회자에 대한 존경이 흐려지는 경우들이 생긴다. 그러면 목사의 설교가 귀에 잘 안 들리고, 목회자에 대한 불만이 하나둘, 쌓여간다. 이미 시험의 1단계에 진입한 셈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불만은 여과 없이 당회에서 표출되고, 평화롭던 당회의 벽은 틈이 생긴다. 그러면 불화의 씨앗은 발화되어 삽시간에 교회 전체에 퍼지게 된다.

 목사가 자신의 권위와 존경을 생명 다음으로 지켜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요, 나아가 실망할 인간적 요소를 가진 유한한 목사를 여전히 존경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할 장로의 겸허한 자세가 요청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사물과 사람에겐 그만의 고유한 자리가 있다. 아무리 귀하고 유능해도 자리를 이탈하는 순간, 그 가치는 상실되고 만다. 즉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이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소중한 것이지만, 만일 그 밥알들이 그릇에 있지 않고 땅바닥에 떨어져 있다면, 귀한 만큼 추해지는 것이다.

우리 가정에도 부모의 자리가 있고, 자녀의 자리가 있다. 남편의 자리가 있고 아내의 자리가 있는 것이다. 자식이 아무리 유능해도 부모의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고, 아내가 아무리 훌륭해도 남편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교회에도 마땅히 목사의 자리가 있고 장로의 자리가 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걸맞는 역할과 기능이 주어지기에 목사가 자기의 자리를 소홀히 여겨서도 안 되지만, 장로 또한 자기 자리를 이탈해서도 안 된다. 목사는 목사대로 장로는 장로대로 그 자리의 고유한 역할과 한계를 인식하고 자리를 잘 지켜야 한다. 결코 목사와 장로와의 관계를 1:1이라는 획일적인 문제로 단순화 시켜서는 않된다.

남편과 아내가 인격적인 면에서는 동등하지만, 책임과 대표성이라는 질서의 차원에서 서로 다르듯이 목사와 장로에게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목사는 대학 졸업 후, 3년간의 신학 전문 과정을 마치고, 강도사 인허와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사역을 하게 된다. 그 이후에도 쉬지 않고 매일 설교와 성경을 연구한다. 아니, 1년 365일 매 순간 교회와 교인들, 그리고 영적인 일들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목회자만큼 교회와 영적인 일들을 깊고 넓고, 높게 보는 사람들이 없다. 거기에 세속적인 직업을 갖고 생업에 종사하는 장로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것이요, 사도께서 목사를 배 이상으로 존경하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그 차이와 한계를 겸허히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자녀를 직접 낳아보지 않고서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목사가 되어목회를 해보지 않고서는 목사를 이해할 수 없다. 목사에겐 장로들이 건널 수 없는 목사의 강이 있다.

 창 3:9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을 향해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다. 우리 인간의 최초의 불행은 자신의 본분을 잊고 피조물의 자리를 이탈하면서 시작되었다. 당회는 교회의 심장과 같다. 당회가 평화로우면 온 교회가 평화롭고, 당회가 불화하면 온 교회가 불화하다.

교회마다 연말 당회가 열릴 것이요, 1년 내내 교회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당회로 모여서 모든 일을 의논하고 결정할 것이다. 당회실 문 앞에 설 때마다, 아니 목회자의 인간적인 모습이 자꾸 어른거리고, 존경심이 사라져 목사의 설교가 귀에 잘 안 들릴 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여호와께서 물으셨던 것처럼 “김(박) 장로, 네가 어디 있느냐?”고 자문해 보시라. 평생 화목한 당회가 될 것이요, 은혜로운 교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