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편지] 연필 깎기_박부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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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깎기

가끔은 부러 연필을 쓴다. 예전엔 다들 목공예가처럼 문구용 칼을 잡고 엄지로 밀어대며 길이를 가늠해 정성껏 깎았다. 어떤 이에겐 서툴러 애태우는 작업이었지만 심지가 정돈될 때까지 목향 속에서 조심스레 연필을 깎는 일은 나름 즐거웠다.

언젠가부터 편리한 연필깎이 통이 나와 끼워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원하는 대로 가늘고 맵시 있게 깎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 맛에 자꾸 깎으면 깎인 살만큼 연필심도 함께 깎여 버린다.

쓰다가 자연스레 졸아든 몽당연필이야 의미 깊고 아름답지만, 무나 배의 상처를 잘 못 쳐내듯 부주의로 일거에 너무 깎아 내면 남는 게 없이 요긴한 부분까지 잃어버린다.

연필의 나무와 심지는 적절한 비율로 깎여 세월 속에서 함께 가는 일심일신一心一身이다. 심지가 곧다는 자부심이 크더라도 그게 혹 자기고집은 아닌지, 진리와 정의에 근거한 참 줏대인지, 좋은 열매를 맺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많이 깎아 본 자는 이 말뜻을 이해한다.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