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안개꽃처럼_안두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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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꽃처럼  

안두익 목사(동성교회, 본보 논설위원)

 

복효근 시인의 ‘안개꽃’이란 시가 있다.

꽃이라면/ 안개꽃이고 싶다
장미의 한복판에/ 부서지는 햇빛이기보다는
그 아름다움을 거드는/ 안개이고 싶다
나로 하여/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네 몫의 축복 뒤에서
나는 안개처럼 스러지는
다만 너의 배경이어도 좋다
마침내 너로 하여
나조차 향기로울 수 있다면
어쩌다 한 끈으로 묶여
시드는 목숨을 그렇게
너에게 조금은 빚지고 싶다

시인은 처음부터 조연이고 싶다고 말한다. 주인공 장미이기 보다는 그 아름다움을 거드는 안개꽃이고 싶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개인주의가 극성을 부리는 현실 앞에 화합 대신 분열로 갈등이 깊어지는 시대 앞에 배려라는 단어는 너무 우리에게 낮설게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 또 자기 합리화에 혈안이 되는 현실 앞에 내로남불이란 단어는 오늘의 현실을 반영하는 단어가 되어 버렸다. 왜 이 시대가 이처럼 웃지 못 할 지경에 까지 이르렀는지  가슴을 울컥하게 만든다.

모두들 자기를 나타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이 시대에 자신을 죽이고 다른 사람을 돋보이도록 뒤에서 이름 없이 받쳐주는 안개꽃 같은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아무리 꽃이 아름답다 할지라도 안개꽃이 뒤에서 받쳐줘야 그 꽃이 훨씬 더 돋보이는 법이다. 시인은 장미꽃도 아름답고 안개꽃도 나름대로 꽃이라 할 수 있지만, 함께 어우러져 장미꽃을 빛나게 하면서 꽃다발 전체의 아름다움이 이루어지는 그림을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럴 수만 있다면 자신은 그저 안개꽃처럼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낮아져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성숙함이 묻어있는 모습이다.

유아기의 특징 가운데 ‘자기중심성’이란 게 있다. 모든 어린이는 온 세상에서 자기를 주연 배우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부모, 형제, 선생님, 친척, 친구 – 모두는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이런 주인공 의식. 자기중심성이 어른이 된 다음에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을 ‘성인 아이’라 부른다.

그러나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아니라 타자 중심적인 사람이다. 주인공 의식이 아니라 남을 세워줄 줄 아는 사람, 타인을 인정하고 격려할 줄 아는 사람이다. 꽃으로 말하면 안개꽃 같은 사람이다. 모두들 자기를 나타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이 시대에 자신을 죽이고 다른 사람을 돋보이도록 뒤에서 이름없이 받쳐주는 안개꽃 같은 사람이다. 아무리 꽃이 아름답다 할지라도 안개꽃이 뒤에서 받쳐줘야 그 꽃이 훨씬 더 돋보이는 법이다.

이제 결실의 계절이다. 결실은 한마디로 성숙의 또 하나의 별명이다. 코로나로 한국교회는 참 아픔을 많이 겪고 있다. 3년 동안 계속된 코로나로 인해서 우리는 예배나 신앙에 여러 가지 제약을 받아야 했다. 이제 일상이 회복되면서 많은 교회들이 어떻게 현장예배를 회복할 것이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코로나 이전처럼 성도들이 기쁘게 모일 수 있도록 회복하는 것이 지금 교회에 주어진 최대의 과제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교회가 교회다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교회가 무엇에 최고의 관심을 두어야 하나?

이는 우리가 어떤 환경,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복잡한 세상 앞에서 신앙을 잃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 서로를 존중해 주는 안개꽃과 같은 삶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관심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것이 또 하나의 성숙이 아닌가? 복효근 시인의 고백처럼 ‘나로 인해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좋겠고, 네가 돋보일 때 너의 배경이어도 좋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너 때문에 나도 향기로울 수 있다면 좋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동행으로 함께 나아갈 때 우리 안에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넘치는 감사가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