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적, 구원론적 감사로서 범사에 감사
“감사”의 덕목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신앙성품을 결정짓는 중요한 부분이다. 감사는 신앙의 진정성의 표인 동시에 신앙이 결실하는 중요한 열매이기도 하다.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고하는 동시에,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까지 말한다(살전 5:18).
진정한 믿음을 가졌는가? 그렇다면 진정한 믿음을 감사의 열매로 증거 해야 한다. 신앙이 깨어 있다면 감사하며 살 것이요, 잠들어 있다면 마음과 입술에서 감사가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왜 “감사”의 덕목이 우리의 신앙의 진정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표지일까? 감사가 진정한 믿음의 표지가 되는 것은 신앙의 대상이 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과 구속의 은총이 감사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 믿음의 속성이 감사를 믿음과 분리시킬 수 없게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믿음의 덕목 중 최고를 “겸손”에 두었는데, 이 겸손이 감사와 무관하지 않다. 믿음은 왜 성도로 겸손하고 감사하게 만들까? 성경은 감사의 이유가 하나님 안에 있다고 한다. 하나님을 창조주라 알려주며 우리는 창조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또한 하나님을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주라고 알려주며 우리는 구원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도 가르친다. 성경은 창조하신 세계와 구원하신 인생을 큰 사랑의 섭리로 인도하신다고 가르친다.
이 모든 하나님의 사역은 작정과 예정과 구속의 언약 가운데서 영원에서의 하나님의 계획으로부터 나타난 결실들이다. 성도는 창조 신앙을 통해 우리의 존재와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근원을 하나님께 돌린다. 성도는 자신의 전적 부패와 무능을 깨닫고 오직 그리스도 외에 살길이 없는 것을 분명히 확신한다. 성도는 우리의 존재와 구원을 하나님께서 특별하고도 큰 사랑의 섭리로 보존하시며 그 완전에 이르도록 이끄실 줄 믿는다.
그러므로 성도의 감사는 신앙적인 감사이자 구원론적인 감사이다. 성도의 감사는 하나님 없는 자연인들의 감사와 같지 않다. 자연인의 감사는 보이는 것을 넘어서지 못하고 현실적, 환경적 요소에 좌우되는 제한된 감사요 육적인 감사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가르친 덕목으로서 감사는 신앙적, 구원론적인 감사로서 바울은 그것을 “범사에 감사”라고 표현했다. 즉, “모든 것에” 감사란 의미다.
왜 모든 것에 대한 감사인가? 자연인들의 감사는 보이는 현실적 가치, 환경적 요소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즉, 환경이 좋고, 만사가 잘 풀리면 현실적 유익 때문에 감사의 마음이 솟아나다가, 환경이 악화되 만사가 잘 풀리지 않으면 원망과 좌절에 빠지는 견고하지 못한 감사이다. 그러나 성도의 감사는 창조 신앙, 구원 신앙, 섭리 신앙에 뿌리를 내려, 단지 환경과 보이는 가치와 현실적 가치들을 넘어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감사이다. 성도의 감사는 심지어 고난과 환란의 때에도 감사가 소멸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고난과 환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모든 고난과 환란 속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신뢰하고 의지하기 때문이다.
성도는 순경일 때는 감사하며, 역경일 때는 하나님께 의지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섭리가 성도를 향한 특별한 사랑의 섭리라는 사실을 믿기에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한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그런 의미에서 성도는 범사에 감사한다. 감사하며 살라는 하나님의 뜻은 창조의 신앙, 구원의 신앙, 섭리의 신앙으로 살라는 뜻과 상통한다.
이런 의미에서 성도의 모든 성화의 열매로서 선한 생활은 감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성도는 공로를 쌓으려고 선행하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섭리하시는 은총에 대한 감사로서 선행한다. 그러므로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64문답은 성도의 선한 생활의 유일한 동기요 동력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에 있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성도의 선행을 “감사의 열매”라고 표현한다. 성도의 진정한 감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삶 속에서 나와야 한다. 그 감사는 심지어 역경과 환란 속에서도 성도의 마음속에서 꺼지지 않는 그런 “범사의 감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