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문] “신자에게 주어진 삶에 대하여”_김 훈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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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에게 주어진 삶에 대하여”
– 영화 <그래비티 Gravity> 2013 (12세)

김 훈 장로(열린교회)

연료가 다 떨어진 우주선 안에서 오도가도 못 하던 주인공 라이언(산드라 블록 분)은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고 우주선 전원도 다 꺼버리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매트(조지 클루니 분)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갈 수 없다고 자포하는 라이언에게 매트는 이렇게 결론을 말한다.

“지구로 돌아갈 거야? 아니면 여기서 계속 살 거야? 그래, 여기 멋진 건 나도 알아. 그냥 전원 다 꺼버리고 불도 다 끄고 눈까지 감고 전부 무시해버리면 되겠지. 여기서는 자넬 해칠 사람도 아무도 없고 말이야. 안전하겠지. 그런데 내 말은…. 그러면 왜 사는 거야? 아니, 산다는 게 뭐지? 물론 자식을 먼저 잃은 것보다 더 큰 슬픔은 없지.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하고 있는 이거야. 가기로 결정했으면 계속 가야지. 의자에 등 딱 붙이고 가는 거야. 땅에 두 발로 떡 버티고 서서 살아가는 거야.”

진리가 담긴 장면은 언제나 감동과 여운을 준다. 영화 [그래비티]에서 오직 한 장면만 남기고 다 잘라낸다고 한다면 나는 이 장면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이란 우리에게 언제나 버겁다. 그래서 때로는 주인공처럼 몽땅 내려놓고 그냥 다 포기해 버리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삶이란 어쩌면 내 마음대로 내려놓고 말고 하는 선택을 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적어도 신자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매트의 질문을 인용해보자. “그러면 왜 사는 거야? 아니, 산다는 게 뭐지?” 신자는 왜 사는가? 신자가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삶을 부여받은 자는 없다. 자신이 원하는 시대와 환경을 선택하여 태어난 자도 없으며 자신의 성향과 외모를 골라서 태어난 사람도 없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무작위로 주어진 것만 같다. 규칙이나 확률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주어진 삶을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로 포기하지 않고 생존의 본능을 가지고 살아간다. 열악한 환경이면 열악한 대로, 좋은 환경이면 또 그런대로. 거기에 어떤 목적이 되는 이유는 없다. 그냥 살아갈 뿐이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왜 사는가? 그렇게 주어진 삶이기에 살아간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살아간다는 소극적인 의미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신자의 삶의 태도는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의 선택이 아닌 길이지만 주어졌기에 걸어야 하는 길. 그래서 다시 신자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의 질문으로 돌아가면, 신자는 내가 원하고 선택한 길은 아니지만 내게 주어졌기에, 비록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그 분의 뜻이 분명히 있음을 믿는 믿음으로, 그 길을 주신 이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전에도 지금도 또 앞으로도 영원히 실수 없이 인도하시고 주관하실 만군의 여호와시라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길을 걷는 사람이다.

삶을 포기하고 싶어질 정도로 힘들고 고난스런 일들이 있다. 우리 삶 가운데 그런 일들, 그런 상처들은 없는 이가 오히려 적을 정도로 저마다 가지고 있는 듯하다. 라이언에게는 자식을 잃은 고통이 있었다. 그러나 지나간 상처와 고통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삶이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 신자는 그 길 위를 걸어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그것도 남에게 업혀서 남의 다리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 두 발로 당당히 걸어가야만 한다. 대신 걸어갈 수 있는 이는 없다. 영화 속의 라이언은 그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 했다.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았고 과거의 상처들이 얽혀서 삶의 이유를 잊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매트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이 지금 이 순간의 삶임을 일깨워 주었다.

이 부분은 죽은 뒤의 천국을 믿고 소망하는 신자들에게는 더욱 와 닿는다. 라이언에게 딸의 죽음은 여러 차례 죽을 이유가 되어 심적 어려움으로 다가왔지만, 이제는 나중에 천국에서 딸을 다시 만났을 때에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 온 엄마로서 부끄러움이 없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고자 발버둥 칠 수 있는 라이언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은 지구에 불시착한 라이언이 밖으로 나와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서서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장면이다. 결국은 주어진 그 삶을 ‘계속해서’ 걸어가기로 작정한 모습이다.

변화를 요구하고 유행을 강요하는 이 세상은 우리에게 지금껏 하던 것을 멈추고 다른 것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과거는 구습이고 한물갔으니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하고 그것을 찾지 못하면 도태된다고 겁을 준다. 그리고 이미 이렇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말하며 체념케 하기도 한다.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한 길을 꾸준히 걷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보면 주어진 길을 포기하지 않고 곁길로 새지 않고 꾸준히 견지해 가는 것이 바로 신자가 걸어가야 하는 진리의 길이다.

신자의 인생의 길은 그 길을 걸어 나가기 전에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 길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아시고 그분만이 만드실 수 있는 길이다. 악인은 스스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두려움에 빠져있는 자요, 신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아시는 이가 만드신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을 가진 자다.